7일 주왕산국립공원이 산불 피해로 듬성듬성해진 모습. 환경부공동취재단청송(靑松)은 서쪽으로 의성·안동, 동쪽으론 영덕과 접해 있다. 의성은 지난달 경북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의 시작점 중 하나로, 3월 22일 오전 11시 24분 성묘객 실화(추정)로 시작한 이 불은 안동과 청송을 거쳐 동해와 접한 영양, 영덕까지 옮겨 가서야 3월 28일 오후 5시 무렵 진화됐다.
불이 잘 붙는 푸른 소나무가 독이 됐을까. 일주일간 계속된 산불로 청송군은 전체 면적 8만 4610ha(헥타르)의 10%가 넘는 9320ha가 화재 피해를 입었다. 특히 지역 경제 버팀목이 돼온 주왕산국립공원은 1만 600ha 중 약 3260ha가 불에 타, 산불로 인한 국립공원 피해 규모로도 역대급 기록으로 남게 됐다. 주왕산국립공원 산불 피해 현장을 7일 찾았다.
7일 주왕산국립공원 입구 달기약수터 주변 식당 등 시설 건물이 불에 그을린 흔적. 뒤쪽으로는 불길이 지나가 듬성듬성해진 숲의 모습도 보인다. 환경부공동취재단길게 뻗은 소나무가 순식간에 불기둥으로…태풍급 바람 세기
"밭에서 일하다가 대피하라는 안내 문자 받고 대충 옷가지만 챙겨 나왔죠. 초소 입구에 도착하니까 소나무에 붙은 불이 바람 타고 올라가면서 소나무가 불기둥이 돼 눈앞에서 200~300m씩 날아다니더라고요."
너구마을 주민 이정백(65)씨는 화마가 덮친 지난달 25일 오후 6시 무렵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주왕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너구마을 주민 이정백(65)씨가 7일 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산불 발생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 최서윤 기자 청송군 청송읍 월외2리 너구마을은 주왕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마을지구다. 취재진이 오송에서부터 타고 온 버스는 국립공원 입구 초소까지만 운행이 가능한 탓에, 너구마을까진 SUV로 갈아타고 굽이굽이 난 좁은 산길 약 8km를 20분 가까이 한참 달려 들어가야 했다.
산길의 한쪽 옆인 계곡에선 물이 졸졸 흘러 내려오고 있었지만, 반대쪽 산비탈은 군데군데 까맣게 그을려 지금도 매캐한 탄내가 났다. 불길을 미처 피하지 못했는지 계곡에서 멀지 않은 길 입구 쪽엔 누워 있는 고라니 사채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체 14가구가 사는 이 마을엔 당시 5가구 7명의 주민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주민 나이는 대부분 70~80대고, 마을 최연소자가 52세다. 국립공원으로 옮겨붙은 불길이 마을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
너구마을 이장 권성환(65)씨는 "주민들을 탑승 가능한 차량에 나눠 읍내로 대피시키고 혼자 30분 정도를 있다가 눈앞 산에서 건너편 집으로 불기둥이 확 올라오는 걸 보고는 차량에 물을 뿌린 뒤 정신없이 탈출했다"며 "하늘은 연기에 갇혀 컴컴하고, 길 아래위로는 불이 붙어 있고, 사방에서 불길이 날아다녀 멈추면 갇힌단 생각에 서커스 하듯 내달렸다"고 말했다.
주왕산국립공원 입구 달기약수터에서 좁고 굽은 산길 8km를 들어가야 너구마을이 나온다. 왼쪽 산비탈은 까맣게 그을린 불길의 흔적이 보이고, 왼쪽 경사 아래 계곡이다. 최서윤 기자 안호영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장에 따르면, 산불이 청송읍 부곡리 735번지에 처음 들어온 25일 당시 오후 6시 20분쯤 최대 풍속은 25m/s였다. 중형급 태풍의 바람 세기로, 미닫이문을 열기 힘들 정도다.
사흘간 국립공원을 태운 주불은 28일 오후 5시쯤 잡혔다. 공원 시설물 3개동과 너구마을 창고 2개동 전소, 탐방로 15개 노선 67.5km 중 2개 구간 5.174km를 태운 이번 화마가 지나간 뒤 울창한 나무로 우거졌던 수림은 듬성듬성 까맣게 빛이 바랬다.
해발 700~800m 높이로 불길이 선처럼 길게 퍼지는 화선이 번져 바람을 타고 수백 미터를 옮겨 다니는 시점엔 헬기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이번 산불로 소방헬기 부족 문제가 도마에 올랐지만, 전국 22개 국립공원을 운영·관리하는 국립공원공단이 보유한 헬기가 단 1대뿐인 사실은 뒤늦게 지적되고 있다.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자 공단 헬기는 먼저 불이 난 지리산으로 향했고, 이후 주왕산이 피해가 커져 주왕산으로 보냈을 땐 헬기 추락 사고로 아예 운항이 금지되면서 실질적인 진화 작업에 투입되지 못했다고 한다.
공단 관계자는 "헬기가 부족하다 보니 민가쪽으로 불이 나면 민가부터 먼저 불을 끄게 돼 국립공원에는 사용하기 어려운데, 문제는 국립공원에서 화선을 빨리 진압하면 화선을 잡을 수 있다"면서 "주로 밤에 바람이 약해지기 때문에 야간에도 운행이 가능한 공단 전담 헬기 4~5대 정도가 있으면 (유사 사례 발생 시) 좀 빠르게 진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국 주왕산국립공원에서 잡지 못하고 더 거세진 불길은 그날(25일) 저녁 영덕으로 옮겨가 21명의 인명피해를 낳았다.
듬성듬성 빛바랜 7일 주왕산국립공원 모습. 환경부공동취재단듬성듬성 빛바랜 수림…소나무림 일부 인공복구 불가피
국립공원 3분의 1을 태운 주불이 진화된 뒤엔 잔불 진화작업이 이어졌다. 아직 연기를 내뿜는 작은 불씨가 다시 큰불로 이어질 수 있기에, 공단 행정직원까지 700여 명이 모두 투입돼 4월 4일 오후 2시 연화봉을 끝으로 잔불 진화를 마쳤다고 한다.
안호영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다행히 (공원에 불이 붙은 지 7시간 뒤인) 26일 새벽 1시경 30분 정도 2mm의 비가 온 게 터닝포인트가 돼 대전사소 소실이 안 됐다"며 "4월 5일 식목일 오후 내린 3~5mm 비도 잔불정리를 마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제 공단은 피해 조사에 한창이다. 산불이 발생하면 15일 이내에 기초 현황 조사를 하게 돼 있다. 산불의 피해 면적과 피해 유형을 조사하는 것이다. 1단계 기초조사, 2단계 정밀조사, 3단계 모니터링 개념이다.
7일 산불 피해 기초 조사에 한창인 국립공원공단 조사팀 모습. 피해 수종의 종류와 피해 규모, 지름과 높이 및 나이테를 통한 수령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최서윤 기자먼저 기초조사에서는 위성 영상으로 산출한 피해 면적과 공간별 피해 정도(매우심각, 심각, 경미) 자료를 현장에서 비교·대조해 정확한 피해 면적과 규모를 산출하게 된다. 또 심각·매우심각 지역의 피해 수종과 피해 정도를 파악하는데, 이는 추후 탄소배출량을 추정하는 데이터로도 활용된다.
다가올 6월 장마 전 토사 유출이나 산사태 우려가 있는 지역을 파악해 응급복구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주왕산국립공원의 '매우 심각' 피해 지역은 대부분 경사가 급한 고지대라 산사태와 낙석 우려가 있다고 한다.
명현호 국립공원연구원 기후변화센터장은 "불에 그을린 소나무는 거의 죽는 반면, 참나무들은 지금은 그을려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잎이 난다"면서 "6월쯤 돼 명확히 죽은 나무와 산 나무가 가려질 떄쯤 정밀조사를 통해 최종 고사된 개체 현황 판단 등 정밀조사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대개 '경미' 지역은 자연회복력이 있는 반면, '심각' 이상의 피해를 입은 부분은 10년간 모니터링을 거쳐 끝내 회복되지 않으면 인위적인 복구를 진행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주왕산 산림은 소나무 침염수림이 35%, 활엽수림 61%. 국립공원 중에서도 인위적으로 조성한 조림이 3%가량에 불과해 자연식생이 제일 넓은 지역이었지만, 이제 이 비중은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 공단이 파악한 피해 규모는 경미 565ha, 매우 심각 286ha, 심각 280ha 정도다.
명 센터장은 "소나무의 경우 밑부분만 타들어가도 80%는 다 죽는 반면, 참나무는 3~4m 타고 올라가도 봄이 되면 다시 발효되고 죽더라도 옆에서 움싹이 일어나서 다시 재생되는 형태의 복원이 가능하다"면서도 "지역적으로 소나무만 살 수 있는 공간은 결국 소나무 형태로 인공복원해야 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수분이 빠진 흙과 나무 잿가루가 뒤엉켜 푸석푸석해진 땅에서 얼마만큼의 자연식생이 복원질지는 철저히 자연의 힘에 달렸다. 이번보다 피해 규모가 작긴 했지만, 2023년 하동 산불로 무너졌던 삼림은 2년 만에 93% 회복률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활엽수림이다.
2025년 3월 삼림 4만 8천여 헥타르(ha)를 태운 경북 산불로 360만여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부공동취재단
기후변화에 대응할 산림을 잃은 것도 큰 손실이지만, 이번 산불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치도 또 다른 숙제로 남는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전국 약 4만 8239ha의 숲을 태운 이번 산불로 이산화탄소(CO2) 324만 5천 톤, 메탄(CH2) 27만 2천 톤, 아산화질소(N2O)14만 3천 톤 등 총 366만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2년 기준 산림에서 흡수한 온실가스 순흡수량 3987만 톤의 약 9.2%에 해당하며, 중형차 약 3436만 대가 서울과 부산을 왕복(800km)할 때 배출하는 양과 동일하다고 산림청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