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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초대형 산불이 영남지역을 휩쓸었습니다. 열흘 간의 진화 작업 끝에 불은 껐지만, 부산 면적의 절반 가까운 산림이 불타버렸습니다.
재산과 인명 피해도 심각한데요. 불이 꺼졌다고 끝난 건 아니겠죠. 매년 반복되는 산불.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산불로 파괴된 생태계는 어떻게 되돌려야 할지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와 말씀을 나눠봤습니다.
[이하 인터뷰 전문]
◇ 진행> 이번 산불,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최악의 산불이었다. 미국LA 산불 피해 면적의2배를 넘어섰다고 하는데, 불길이 이렇게 넓게 번진 이유부터 짚어보자.
◆ 홍석환> 우리나라 산림은 원래 산불에 그렇게 취약하지가 않다. 그런데 영남권의 경우 송이라든지 대형목재를 생산하기 위해 숲을 인위적으로 관리해왔다. 1998년부터 거의 30년 가까이 소나무만 남기고, 활엽수는 제거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 활엽수들이 실은 산불 확산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걸 없애니까 산불에 취약해진거다. 이게 지속되다가 최근 건조한 환경을 만나면서 광장히 나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 진행> 소나무가 불에 그렇게 취약한가?
◆ 홍석환> 침엽수는 기름먹은 종이와 같다. 불이 잘 붙는다. 그런데 종이에 물을 묻히면 아무리 종이가 많이 쌓여 있어도 잘 타지 않는다. 활엽수는 물먹은 종이라고 보면 된다. 고로쇠 나무가 활엽수의 대표적인 수종인데 수액이 물처럼 흘러나오지 않나. 거기에는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이걸 다 베어내니까 문제가 생기는거다.
◇ 진행> 산불 피해가 예전에는 봄철 강원도에 집중됐는데, 이젠 지역도 계절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산불의 연중화, 대형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 홍석환> 1998년도부터 숲 가꾸기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IMF 때 실직한 분들을 위한 공공근로 사업으로 진행을 한 거다. 송이가 많이 생산되는 강원도 일대, 그리고 경북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성과가 제법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시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여기서 산불확산을 막아주는 하층부 활엽수를 마구 베어냈다. 산불에 굉장히 취약해진거다. 전국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 숲가꾸기 사업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 진행> 숲 가꾸기 사업이 오히려 숲을 망치고 말았다? 이 말씀인가?
◆ 홍석환> 맞다. 산림청 홈페이지의 사업홍보를 보면, 숲 가꾸기로 햇볕이 숲 내부까지 들어오고 바람이 잘 통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잘 들어오면 어떻게 되나? 숲이 바닥까지 바싹 마른다. 불이 나면 삽시간에 번지게 되는 거다. ◇ 진행> 98년부터면 근 30년 가까이 사업을 이어온 셈이다. 문제제기가 없었나?
◆ 홍석환> 저도 사실 이해가 안 간다. 관성 때문이라고 본다. 매년 거의 3천억 원씩 지자체로 돈이 지원되니까 단체장의 입장에서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경상북도도 마찬가지고 부산도 마찬가지다. 산림청은 관행적으로 예산을 내려보내고, 지자체는 예산 내려왔으니까 사업을 하고.. 이게 30년을 이어 온 거다. ◇ 진행> 그럼 숲을 건드리지 말고, 자연 상태로 두면 산불이 자연스럽게 예방된다는 건가?
◆ 홍석환> 그렇다. 그 증거가 중국, 일본이다. 일본의 경우 1970년대에는 연간 약 8천 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했다. 그런데 7~8년 전부터는 1,200건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피해 면적도 줄고, 피해 건수도 줄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서 산불피해가 급감한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20년 상간에 피해 면적이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었다. 숲에 손을 대지 않고 그냥 둔거다. 우리도 자연이 스스로를 지키도록 그냥 두고 지켜보면 된다.
◇ 진행> 이번 산불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가 '임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방차가 들어갈 수 있는 임도가 있었다면 좀 더 빠른 진화가 가능했을 거라는 얘긴데, 교수님께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으셨다. 임도가 산을 오히려 건조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 홍석환> 독일 연구진이 진행한 연구인데, 산 속에 도로를 만들고 거기서 실측을 했다. 그런데 도로를 만들기 위해 벌목한 곳이 숲속보다 풍속이 20배나 빨랐다. 또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만들면 햇볕도 잘 들어온다. 불이 나면 번지기 아주 좋은 환경인거다. 이번 의성 산불의 경우 1시간에 8km를 달렸다. 화선으로 치면 굴곡까지 계산하지 않더라도 약 20km의 길이인데, 이걸 어떻게 끈다는 말인가. 출동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이미 그동안 불은 20km가 넘게 번지는 거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건 불이 났을 때 확산이 더디게 만드는 거다. 임도는 우리 기대와 달리 불의 확산을 더 빠르게 하는 요인이 된다. 사람이 출동하는 속도보다 확산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지기 때문에 임도는 오히려 악조건으로 작용한다. ◇ 진행> 그래서 '소방 헬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목소리도 나온다. 소방 헬기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홍석환> 헬기 역시 별 소용이 없다고 본다. 출동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1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그때 이미 화선은 20km 정도 만들어진다. 그나마 바람이 적게 불어서 한 1km의 화선이 형성됐다고 치자. 그래도 대형 헬기가 끌 수 있는 화선의 길이는 고작해야 10m도 안 된다. 또 헬기가 물을 뿌릴 때 굉장히 강한 하강풍이 생기는데, 이게 산불의 확산을 부채질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화선이 굉장히 긴데, 가장자리에서 바람과 물의 힘에 의해 불이 솟구치면서, 불이 붙은 낙엽이 옆으로 이동하는 거다. 실제로 나무가 없는 곳에서 모의 훈련을 하면서 불을 붙여놓고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헬기가 날아와 물을 뿌리니까 옆으로 불이 확산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 진행> 상식을 뒤집는 내용들이 오늘 많이 나온다. 그간의 산불 대응, 진화 과정에 허점이 없는지 이제라도 제대로 좀 짚어봐야 할 것 같고.. 정부의 산불대응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산불이 날 때마다 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대책을 마련하는 걸로 아는데, 왜 이게 통하지 않는걸까? 산불피해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홍석환> 일단 불이 크게 나면 문책과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지만 산불을 막기 위해서는 종이를 기름 종이에서 젖은 종이로 바꿔주면 된다. '예산이 많이 들지 않느냐' '어떻게 소나무를 다 없애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냥 두면 된다.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를 언급할 때 항상 따라붙는 표현이 고온다습이다. 고온다습하게 바뀌면 숲도 습해지지 않겠나? 다습한 환경에 잘 자라는 나무를 그냥 두면 된다. 이 나무들은 기름을 만들 이유가 없다. 대신 광합성을 열심히 하기 위해 물을 계속 사용한다. 그러면 주변의 온도도 낮아지고, 나무도 건강해지고, 숲도 좋아지고, 불도 안 난다. 굳이 복구 예산을 안내려 보내도 된다. 숲은 스스로를 지킨다. 그 예산은 피해를 입은 주민들한테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 진행> 경북의 경우 전국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기도 한데, 올해는 초대형 산불까지 나면서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소나무재선충병의 매개충이 산불 피해 지대에서 더 증가한다는데, 숲에 더 큰 피해가 미칠까 우려가 된다.
◆ 홍석환> 우리는 재선충병에 걸렸다 하면 무조건 '벌레를 없애고 치료를 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소나무재선충에 의해서 소나무가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재선충에 의해 소나무가 죽는 건 환경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봐야 한다. '우리 숲이 고온다습해져서 소나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가는구나, 대신 활엽수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척박한 지역 중 하나가 백두대간 일대다. 거기서 2010년대 초반에 연구를 했다.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를 그대로 뒀더니 소나무림이 불과 4년 만에 10%가 줄어들었다. 대신 활엽수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특정 수목의 경우에는 300% 이상 증가했다. 즉 소나무림 10%가 없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한 활엽수가 10% 증가했다고 보면 된다. ◇ 진행> 어쨌든 화마가 삼킨 숲, 복원을 해야한다. 어떻게 되살려야 할까?
◆ 홍석환> 이 부분은 오랜 논의의 역사가 있다. 2000년, 동해안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심각한 대형 산불이 날 수 있다'라는 위기감에 의해 국가 차원에서 정밀 조사와 연구, 논의를 진행한 끝에 합의를 만들어 냈다. 그때의 합의는 일단 숲의 상태를 지켜본 후에 자연적으로 복원이 되느냐 안 되느냐, 여부를 판단하자는 거였다. 자연적으로 복구가 되는 곳은 자연 복원이 되도록 유도해 주면 되고, 안 되는 곳은 인위적으로 복구를 하면 된다. 앞서 설명했지만 우리나라 기후대에서는 낙엽 활엽수림이 잘 발달한다. 자연 복원이 안 되는 곳이 없다. 그런데 2005년에 이 합의가 깨진다. 낙산사 산불 이후에 산림청이 독단적으로 매뉴얼을 바꾼 거다. 산불 피해 강도를 판단하는데, (피해 강도가) 강한 것은 아무런 고민없이 전체 피해 면적의 30~40%를 무조건 자르고 그냥 심는 걸로 바꿔버린다. 왜 자꾸 벌목하고 다시 심느냐고 이의를 제기하면, '우리는 복구 매뉴얼에 의해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앵무새 답변을 되풀이하는 거다.
◇ 진행> 그래도 이번 산불은 인공위성에서도 관측이 될 정도로 피해규모가 크다. 이걸 그냥 둬도 될까? 자연복원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신가?
◆ 홍석환> 먼저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옛날에는 숲이 우거지고 호랑이도 살고 그랬는데 일제 강점기 때 나무를 다 수탈해 갔다고 알고 있지 않나?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다. 1910년에 일제 통치가 시작되면서 일제에서 우리나라 산림실태를 조사한다.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산림 전수 조사다. 조사 결과를 보니 남한 지역에만 큰 나무가 있는 숲의 비율이 산림 면적의 10%가 조금 넘었고, 90%는 이미 나무가 다 잘린 벌거숭이 산이었던 거다. 이후 6·25 전쟁이 나면서 산림황폐화가 더 심해졌고, 전후에 그나마 남은 나뭇가지들도 다 잘라 써버렸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숲이 안정화되기 시작한다. 이 숲을 그대로 두면 훨씬 빠르게 울창해진다. 제가 현장에서 계속 보고 있는데 2017년, 2019년, 2022년 강릉 산불, 2020년 안동 산불 등등 대형 산불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피해지역 가운데 산주인의 동의를 못 얻어서 산림청이 벌목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 곳이 조각조각 남아 있다. 그런 곳은 옆을 다 베어버렸기 때문에 숲이 발달하기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다. 바로 그 지역에 5년만에 4~5m짜리 활엽수가 꽉 차서 자라고 있다.
경북 산불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반에 <숲 가꾸기 사업>을 홍보하는 사진을 보면 소나무림 하부에 활엽수가 꽉 차 있는 걸 볼 수 있다. 활엽수가 못 자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잘라내는 작업을 수십 년 동안 한 것뿐이다. 우리 숲은 복원력이 충분히 강하다.
또 길게 한 군데서 오래 타는 외국의 불과 다르게 우리나라 산불은 빨리 태우고 빨리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마른 낙엽만 살짝 훑고 지나가는 불이기 때문에 토양은 그대로 살아 있다. 10년만 그대로 두면 언제 산불이 났었나 할 정도로 푸른 활엽수림이 복구가 된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복구를 하게 되면 10년 후에도 벌거숭이산을 면하기 힘들다.
◇ 진행> 4월 5일, 식목일이다. 나무를 심는 날인데.. 그럼 식목일도 굳이 필요가 없다는 건가?
◆ 홍석환> 우리 숲에는 '식목'이 따로 필요 없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것은 집 주변, 그 다음에 도시, 이런 곳에 나무를 심으면 되는 거고 산에는 심는 게 아니다. 나무를 심어도 자연적으로 자라난 나무들이 이 친구들을 다 밀어내고, 자연림으로 바뀌는 거다. 누차 말하지만 숲은 스스로를 지킨다. 사람이 개입하려들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긴다.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유엔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이다. 산불이 나도 숲은 스스로의 회복탄력성으로 굉장히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인간이 그것을 왜 망가뜨리나. 그것도 혈세를 들여가면서 말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자연의 힘을 믿고, 아주 국소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만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숲의 회복탄력성을 최대로 끌어내고, 더불어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최대화하는 길이다. ◇ 진행> 결국 산림을 단순한 관리의 대상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해 보인다.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산림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매거진 초대석 부산대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와 함께 했다. 귀한 말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