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사진공동취재단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는 각종 발언이 화제가 됐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와 마주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정확히 국회의원이라고 들었다"라고 정면 반박하며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은 "계몽됐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국회 탄핵소추단 측에선 "오염된 헌법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맞섰다. 계엄이 시작되는 장면을 목격한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 '절차적 흠결'을 인정하기도 했다. 43일간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일어난 주요 장면을 되짚어봤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윤창원 기자①곽종근 "'끌어내라' 대상은 정확히 국회의원"
이번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내렸는지다. 윤 대통령이 국회활동을 방해하고 국헌 문란을 했다는 직접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 당일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시켰던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라고 정확하게 지목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6일 열린 6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곽 전 사령관에게 국회 측은 "
윤 대통령이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의결정족수가 아직 안 채워진 것 같다. 국회로 빨리 들어가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곽 전 사령관은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이에 국회 측은 "윤 대통령이 증인에게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한 대상이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국회의원이 맞느냐"고 묻자 곽 전 사령관은
"
정확히 맞다"고 말했다.
곽 전 사령관은 부연 설명을 하겠다며 양해를 구한 뒤 "당시 707 특임단이 국회 본관 정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본관 건물 안쪽으로는 인원들이 안 들어간 상태였다"며 "그 안에는 작전 요원들이 없었기 때문에 끌어내라는 인원을 당연히 국회의원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곽 전 사령관은 '정확히', '당연히' 같은 확정적인 표현을 사용해가며 일관된 주장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변호인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②尹 "인원 말 써본적 없다"고 했지만…얼마 지나지 않아 '인원'
그러자 윤 대통령은 곽 전 사령관의 증언을 부정하고 나섰다. '의원'도 '인원'이라는 말도 모두 사용한 적이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자기(곽 전 사령관)가 국회의원으로 이해했다는 것이지
제가 의원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며 "또
'인원'이라고 얘기했다고 증언했는데, 저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놔두고 인원이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인원이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다는 윤 대통령의 입에서 이내 '인원'이라는 단어가 언급됐다. 윤 대통령은 "김현태 707단장의 진술도 여기 와서 처음 들어봤다"라며 "
당시 국회 본관을 거점으로 확보해서 불필요한 '인원'을 확보한다는 목적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곽 전 사령관이 자신에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하는 게 상식이라며 곽 전 사령관의 주장을 재차 반박했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원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본인의 진술과는 모순된 발언을 남겼다.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윤창원 기자③조성현 "저는 의인도 아닙니다"
탄핵심판에선 증인으로 출석한 군인들의 발언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의 증언 역시 마찬가지다.
조 단장은 8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윤 대통령 측은 조 단장에게 "
증인은 사령관에게 받은 지시가 불법이라 이행하지 않은 것처럼 의인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하지만 부하 군인들의 이야기와 전혀 다르고, 증인 역시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과 다르게 진술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여러 면에서 다른 목적을 갖고 허위로 진술하고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며 증언의 신빙성을 흔들었다.
그러자 조 단장은 답변의 기회를 구하고 입을 열었다.
조 단장은 "
저는 의인도 아니다. 1경비단장으로서 부하들의 지휘관"이라며 "
제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제 부하들은 다 알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기에 저는 일체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고, 그때 제가 했던 역할들을 진술할 뿐"이라며 윤 대통령 측 주장에 반박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윤창원 기자④홍장원 "메모 혼자 썼다면 누가 제 말 믿어줬겠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이번 탄핵심판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 중 한 명이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의 2인자 이름이 대중에 널리 알려질 만큼 파급력이 컸다.
특히 정치인 체포 명단을 적었다는 '홍장원 메모'는 기폭제가 됐다. 5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홍 전 차장은 국회 측의 "(윤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수사권을 줄 거니까 무조건 방첩사를 도우라는 취지로 말했나"라는 질문에 "
그렇게 기억한다"고 답했다.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과의 통화 이후 이어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의 통화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체포해야 할 정치인 명단을 받아 적었다.
계엄군뿐 아니라 국내 최고 정보기관에도 정치인 체포 지시가 내려진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정작 국정원 1인자인 조태용 국정원장은 메모의 오염 가능성을 제기했다. 홍 전 차장뿐 아니라 보좌관의 정서(正書)까지 4개의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조 원장은 8차 변론에 출석해 "이렇게 되면 홍 전 차장이 설명한 뼈대가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10차 변론에 다시 증인으로 출석한 홍 전 차장은 "저는
보좌관에게 정서를 시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제가 (메모를) 혼자만 가지고 있었고,
혼자 썼다면 누가 제 말을 믿어줬겠나"라고 말하며 메모가 조작됐을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한덕수 국무총리. 류영주 기자⑤한덕수 "국무회의, 실체적 흠결 있었어"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절차 역시 탄핵심판의 주요 쟁점이었다. 윤 대통령 측은 절차를 지켰다는 입장이지만, 심판정에 나온 국무위원들의 증언은 달랐다. 특히 정부 2인자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의 흠결을 인정했다.
10차 변론에서 김형두 재판관은 한 총리에게 "비상계엄 전에 대통령실에서 있었던 회의가 있지 않느냐"며 "증인(한 총리)은
수사기관이나 국회에서 '간담회 정도로 본다'고 말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총리는 "맞다. 그건
통상적인 국무회의하고는 달랐다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김 재판관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곳에 모여 있는 상황이 국무회의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라며 "증인의 개인적인 느낌은 무엇이었나"라고 다시 물었다.
한 총리는 "
형식적,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가 하나의 팩트로서 분명하게 말한다"라며 "12월 3일에 오라는 연락을 받고 국무위원들은 순차적으로 모였고, 비상계엄에 대해 처음 듣고 걱정과 우려를 표명했다"고 증언했다.
정당한 국무회의였다는 윤 대통령 측의 주장과는 달리, 정작 국무위원들은 줄줄이 국무회의의 정당성을 부정한 것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윤창원 기자⑥김용현 "계엄 쪽지, 총리 것도 있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선포 직후 국무위원들에게 지침이 담긴 문건을 나눠준 것으로 파악됐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는 '국가비상입법기구'를 조직하기 위한 예산 편성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는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가 하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나서 문건을 전달한 사실을 인정했다. 4차 변론에서 국회 측은 김 전 장관에게 "부처별로 문건을 하나씩 나눠줬다고 하는데 총 몇 장이나 준비했나"라고 물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6~7장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국회 측은 다시 "
행안부 장관, 국정원장, 국무총리도 있었다고 했고 또 어디가 있었나"라고 묻자 김 전 장관은 "외교부장관"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김 전 장관은 행안부 장관이 받은 문건에 대해선 "경찰청장에게 준 것과 똑같이 적혀 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고 비상입법기구를 조직하거나 언론사를 차단하라는 지시는 모두 위헌·위법 행위로 꼽힌다. 때문에 윤 대통령은 자신이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입을 통해 문건의 존재 여부가 재차 확인되면서, 향후 형사재판에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형식 헌법재판관. 황진환 기자⑦정형식 "군대가 들어갔으니까 충돌이 생긴 게 아니에요?"
계엄 당일 군 병력들은 국회 유리창을 깨고 건물로 들어섰다. 내부에선 국회 보좌진들이 소화기를 터트리며 저항했다. 이날의 장면은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국회 투입을 지시했다는 김용현 전 장관은 '질서 유지' 차원에서 계엄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정형식 재판관은 국회로 계엄군을 투입한 이유를 물었다. 지난 4차 변론에 출석한 김 전 장관에게 정 재판관은 "본청 건물 안에는 어차피 의원들이나 관계자들이 들어가 있고, 외부 시민들은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였다"며 "
굳이 거기를 군 병력이 왜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나"라고 물었다.
김 전 장관이 "의원들이 들어오는 건 제재 없이 통과하지만, 나머지 불필요한 인원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질서 정연하게"라고 말하자, 정 재판관은 말을 끊으며 "그럼
외부만 본청 건물의 문에만 배치를 해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김 전 장관은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충돌이 생겨버린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정 재판관은 "(계엄군이)
들어갔으니까 충돌이 생긴 거 아닌가"라고 일침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출입문만 하면 안되고 내부 인원들이 또 많으면 빼내야 되니까 그런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계리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⑧김계리 "저는 계몽됐다" vs 장순욱 "오염된 헌법, 제자리 찾아야"
이번 탄핵심판에서는 양측 대리인단의 발언도 화제가 됐다. 특히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나온 발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 2월 25일 11차 변론에서 윤 대통령의 대리인 김계리 변호사는 "저는 14개월 딸을 둔 아기 엄마"라며 최후변론을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담화문을 천천히 읽어봤는데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일당독재의 파쇼 행위를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하려고 비워둔 시간을 나눠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
저는 계몽됐다"라고 말했다. '계몽'은 주로 극우 유투버들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윤 대통령이 계엄을 통해 국민들에게 깨우침을 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 측 역시 탄핵심판에서 "국민들이 이 사건을 계몽령이라고 하는데
일부에서 내란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당 발언 이후 온라인에서는 '계몽 계리'가 화제가 될 만큼 파급력이 컸다.
반면 국회 측 대리인단인 장순욱 변호사는 노래 가사를 들며 탄핵 인용을 촉구해 관심을 받았다. 장 변호사는 최종변론에서 "피청구인의 오염시킨 헌법의 말에 대해 말씀드리려 한다"며 "피청구인은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고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이라고 했다.
장 변호사는 "
제가 좋아하는 노래 구절에 이런 가사가 있다"며 입을 뗀 뒤 "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류영주 기자·연합뉴스⑨尹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 vs 정청래 "달 그림자도 목격자"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내내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려 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누군가를 끌어내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며 "
군인이 국민을 억압하거나 공격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계엄군이 국회 본청 창문을 깨고 진입한 것에 대해선 "시민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불 꺼진 창문을 찾아서 들어갔다"고 맞섰다.
윤 대통령은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를 했니 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마치 허상과 같은 주장들이 사실처럼 제기된다는 취지다.
그러자 국회 측은 반격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에 나와 "12·3 내란의 밤,
전국민이 TV 생중계를 통해 국회를 침탈한 무장한 계엄군의 폭력 행위를 지켜봤다"며 "하늘은 계엄군의 헬기콥터 굉음을 똑똑히 들었고, 땅은 무장한 계엄군의 군홧발을 봤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
호수 위에 떠있는 달그림자도 목격자"라며 "전국민이 목격자이고, 전세계 외신들도 한국의 비상계엄 친위 쿠데타를 실시간으로 타전했다"며 윤 대통령의 발언을 저격했다.
그러면서 "내란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을 파면해야 될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은 이미 성숙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4일 오전 11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한다. 변론이 종결된 지 38일 만으로, 이날 결과에 따라 윤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