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연합뉴스공소시효 만료를 3일 앞둔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의 공무상 비밀 누설 사건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뒷북'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공수처는 검찰이 사건을 늦게 이첩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공수처에도 같은 고발 건이 접수돼 있었음에도 1년여간 수사가 사실상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 또한 공소시효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수처에 해당 사건을 뒤늦게 이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는 지난 6일 이 검사를 주민등록법 및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위장전입하고, 대기업 임원으로부터 리조트 객실료를 수수하는 한편, 처가가 운영하는 골프장 직원과 가사도우미의 범죄기록을 조회한 이 검사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다만 이 검사의 일반인 범죄기록 조회와 관련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사건은 '고위공직자범죄'로 보고 지난 10일 공수처에 이첩했다. 이 검사 혐의는 오는 29일 공소시효(5년)가 만료된다.
앞서 이 검사 사건은 2023년 10월과 11월, 검찰과 공수처에 각각 고발장이 접수된 바 있다. 이 검사 의혹은 2023년 10월 김의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기하면서 불거졌는데, 민주당은 이 검사를 검찰과 공수처 양측에 모두 고발하며 수사가 시작됐다.
공수처가 해당 사건을 검찰로부터 이첩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체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접수된 지 17개월 만에 공소시효 만료를 목전에 두고 '늑장 수사'에 나섰다는 비판이 불가피해졌다.
공수처는 지난 21일 이 검사 의혹과 관련해 대검찰청 정보통신과 서버를 압수수색하고, 의혹을 제보한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지난 24일에는 서울동부지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1년 넘게 사실상 답보 상태에 머무르던 수사가 검찰이 사건을 이첩한 이후에서야 본격화 된 모양새다.
공수처도 수사가 늦어진 부분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검찰의 이첩이 늦어서 시간이 촉박한 건 사실이다. 기간이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더욱 탄탄하게 수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수사를 할 수 있는 (시간 및 인력) 여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전날(24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이번주 내에 어떤 형태로든 처분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주어진 시간 내 최선을 다해서 이첩 받은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해당 사건(공무상비밀누설 혐의)을 수사 중에 미리 이첩해 공소시효 만료 전에 공수처가 충분히 수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종민 기자
공수처법 제24조와 25조에 따르면,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 또 공수처 외의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해당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
이창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검경개혁소위원장은 "검찰이 이 검사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인지했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서 (기소 전에) 수사 중이라도 곧바로 공수처에 이첩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적어도 (이첩 전에) 검찰과 공수처가 협조 하에 함께 수사를 하든지, 공수처에 통지라도 해서 양 기관이 효율적으로 공권력을 사용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며 "검찰과 공수처 두 수사기관 간의 협력체계에 관한 제도적, 법률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사건 수사 중에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만) 분리해서 보내는 게 수사 실무상 어렵다"며 "공수처에도 같은 고발 사건이 접수돼 공수처에서도 충분히 수사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