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윤석열 대통령의 최후진술은 끝내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국민을 배신한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대해 대국민 사과는커녕 임기단축 개헌을 제기하며 직무 복귀에 대한 의지만 강하게 드러냈다. 국민들은 헌재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다짐을 기대했으나 윤 대통령은 오히려 극렬 지지층에 손짓을 보내는 것으로 갈음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25일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끝까지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을 야당탓으로 돌렸다.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는 이른바 계몽령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회를 장악하고 내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거대 야당의 주장은 정략적인 선동 공작일 뿐"이라며 전 국민이 TV로 생중계된 국회 유린의 사실마저 부인했다.
부정선거와 중국개입론 등 음모론도 거듭 주장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투입한 것은 전산시스템을 스크린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궤변도 늘어놓았다. 그동안 탄핵심판 과정에서 증인들의 증언과 헌재가 채택한 사건 피의자들의 진술조서로 볼 때 비상계엄의 위헌성과 위법성은 충분히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끝끝내 야당책임론과 음모론을 앞세워 내란을 정당화하려 했다.
사과라며 내놓은 발언도 변명에 방점이 찍혀 진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발언은 사태의 심각성을 비껴간 궤변이다. 국민이 총선을 통해 구성한 입법부를 무력으로 침탈한 것은 단순히 불편을 끼친 차원을 넘어선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반역인데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라니 언어 파괴의 도가 지나치다.
윤 대통령은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87년 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고 격에도 맞지 않는 개헌추진을 거론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내란피의자에게 개헌과 정치개혁의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
윤석열은 최후진술 마저도 극렬 지지층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제 구속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다. 옳고 그름에 앞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서울서부지법 습격사건 관련자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이는데, 만에 하나 국민 분열을 획책하면서 혼란을 부추겨 헌재를 압박할 의도라면 내란사태에 버금가는 심각한 죄악이나 다름없다.
지지세력이 연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불복을 외치며 위력시위를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들은 탄핵심판 이후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폭력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건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도리인 승복 메시지였는데 윤 대통령은 이 마저도 외면했다. 그가 자리를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요인인 이유다.
이날 변론을 끝으로 헌재는 모든 변론기일을 종결하고 윤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짓는 재판관 평의에 들어간다. 3월 중순이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최종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12.3 내란사태는 민주주의의 퇴행과 함께 국론분열과 재판관 테러위협 등 법치주의가 위협받는 극심한 후유증도 낳았다. 이번 탄핵심판은 헌정질서가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돼야 한다. 다만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전원일치 의견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