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희망'을 찾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 4')는 침체된 '마블 유니버스'를 구할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일단 예매율 1위로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도파민'을 현저히 줄인 '순한 맛'이 관객들에게 통할 지는 미지수다.
한 때 초대 팔콘이었던 샘 윌슨(안소니 마키)은 '캡틴 아메리카 4'로 드디어 마블 영화 속 2대 캡틴 아메리카에 등극했다.
보편적 정의와 선함을 추구하고, 마블 히어로 중 가장 미국적인 영웅의 정체성을 가진 캡틴 아메리카는 샘 윌슨을 만나 인간과 히어로 사이, '평범한 영웅의 고뇌' 단계로 접어든다. 전임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가 혈청을 통해 '초인'과 다름 없는 캡틴 아메리카가 됐다면 샘 윌슨은 '그저 인간'일 뿐인 자신이 캡틴 아메리카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따라서 '캡틴 아메리카 4'는 필연적으로, 샘 윌슨이 여러 역경과 도전 끝에 2대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새롭게 캡틴 아메리카로 활약 중인 윌슨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썬더볼트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의 암살 테러에 휘말린다. 이로 인해 자신의 멘토나 다름 없는 슈퍼 솔저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가 감옥에 갇히자 그는 숨겨진 음모를 확신하고 배후를 찾아 나선다.
로스는 '캡틴 아메리카 4'의 서사를 이끄는 또 다른 축이다. 그는 딸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암살 테러 이후 윌슨에게 제안한 어벤져스 재건은 흐지부지되고, 세뇌와 확률 계산에 능한 '빌런' 새뮤얼 스턴스(팀 블레이크 넬슨)의 음모에 번번이 휘말린다. 결국 우방국인 일본과 셀레스티얼 섬에서 발견된 신물질 아다만티움의 이권을 두고 전쟁 위기까지 초래한다. '레드 헐크'라는 로스의 반전을 거쳐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때문에 이 같은 비중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로스 역시 윌슨처럼 자신의 분노와 '더 나은 변화'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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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담보로 한 로스와 스턴스의 복잡한 이해관계는 인간의 양면성과 함께 빌런도 빌런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군상을 그리는 시도는 좋았지만 2% 모자란 지능형 빌런 탓에 캡틴 아메리카와 대비가 옅어지면서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진다. '혈청'을 맞지 않은 샘을 배려해 약한 강도의 빌런을 설정했다면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팔콘 시절처럼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윌슨표 캡틴 아메리카의 액션은 셀레스티얼 섬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특히 윙 슈트를 이용해 전투기 및 미사일을 방어하는 액션씬은 캡틴 아메리카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꼭 '초인적 힘'이 아니더라도 날렵함과 예리함을 앞세워 캡틴 아메리카 볼거리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었다. 다만 클라이맥스 액션씬은 레드 헐크 로스의 서사와 의미에 집중해 액션을 통한 해결을 선호한다면 김이 샐 수도 있다.
차기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새로운 블랙 위도우 루스 벳세라프(쉬라 하스), 빌런 그룹 서펀트 소사이어티의 리더 사이드 와인더(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까지 이들은 각자 매력을 극대화한 액션씬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잠깐의 소개나 조력 이상의 역할은 없다. 차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중요한 캐릭터들임에도 영화가 쌓은 서사에 촘촘하게 연결되거나 뭉치지 못하고 단발성으로 소모된다. 이 같은 캐릭터들의 난립이 다소 산만한 느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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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한 과정을 거쳐 '캡틴 아메리카 4'는 '평범한 사람들의 정의'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모두 다면적이며, 심지어 거칠 것 없어 보이는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조차 터놓고 부담감을 인정한다. 이와 동시에 '보통의 선함이 줄 수 있는 희망'을 찾는다. 굳이 상대를 끝까지 압박하는 액션, 즉 극단적 폭력 없이도 세상의 평화는 유지될 수 있다. 빌런 같지 않은 빌런, 선명하지 않고 애매한 경계선상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은 마블 히어로 영화의 달라진 문법을 체감하게 한다. 중독적 도파민·통쾌한 사이다보다 좀 더 돌아가더라도 '인간다움'에 집중하겠다는 각오다.
음식으로 치면 맛이 순하고 단순할수록, 더 깊은 내공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 4'는 복잡한 내용에 비해 서사의 밀도는 낮고, 이를 이끄는 캐릭터들의 힘도 평이한 수준이라 아쉬움을 남긴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반가운 카메오는 마블의 새 다크 히어로 영화 '썬더볼츠*'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풀지 못한 '마블의 숙제'가 남았음을 상기시킨다.
상영 시간 118분(쿠키 영상 있음), 2월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