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윤석열 대통령 측이 탄핵심판 7차 변론 기일에서 비상계엄의 근거로 중국이 연관된 '하이브리드 전쟁'까지 꺼내들었다. 근거가 없는 부정선거론과 함께 중국의 선거개입 의혹, 이와 함께 국회에서 계류된 간첩법도 연결시키며 심판정에 '음모론'을 드리우는 모양새다. 탄핵심판 법리 다툼에 집중하기 보다 정치 투쟁과 극렬 지지층 결집에 몰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상계엄 선포까지 절차적 위법성 논란도 여전한 상태다.
'중국 개입' 하이브리드 전쟁이 탄핵 심판에
헌법재판소는 전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윤 대통령 측은 신 실장에게 '중국의 타국 선거 개입설'을 꺼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 전쟁 방식에 정치공작과 심리전 등을 더한 '하이브리드 전쟁'이 국가 안보 위협으로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리드전을 벌일 가능성이 큰 중국이 부정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음모론'이다.
대통령 측 차기환 변호사는 "중국이 다른 나라 선거에 개입하는 게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며 "중국이 타국 선거에 개입하는 정치공작, 가짜뉴스를 이용한 인지전·여론전 또는 사이버전 등을 종합해서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나"고 묻자 신 실장은 "그런 보도를 본 적은 있다"고 했다.
이어 차 변호사는 "그런 정도의 중국이라면 한국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선거 개입 시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하지만 신 실장은 "가정을 전제로 (묻고 답하면) 외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며 더 이상의 호응 없이 선을 그었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하이브리드전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핵심 이유로 들었던 '부정선거론'보다 한 발 더 나간 주장으로 풀이된다.
야당 정치인들의 이름도 거론됐다. 윤 대통령 측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몽을 함께 하겠다'고, 이재명 대표는 중국 대사를 만나 한국 내정 간섭적 발언했을 때 또는 중국과 대만 문제는 '셰셰(謝謝·고맙다)하면 된다'는 표현을 했다"며 "이렇게 정부나 여당, 국회 1당 대표가 친중적인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면, 이 경우에도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하기 적절한 환경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신 실장은 이 역시 답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의혹에 더해 윤 대통령은 '간첩법' 개정안을 연결시켰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겨냥해 "위헌적인 법들, 핵심 국익을 침해하는 법들을 일방적으로 신속하게 국회에서 그렇게 많이 통과시켜 놓고 왜 간첩법은 문제가 많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아직도 계속 심사숙고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며 "개정하기로 여야가 합의를 다 해놓고 중국인 문제가 생기니까 갑자기 야당에서 보류했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7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이와 관련 국회 측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발언 기회를 얻어 "간첩죄를 거대 야당이 막았다고 하는데 저희는 막은 적이 없다. 공청회 등 숙의 과정을 거치자고 해서 보류된 상태"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의 이같은 변론 전략을 두고 탄핵심판 쟁점을 벗어난 '정치 투쟁'과 '여론 몰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 측은 이미 첫 번째 변론 준비기일에서 탄핵심판을 '정치투쟁의 장'이라 규정지은 바 있다.
결국 극렬 지지층 결집으로 헌재의 탄핵심판을 압박하는 한편, 탄핵 인용이 되더라도 향후 형사재판에 대비하는 측면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서명' 없었는데 사후 결재 가능하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7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같은 날 증인석으로 나왔다.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 갖춰야 할 국무회의 등 절차적 요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위법성 논란을 반박할 입증은 여전히 부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 측이 국무회의 절차적 흠결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재판관은 국무회의의 적법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날 윤 대통령 측이 부각하려 했던 부정선거 의혹과 중국 개입설 등에 재판관들의 질문이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은 것과는 대비됐다.
이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었다고 하는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이 서명하는 '부서'가 없었던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애초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시간이 워낙 짧고 그 이후에 내란이다 뭐다, 각종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에 소관 부처에서도 부서를 놓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이 "잘못 말한 것 같다"며 끼어들었다. 그는 "국무회의 자체는 부서가 없고 국무 회의록에 계엄 선포면 관계 장관과 총리, 대통령이 하는데 그건 사후에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두 재판관도 물음표를 달았다. 김 재판관은 이 전 장관에게 "국무회의 회의록에는 평상시에 부서를 안 하는지" 물었고, 이 전 장관은 "회의록에는 부서를 안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재판관은 "조금 이상한 게 평상시 국무회의 때 서명을 안 하는데 그날은 왜 서명을 받으려고 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이 전 장관은 "저도 모르겠다. 저도 그 상황이 기억난다. 저쪽에서 서명을 이야기하면서 안 하고 갔다고 하길래 무슨 서명이냐, 서명이 필요 없다고 제가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또 "서명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손으로 서명하지 않는다. 전자서명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7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윤 대통령도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보안을 요구하는 국법상 행위에 대해 사전에 요구한다면 문서 기안자인 실무자가 내용을 알 수 있기에 사후에 전자결재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는 이러한 사후 결재조차 없었다.
한편 국회에서는 '입'을 닫았던 이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책임을 불식하는 데 힘썼다. 그는 계엄 당일 '언론사 등의 단전·단수' 조치를 담은 쪽지를 멀리서 본 적은 있다고 증언했다. 사실상 위법적 조치가 계엄 선포 전에 준비됐다는 증언이 국무위원 입에서 나온 셈인데 이 전 장관은 대통령 지시도 아니고 자신도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되레 "정말 대통령이 고심이 크셨을 수밖에 없겠다"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계엄 해제 의결 이후 지하 3층 전투통제실 중 하나인 결심지원실을 향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의아한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직후 실제 해제까지 시간이 걸린 데 대해 "계엄 해제를 해야 하는 데 문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싶어서 국회법을 가져오라고 했다"고 해명한 것이다. 하지만 해제 결의 관련 절차적 문제를 찾아 비상계엄 체제를 더 유지하려던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