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미국이 이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발언을 한 일에 대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22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아랍연맹의 정상들이 긴급 소집됐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집트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오는 27일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현안 논의를 위해 아랍정상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아랍정상회의는 아랍연맹 소속 국가들의 정상이 모여 국제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다.
이집트 외무부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심각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AL)은 '가자지구 구상'에 대해 즉각 성명을 내고 "충격적"이라며 "국제법을 위반해 더 큰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라고 반발했던 만큼, 이 회의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가자지구 구상' 발언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구상을 밀어붙이면, 본인의 1기 집권 시절 치적 중 하나로 내세웠던 '아브라함 협정'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사우디를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시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수교를 완성하겠다는 그의 구상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가 이뤄진다면 자신의 집권 1기 때인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등과 이스라엘의 수교를 미국이 중재해 끌어낸 '아브라함 협정'을 확장·완결시켜 중동 평화를 크게 신장시킬 수 있다는 계산을 했었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할 경우 중동의 긴장을 크게 완화하고,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까지 견제하는 효과를 더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 구상을 발표하며 스스로 찬물을 끼얹었다. 장기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수립을 지지해온 미국의 '두 국가 해법' 정책을 사실상 뒤집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거센 반발에 직면한 것이다.
사우디도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팔레스타인 주권 국가 수립 없이는 이스라엘과 수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인근 아랍 국가로 이주시키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수교하는 일의 전제조건으로 민간 분야 원자력 개발 허용과 함께 팔레스타인 독립국 수립을 요구해왔다.
이스라엘은 사우디의 반발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나서면서 아랍권의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반감은 더욱 증폭되는 기류다.
베냐민 네탸냐후 총리는 지난 6일 사우디를 겨냥해 "팔레스타인 국가를 원한다면 영토가 넓은 사우디 안에 세우라"고 말한 데 이어,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선 '가자지구 구상'이 팔레스타인 땅의 미래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자국이 이를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