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게 직접 증인신문하는 윤 대통령. 헌법재판소 제공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12.3 내란사태 이후 구치소 수감 중에 자살 소동을 일으켰다. 상황이 과연 심각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실패한 친위 쿠데타의 주동자로서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다고 여겨졌다.
앞서 김 전 장관은 12.3 사태 다음날 사의를 표명하며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비상계엄 사무와 관련해 임무를 수행한 전 장병들은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민주주의 후퇴, 경제 타격, 국격 손상에 상처 입은 국민에겐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됐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관련자들이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가 얼마간 울림을 줬다. K-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을 보여줄 전화위복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의 태세 전환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23일 윤석열 탄핵 심판 4차 변론에서, 국회 본청에서 끌어내라고 한 대상은 '의원'이 아니라 '요원'이었다는 식으로 윤 대통령 측과 어설픈 사후 말맞추기에 들어갔다.
이로써 김용현은 여타 황당한 궤변과 비겁한 변명과 더불어 일거에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군복 입었다고 할 말 못하면 병X"이라고 외치던 기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죄과 앞에서 살아남을 궁리에 바쁜 추한 몰골만 남아 있었다.
그의 말처럼 진짜 계엄할 의도는 없었고 야당에 경고만 하기 위해서였다는 '계몽령'이 사실이라면, 구차하게 굴 게 아니라 여전히 당당하게 야당에 호통치며 '계몽'해야 한다. 하지만 내란의 증거와 목격자가 이미 산처럼 쌓인 터라 그러지도 못한다.
결국 김 전 장관은 국가를 배신하고 국민을 거듭 속였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하의 등에도 칼을 꽂은 최악의 졸보가 됐다. 그는 윤 대통령과 짜고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에게 국회 장악 작전의 책임을 전가했다. 물론 이는 탄핵 사유의 핵심인 입법권 침해를 면피하기 위해서다.
파렴치도 이런 파렴치가 없다. 이번에는 '요원'과 '의원'이 아니라 '인원'과 '의원'의 차이를 부각했다. 곽 전 사령관의 다소 서툰 말솜씨를 약점으로 파고들어 증언의 신빙성 자체를 흔들려는 것이다.
윤창원 기자·사진공동취재단하지만 곽 전 사령관은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끄집어내라"고 한 윤 대통령의 지시를 일관되게 진술·증언하고 있다.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메시지는 '국회 문을 부수고'라는 전제가 있음으로 해서, 그 목적어가 무엇으로 표현됐든 결국 국회의원을 표적 삼았음을 상식선에서 말해준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곡예 수준의 법 기술을 쓴다고 해도 탈출은 불가능할 것이다. 곽종근 같은 부하 몇몇을 토사구팽하고, 김용현과는 일시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으로 보이지만 세상 모두를 속일 수는 없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실패 후 내뱉은 "중과부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12.3이 결코 '야당 경고용'이 아니라 죽기살기식 친위 쿠데타였음을 보여준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라는 영화의 명대사가 아니더라도 패장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군 출신 김 전 장관이 모를 리 없다. 검찰에서 마음껏 칼을 휘두르며 뭇사람을 단죄했던 윤 대통령 역시 내란죄는 모의만으로도 처벌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무죄'라는 식의 현실도피성 궤변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준다. 일국의 지도자와 국방장관이란 사람들이 이런 어린애 투정 같은 얘기를 하고 있으니 국격이 또 와장창 무너지는 부끄러움은 다시 국민 몫이다.
30년 전 전두환 신군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는데, 이제는 '실패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없다'는 시대로 만들려 하는가.
우리는 지금 최소한의 군인정신, 공인의식조차 없는 가련한 군상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