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 지명자가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피트 헤그세스(44) 미국 국방부 장관 지명자는 14일(현지시간) 인사청문회 사전 답변서를 통해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칭했다. 그는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지위와, 핵탄두를 운반하는 미사일 사거리 증대에 대한 강도 높은 집중은 모두 한반도,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의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는 표현은 인도, 파키스탄 등 '공인받지 못했으나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가진 나라'를 뜻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미국은 그동안 '비핵화'를 요구하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아왔다.
헤그세스 지명자의 발언은 오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핵문제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북한과의 비핵화 혹은 핵군축, 동결 등의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한과의 핵협상에 있어 1기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당선인이 직접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당선 뒤에도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백악관 수석 국가안보부보좌관에 1기 행정부 당시 대북 협상 실무를 담당했던 알렉스 웡을 임명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는 대북특별부대표로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나의 정상회담 협상을 도왔다"면서 다시 한번 같은 임무 수행을 위해 그를 발탁했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정원은 지난 13일 국회 정부위원회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과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단기간 내에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가 달성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핵 동결과 군축 같은 작은 규모의 협상, '스몰 딜' 형태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북핵문제 해결 속전속결 가능성…'나쁜 협상' 우려도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만난 북미 정상. 연합뉴스북한은 표면적으로는 미국과의 핵협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미 대선 이후인 지난해 11월 21일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 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 정책"이라며 협상 재개에 부정적인 뜻을 분명히 했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 1기 재임 기간 3차례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아무런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시작으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가졌고, 같은해 6월에도 판문점에서 만났지만 성과물은 없었다.
다만, 북한의 이런 입장은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성과가 없다고 하지만 세습 3세인 김 위원장은 미국 대통령과의 사상 첫 정상회담을 통해 몸값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는 전대에서도 이루지 못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제재 완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며 중국의 경제지원이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돌파구 마련을 위한 북미간 협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과 김 위원장이 직접 협상에 직접 나설 경우 한국은 물론 북핵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반도 주변국들에 대한 '패싱'이 우려된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북미간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자임했지만 결과적으로 '코리아 패싱'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트럼프 당선인은 임기가 4년으로 제한돼 있어 오는 20일 취임과 동시에 북한과의 협상을 속전속결로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12.3 내란사태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고 심지어 15일에는 윤 대통령이 체포되면서 사실상 북미간 핵협상에 관여할 주체조차 없는 상태다.
여기다 어떤 방식으로든 북핵문제 해결을 성과로 노벨 평화상을 노리는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 등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나쁜 협상'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대로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또는 동결이라는 '스몰 딜'로 북미간 협상이 진행될 경우 한국 입장에서는 뼈아픈 상황이 될 수 있다.
'혈맹 관계'를 내세우며 전통적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중국 입장에서도 주변국을 패싱하고 북미 양국간 협상이 추진된다면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을 예고한 트럼프 당선인은 북핵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쓸 가능성도 있다.
北美 직접 협상이 불편한 中…'패싱' 韓·日과 관계개선 모색
2019년 6월 방북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CCTV 캡처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중국의 외교사령탑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장관)의 지난해 3월 양회 기자회견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안보 우려'를 들어 북한을 두둔하면서도 "현재의 한반도 정세가 날로 긴장되는 것은 중국이 원치 않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왕 부장은 그러면서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고, 평화체제가 확립되지 않았다"며 문제의 근원을 미국에 돌렸다. 이어 처방전이라며 "중국이 제안한 '쌍궤병진'(비핵화와 북미평화협정 동시 추진) 아이디어와 '단계적, 동시적' 원칙"을 제시했다.
인도태평양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등 전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북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국을 패싱하고 미국과 북한이 직접 협상을 통해 관계개선에 나서는 것 역시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관련해 지난해 5월 중국 베이징 방문 당시 조태열 외교장관은 "지금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미중 전략 경쟁이 겹쳤다"면서 "4~5년 전 중국이 할 수 있었던 역할과 지금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많이 다르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한마디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동안 중국에 크게 의존해 오던 북한이 최근들어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특히, 북한군이 사상 처음으로 해외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규모 참전한 댓가로 러시아로부터 군사, 경제적 지원을 받는 등 중국이 기대하던 바와 달리 한반도 정세가 흘러가고 있다.
이에따라 중국은 한국,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만회하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 대선을 전후해 고위급 교류 확대, 무비자 대상국 지정 등의 당근책을 잇따라 제시하며 양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 푸틴과의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북핵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이는 중국에 큰 압박이 될 것"이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중국이 한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면서 전통적인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흐려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