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수사처로 압송되고 있다. 과천=박종민 기자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15일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했다. 수사기관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에 나서 현직 대통령을 체포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공수처는 15일 오전 11시부터 내란 우두머리(수괴)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당초 공조본은 대통령경호처의 저항을 고려해 2박3일 장기전까지 염두에 두고 집행에 나섰지만, 경호처 저항이 예상과 달리 거세지 않으면서 체포까지 불과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영장 집행이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된 배경에는 공조본이 경호처를 향한 회유와 압박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윤 대통령 측은 유혈 사태 등 불상사를 우려한 윤 대통령이 출석하기로 생각을 바꿔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공조본은 이날 오전 4시 2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해 관저 진입을 시도했다. 당초 영장 집행에 가장 큰 걸림돌은 경호처로 예상됐지만, 처음으로 공조본을 막아선 건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국민의힘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다"라며 공조본에 저항했다.
2시간 넘는 대치 끝에 공조본은 철조망을 절단하고 사다리로 차벽을 넘어 오전 7시 30분쯤 1차 저지선을 통과했다.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무혈입성'이었다. 1차 저지선을 지난 지 25분 만에 2차 저지선을 넘어 관저 방향으로 올라가 3차 저지선에 도착했다.
3차 저지선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마지막 카드로 '자진 출석'을 꺼내 들었다. 공수처와 경찰이 관저에서 나가면 윤 대통령이 1~2시간 준비를 마친 뒤 공수처로 출석한다는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 측은 1시간 30분가량 공조본과 협상을 벌였지만, 공조본은 오전 10시 33분쯤 윤 대통령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협상이 이뤄지는 동안 윤 대통령은 "공수처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일단 공수처의 출석에 응하기로 했다"는 취지의 영상을 촬영했다. 이 영상은 윤 대통령이 공수처로 이동하는 사이 대통령실을 통해 공개됐다.
공조본이 대통령 관저에 도착해 윤 대통령을 체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6시간 남짓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대치, 윤 대통령 측과의 협상을 제외하면 관저 내부로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 3일 1차 집행 당시 5시간 30분 동안 관저도 진입하지 못한 상황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결과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에 의해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윤석열 대통령 관저를 나서고 있다. 류영주 기자비교적 평화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집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호처의 입장 변화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호처는 전날 공수처·경찰 간 3자 회동이 끝나고 "사전 승인 없이 강제로 출입하는 것은 위법한 것으로 이후 불법적 집행에 대해선 관련 법률에 따라 기존 경호업무 매뉴얼대로 대응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하지만 강경 대응 입장은 박종준 전 경호처장 사퇴 이후 처장 대행을 맡은 김성훈 경호차장 등 일부 지휘부의 의견일 뿐 일선 경호처 직원들과 합의된 것은 아니라는 내부 분위기가 전해졌다. 영장 집행 당시 경호관 대부분은 대기동 내에 머물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는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해 공수처와 실무 협의를 담당하는 소수 경호처 인력만 남았다.
1차 집행 당시 스크럼을 짜며 윤 대통령을 지켰던 경호관들이 2차 집행에는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이를 두고 공조본의 '당근과 채찍' 전략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공수처는 집행에 앞서 지난 13일 국방부·경호처에 "영장 집행을 방해할 경우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고 인적·물적 손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 책임도 질 수 있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반면 경찰청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같은 날 "현장에서 방해하는 사람은 현행범 체포하고, 협조하는 직원들에 대해선 선처할 것"이라며 회유에 나섰다.
이런 이유로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유혈사태 없이 마무리됐다는 취지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경호처 직원들이 거의 없었고, 물리적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은 공수처가 불법 영장으로 관저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경호처와 경찰의 충돌 과정에서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와 시민 안전에 대한 걱정 등을 이유로 자진 출석을 결단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