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영화관 모습. 황진환 기자한국 영화산업을 떠받쳐온 주요 재원인 영화발전기금(영발기금)을 뒤흔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질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뒷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이하 영화인연대)와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14일 공동 성명을 내고 "지난 12월 10일 국회에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영화관 입장권 가액 부과금(이하 부과금)이 폐지됐다"고 운을 뗐다.
이들 단체는 "정부가 국민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영화관람료를 인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영비법 개정을 추진한 결과"라며 "그러나 영발기금 조달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먼저 필요하다는 많은 우려 속에 대책 없이 통과된 영비법 개정안은 영화관람료와 소비자 부담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대형 극장사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는 조속히 영화발전기금 조달과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존 영비법에서 문체부 산하기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영화관 입장권 가액의 100분의 5 이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었다. 대통령령에 따라 3%의 부과금이 영화관람료에 포함돼 있었다. 이 부과금은 영발기금의 가장 주요한 재원으로서 그동안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크게 기여해왔다."
영화인연대 등은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영화관람료 인하를 위해 영화발전기금을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라며 성토를 이어갔다.
"주말 영화관람료 1만 5천원의 3%는 450원이다. 500원도 채 되지 않는 소액 인하에 대해 소비자들의 체감이 미미할 것이 분명하다. 영화관람객의 관람료 부담을 심화시킨 주된 책임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영화관람료를 25%나 급격히 인상한 대형 극장사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엉뚱한 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부과금은 폐지됐고, 영화관람료는 내려가지 않았다"
이들 단체는 "영화계 또한 일방적인 부과금 폐지에 따른 영발기금 조달에 대해 큰 우려와 유감의 목소리를 냈지만 정부는 영비법 개정을 강행했다"며 "그러나 문체부는 충분한 검토시간이 있었음에도 영화발전기금 재원 조달과 영화관람료 인하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폐지된 부과금은 고스란히 극장사의 수익이 됐다"면서 "영화관람료 인상에도 오히려 제작·배급사와의 정산 기준이 되는 객단가는 떨어지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며 영화관람료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한 영화인들의 문제제기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극장사들만 또 다시 영비법 개정의 수혜자가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되는 과정에서 부과금 폐지의 효과가 영화관람객이 아니라 극장사로 돌아갈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극장업계도 부과금이 폐지되더라도 관람료 인하는 어렵다는 입장을 일찍이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법 개정의 부작용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의 무책임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인연대 등은 특히 '영화 관람객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영화상영관 입장권의 요금 인하를 통해 영화 관람 수요 증가·영화산업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부과금을 폐지하겠다고 한 정부여당의 입법취지를 지목하면서 "극장사의 영화관람료 인하 불가 입장과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문체부가 업계에 '촉구'해 보겠다고만 하는 것은 정부부처로서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부과금은 폐지됐고, 영화관람료는 내려가지 않았다. 과거 1년에 2억명 넘는 관객들이 내던 수백억원의 부과금은 고스란히 영화상영시장을 독과점한 대형 극장사의 배만 불리게 됐다. 정부는 영화발전기금 수입원을 세금으로 대체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영화발전기금 재원 다각화 등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기금 조달 계획 수립 없이 단기적인 대응만을 하고 있다. 이에 부과금을 되살려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이들 단체는 "문체부는 구체적인 영화발전기금 재원 조달 계획을 제시하고, 관객이 낸 관람료가 영화계에 공정하게 분배되는 환경과 시스템을 마련해 객단가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시민들에게 공언한 대로 영화관람료 부담을 낮춰야 한다"며 "극장사가 관람료를 인하할 것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총선을 앞둔 대통령의 막무가내 지시만 따르다가 영화업계의 혼란을 초래한 문체부는 지금이라도 한국 문화와 영화산업의 진흥,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 책임감 있는 자세로 상황 정리에 나서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