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첫 번째 변론기일이 1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윤 대통령 측은 첫 변론 하루 전날 정계선 헌법재판관에 대한 기습 기피 신청에 더해 무더기 이의신청까지 하면서 심판 속도에 제동을 걸었다.
윤 대통령 측의 탄핵심판 지연 전략이 현실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헌재는 이날 변론기일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은 '신변 안전'을 이유로 첫 기일 불출석을 예고한 상태여서 첫 변론부터 공전이 예상된다.
하루 전날 '재판관 기피'…심판 지연 현실화?
정계선 헌법재판관. 황진환 기자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 측은 새로 임명된 정계선 재판관에 대해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기피 신청을 했다. 변론 개시 자체와 증거 채부 결정, 변론기일 일괄지정에 대한 이의 신청서도 냈다.
윤 대통령 측은 정 재판관에 대해 "법원 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우리법연구회'의 회원이자 회장을 역임했다"며 기피 신청 사유를 밝혔다. 또 "정 재판관의 배우자인 황필규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고 그 재단법인의 이사장이 국회 측 탄핵소추대리인단의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기피신청이 있는 경우 결론이 나올 때까지 소송절차를 중지해야 한다. 헌재는 이날 오전 10시 재판관 회의를 열고 해당 문제를 논의한다. 다만 헌재 관계자는 예정된 변론기일 변동은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기피 신청이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분명하면 각하할 수 있다.
윤 대통령 측의 잇따른 이의신청도 노골적 재판지연 전략이 드러났다는 방증이다. 헌재가 이날부터 정식 변론에 들어가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이의신청했다. 헌재법에 따라 5차례 변론기일까지 일괄 지정한 것을 두고도 "방어권과 절차참여권을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尹 불출석에 첫 변론 '공전' 불가피
변론이 예정대로 열리더라도 윤 대통령이 불출석을 예고한 만큼 첫 변론기일은 빠르게 끝날 전망이다. 헌재는 전날 "1차 기일에 당사자가 불출석할 경우 빨리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2차 기일부터는 헌법재판소법 52조 2항에 따라 심리 절차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헌재법 52조는 당사자가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다시 기일을 정하도록 한다. 그 기일에도 나오지 않으면 당사자 없이 심리할 수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첫 변론기일은 15분 만에 끝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불출석으로 첫 기일이 9분 만에 맥없이 종료됐다.
박 전 대통령은 심판정 출석 대신 변론 기일 이틀 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탄핵소추위원장이던 권성동 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탄핵 법정 밖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재판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격 변론에서 '내란죄', '수사기록' 놓고 공방 예상
국회 탄핵소추단. 황진환 기자사실상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본격 심리는 오는 16일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우선 국회가 탄핵소추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빼겠다'고 해 공방이 치열할 전망이다. 내란죄 유무죄 판단은 형사법정에 맡기고 헌법수호제도인 탄핵심판 성격에 맞게 가자는 게 국회 측 뜻이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탄핵 소추 사유의 80%가 내란죄라며, 사건을 각하해야 한다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국회가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바뀌지 않는다면 소추 사유에 어떤 법률을 적용할지, 어떻게 평가할지는 전적으로 헌재의 직권 사항이다.
과거 헌재는 노 전 대통령에게 공직선거법상 부정선거운동죄가 성립하는지를 따졌다. 헌재는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를 규정한 선거법 60조 위반에 대해 "능동적·계획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며 사실상 무죄로 봤다. 반면 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뇌물죄 등 범죄 성립 여부가 탄핵소추 사유에 포함됐지만, 헌재는 별도로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12·3 내란사태' 관련 수사기록 및 국회 회의록 등 증거 채택을 두고도 양측이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측은 검찰, 경찰, 군검찰로부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죄 수사를 받는 이들의 피의자신문조서와 공소장 등을 받아달라고 했고, 헌재는 이를 받아들였다.
윤 대통령 측은 '재판·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해서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는 헌재법 32조를 들어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이의신청도 냈다.
다만 헌재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실시하는 송부촉탁은 헌재법 10조1항, 심판규칙 39조1항과 40조에 근거한 것"이라며 "헌재법 32조 단서 위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도 헌재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등에 대한 수사 기록을 받아 봤었다.
윤 대통령 측 재판 지연 전략과 장외 여론전 등 가열되는 가운데 첫 변론기일에서 재판부의 당부가 나올지도 주목된다. 박 전 대통령 첫 기일 당시 박한철 헌재소장은 "대공지정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한 심리"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