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연석.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로코퀸'이라는 수식을 얻은 여자 배우들은 많지만, 멜로에 강한 남자 배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배우 유연석은 꾸준히 로맨스로 시청자들 마음의 문을 두들겨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MBC 금토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을 통해서다.
시청률 5.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동일)로 순조롭게 시작했지만, 12·3 내란 사태 등이 터지면서 2주 가까이 결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 거신 전화는'은 시청자들 사이 입소문을 타면서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해 마지막 방송에선 8.6%로 마무리됐다.
로맨스릴러를 표방한 이 드라마는 결국 주연 두 사람이 얼마나 '긴장감'을 가져 가느냐에 그 운명이 달렸었다. 최연소 대통령실 대변인 백사언 역의 유연석은 소위 '오글거리는' 대사도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하며 로맨스 베테랑의 면모를 여지 없이 선보였다. 쇼윈도 아내인 수어통역사 홍희주 역의 채수빈과 점점 깊어가는 감정선 역시 치밀하게 표현했다.
지난 한 해, 유연석은 SBS 예능프로그램 '틈만나면,' MC로, 또 몰아치는 촬영들로 누구보다 숨 가쁘게 보냈다. 둘 사이의 연애를 바랄 팬층이 생길 정도로 '지금 거신 전화는'이 남긴 성과는 상당하다. 과연 유연석에게 '지금 거신 전화는'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다음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진행된 유연석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배우 유연석.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Q 희주와 수어로 소통하면서 감정 연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소통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 않나A 같이 대사를 하는데 독백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내가 적힌 걸 읽고, 시청자도 읽어야 하는 시간이 있지 않나. 이게 지루한 공백이 될까봐 걱정해서 여러 아이디어를 냈었다. 그러다 결국 두 사람이 소통하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을 수어로 통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이 어렵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둘이 직접 만나는 장면이 많지 않았는데 계속 옆에서 통화해주고, 다른 공간에서 찍으면 미리 통화 장면의 대사를 녹음해서 보내주고 그랬다. 그러면 그걸 틀어 놓고 연기했다. 극도의 미묘한 감정을 보여줘야 돼서 공들여 촬영을 했던 것 같다.
Q 내란 사태, 여객기 참사 등 시국이 혼란해지면서 길게 결방을 겪기도 했다. 드라마가 치고 올라갈 시점이라 안타까웠을 것 같다
A 대통령실 대변인 역이었는데 연말에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니 저도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 때 대변인실에서 하는 촬영 현장 게시물을 올리지 못했다. 현실과 결부하면 드라마 속 판타지와는 또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기다렸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봐주셔서 감사하다. 마음 편히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수 있지 않나. 나도 같은 마음으로 가슴 아파하면서 기다리고, 한편으로는 우리 드라마 보면서 잠깐 위로와 재미를 찾는 시간이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했다. 결방 이후에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기다린만큼 좋은 결말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배우 유연석.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Q 처음에는 협박범과의 스릴러 같았지만 결국 깊은 감정선의 로맨스로 가게 된다. '나한테 벌주고 있는 거야' 등 소위 '오글거릴 수 있는' 대사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어떻게 소화했나A 처음에는 전작 촬영 중인 게 완전 스릴러라 이것도 너무 장르물로 봤다. 그런데 장르 특징을 스릴러로 가져 온 신선한 로맨스더라. 이 때문에 로맨스 힌트를 좀 더 앞으로 당겼으면 좋겠단 이야기는 했었다. 초반에 냉랭한 장면을 찍다가 뒷부분 대본을 보니 '이게 보통의 남자들이 하는 말인가' 생각은 들었다. 신기하게도 막상 그 장면을 찍을 때쯤 되니까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 감정이 젖어 있었다. 제가 믿고 해야, 그걸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낯간지럽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Q 그 때문인지 실제로 두 사람이 사귀면 좋겠다는 반응도 많았다. 그래서 베스트 커플상도 받았다. 넷플릭스에서는 TV 부문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통했단 이야기다A 사언이는 좋은 뜻에서 '희친놈'(희주에 미친 사람)이다. 굉장히 달콤하게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말로 내뱉어 주는 것에 감동하고 열광하시지 않았을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웃음) 둘이 만나라고 응원할 정도니까. 시청자들이 몰입해서 봐주신 증표다. 한 동안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장르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잊혀졌던 츤데레 순애보 캐릭터의 사랑 이야기를 오랜만에 팬들이 접하니까 열광을 해줬던 거 같다. 우리가 한국말로 들었을 때 '오글거리는' 것들이 번역이 되고 더빙이 되어서 봤을 때는 더 달콤하게 전달됐던 거 같다.
배우 유연석.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Q 반려견 리타의 깜짝 출연도 있었다. 집사로서 감회가 남다르겠다A 행복한 일상 상상 장면에서 대본상에 큰 개와 산책하는 부부가 있었다. 세트 촬영을 할 때는 제가 리타를 데리고 다녔는데 특별출연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리타 공주에게 조심히 물어보고 목욕을 시켜서 출연을 했다. 제작진으로부터는 간식 보상을 받았고, 저도 따로 챙겨줬다. (웃음) 제가 일일 매니저를 맡아서 촬영을 했고, 완벽한 연기를 펼쳐주셨는데 본 방송에서는 엉덩이만 나와서 안타까웠다. 바스타 샷은 편집됐다. 본 방송 보는데 너무 속상했다. 매니저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웃음)
Q 같은 소속사인 채수빈과의 호흡은 어땠나.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좋은 '케미'를 보여준만큼 평소에도 사이가 좋을 것 같다
A 본인이 생각한 감정까지 올라가려고 최선을 다한다. 집요한 배우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은데 감정이 진심으로 와닿기 전에는 포기하지 않더라. 희주(채수빈)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소속사인데도 같은 작품을 한 건 없어서 서로 낯설었는데 그게 오히려 쇼윈도 부부 역할에 잘 어울렸다. 이후에는 그런 낯선 감정을 즐기면서 서서히 친해져 갔다. 사언과 희주가 서로 알아가고 마음을 열어가듯이, 그런 템포였다. 수어 연기가 쉽지 않다. 배우가 대사를 못하면 가장 직접적인 무기가 막히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이걸 굉장히 잘 극복해나갔고, 수어를 통해 매력적으로 희주 캐릭터를 만들어낸 거 같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수어로 마무리 한 수상소감도 인상 깊었다.
배우 유연석.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Q 본인도 만만치 않다. '사랑의 이해'부터 '지금 거신 전화는'까지, 유연석의 로맨스에는 꼭 두터운 마니아층이 생기는 것 같다. 이 정도면 '로맨스 장인'이다A 대본에서 봤던 활자를 상대 배우와 만나 마치 어떤 마법처럼, 인류의 순간처럼 몽글거리면서 잡히지 않는 무언가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재밌다. 눈으로 보면 보편적 사랑의 감정인데 미세한 근육을 조절하고 작은 떨림을 표현하는 거다. 그걸 사람들이 공감해주는 게 굉장히 좋다.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고, 사랑하고 설레할 때, 같이 설레주는 거. 그러다 보니 로맨스를 잘한다고 이야기해주시는 거 같다.
Q '틈만나면,' 같은 고정 예능을 들어갈 정도로 예능에도 애착이 큰 것 같다. 배우이지만 예능이 유연석에게 가진 의미가 있다면A 이전부터 예능하면서 좋은 기억들이 있었다. '틈만나면,'도 처음엔 출연 고민을 했었지만 재석이 형과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돌아오겠나. 새로운 매체에 대한 두려움보다 원래 도전과 기대감이 크다. 이젠 시청자들도 예능인과 배우 유연석을 섞어 보면서 몰입에 방해를 받는 단계는 지나가신 거 같다. 완성도만 있다면 작품 안 캐릭터를 좋게 봐주시는 거 같고, 예능할 때는 자연인 유연석의 매력을 찾아가시는 거 같다. 배우로서 제가 지향했던 것이 얼굴의 양면성을 드러내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거였는데 어떻게 보면 예능 출연으로 이런 부분을 어느 정도 이루지 않았나 싶다. 예능도 좋은 결과가 나오고, 드라마도 사랑 받아서 참 감사한 한 해였다.
Q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섹시미간'이라는 수식어가 새로 생겼다. 그만큼 쉬지 않고 달려 온 한 해이기도 했다. 이제는 좀 쉬고 싶기도 하겠다A 제작발표회가 너무 무겁게 가니까 재미있게 해보려고 갖다 붙였는데 그게 수식어가 됐다. (웃음) 어떤 수식어든 그걸 얻는 것 자체가 배우는 감사한 일이다. 오랫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지 않고, 캐릭터로 기억되는 거 아닌가. 새로운 수식어보다는 다음 수식어가 기다려지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 다음엔 신체 부위로는 가지 않을 거 같다. (웃음) 일단은 한국 팬미팅 준비를 하고 있고, 아시아 팬미팅도 간다. 남미 쪽도 반응이 좀 있다고 한다. 뮤지컬도 꾸준히 할 거 같다. 그런데 여행을 좀 가고 싶다. 지난해에는 쉼 없이 달려서 말 그대로 '틈'이 안 났다. 이번에 특별출연만 하나 마무리되면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가족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촬영을 하면서 전화를 못 받을 정도로 바빴다. 늘 제가 부재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