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박종준 대통령 경호처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주 <용산 경호처장 박종준에게 보내는 시>라는 글을 썼다. 박종준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이 되기를 거부하고 경찰에 출석한 것은 천만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가 우중문처럼 살수로 향했다면 그 또한 우중문의 뒤를 따랐을지 모른다. 그는 경찰 출석 직전만 해도 "현재는 대통령 경호 업무와 관련해 엄중한 시기로 경호처장과 차장은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국민을 향하여 선전포고를 했었다.
내란 수괴 피의자인 윤석열의 곁에서 '작렬하게' 몸을 던질 것 같았던 그가 왜 경찰에 출석했을까. 내란공조수사팀에 혼선을 주기 위한 윤 측의 '책략'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경호처에서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박의 경찰 출석을 '호도 전략'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박은 "그동안 최상목 대행에게 여러 차례 정부기관 간 중재를 건의드렸고, 대통령 변호인단에게도 제3의 대안을 요청했지만, 그에 맞는 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박종준은 경호처에서 차장 김성훈과 경호본부장 이광우 등 김건희 라인의 강경파 3인에게 사실상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박을 조사하고 있는 국수본이 그들 책략의 실체를 잘 파악할 것이라고 믿는다. 경위가 무엇이든 박의 결정은 현명하다. 그간 지적한 것처럼 작금의 경호처 행동은 위법한 행위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영장 집행 행위를 막아서고 있다. 헌법은 모든 법률의 원천이다. 헌법에 도전하는 행위는 국사범에 해당한다. 경호처는 윤석열의 사병집단이 아니다. 더욱이 법치주의 원칙이 확립된 지 2백여 년이 훨씬 지났다. 이 문명 시대에 역사적 퇴물 중의 퇴물인 무신정권의 도방 같은 사병 집단의 출현이라니 말이 되는가.
삶에는 생과 사가 있다. 역사에선 산 자와 죽은 자가 존재한다. 선조와 원균이 역사에서 죽은 자라면 충무공 이순신은 산 자에 해당한다. 이완용은 죽은 자이고, 안중근은 산 자이다. 현실에서도 산 자와 죽은 자는 동시에 존재한다. 엊그제 군사법원은 채상병 사건에서 항명죄로 기소되었던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군판사의 주문과 방청객들의 환성 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 함성은 진실과 사람들이 믿는 정의가 일말이나마 살아 있다는 안도의 전율과 같은 외침이었다.
2023년 8월 2일 이후, 지난 1년 6개월간 대령 박정훈의 삶은 어떠했겠는가. 그날 이후 박 대령의 삶은 천장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칼날 아래에서의 삶이었을 것이다. 재판을 받는 동안 그는 부대 내 외딴곳에 떨어져, 그가 사랑했던 전우들과 떨어져 바람과 구름과 돌과 대화를 했다고 토로했다. 그에게 항명죄를 뒤집어씌운 사람들은 그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단 1인치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단지 군에서 명령의 지엄함만 내세웠다. 명령조차 흐릿했다. 그를 처단하려고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박정훈은 산 자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기자는 진심으로 안심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윤창원·황진환 기자·대통령실 제공
2024년 12월 3일 평온한 한밤중에 느닷없는 계엄령으로 열 명이 넘는 별들은 죽은 자가 되었다. 그들은 내란 수괴 피의자의 명령을 무작정 따르다가 가족과 자신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하고 말았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박안수, 여인형, 이진우, 곽종근, 문상호 등 계엄지도부는 윤석열의 계엄선포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이들은 계엄이 위헌,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30년 전에 쿠데타 주역인 육사 선배가 내란죄로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권력 도파민에 또 빠져들었다. 감히 별 두 개, 세 개짜리 군인이 대통령과 꼭꼭 숨겨진 안가에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는 사이였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을지 모른다. 절제라고 찾아볼 수 없다. 그 후과는 너무 처참하다. 역사의 죄인들, 죽은 자가 된 것이다.
박종준은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이제는 차장 김성훈과 본부장 이광우 차례가 됐다. 지금 자수하는 길이 사는 길이다. 역사적으로 사는 길인 것이다. 배신의 길은 반대다.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깨고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은 헌법 위에 섰다. 내란의 수괴에게 충성할지 국민에게 충성할지 선택은 자명하다. 부하들마저 사병으로 내몬다면 그 죗값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사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 직위에 있으면 자기 혼자의 삶이 아니고, 동료·부하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산 자의 길이다. 버티면 부하들만 피해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