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제43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 개표를 마친 뒤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오른쪽)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 겸 전 의협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의·정(醫政) 갈등을 촉발한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사실상 완료 단계지만, 양측의 대치는 그대로다. 대화 물꼬는커녕, 지난해 말 '전공의 포고령'이 담긴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분위기는 더 얼어붙었다. 전국 14만 의사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 선거에 이목이 쏠린 이유다.
금주 결선이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 간 '2파전'으로 압축된 가운데
누가 당선되든 의협의 대정부 강경 기조는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택우 vs 주수호…모두 '증원 저지 비대위'서 활동
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의협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7~8일 김택우 후보와 주수호 후보가 겨루는 결선 투표를 통해 제43대 의협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지난 2~4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은 탓이다.
명부가 확정된 전국 회원 5만 1895명 중 2만 9295명(투표율 56.45%)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김 후보는 8103표(27.66%)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7666표(26.17%)를 얻은 주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2위로 밀렸다.
3~5위를 기록한 후보들은 각각 최안나 의협 기획이사(5543표, 18.92%)와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4595표, 15.69%), 강희경 서울대 의대 교수(3388표, 11.57%)다.
의료계에서는 대체로 예견된 결과라는 분위기다. 김 후보와 주 후보는 지난해 2월 6일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이 공식화되자 전면에 나서 의협의 대정부 투쟁에 함께해 왔다. 의료계의 지지 기반과 더불어 관련 언론보도를 접해온 일반 시민들에게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사들이다.
김 후보는 정부 발표 직후 자진 사퇴한 이필수 전 의협 회장의 뒤를 이어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한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당시 "정부의 겁박 등에 굴하지 않고 불합리한 증원 추진을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전공의 집단 사직이 현실화된 이후, 지상파 생방송에 출연해 '의대 증원은 한계에 이른 지역·필수의료 확충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란 주장을 펼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맨투맨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제43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 개표 결과가 화면에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그런가 하면,
주 후보는 김 후보와 같은 '증원 저지' 비대위의 언론홍보위원장을 맡아 의협을 위시한 의료계의 '입'으로 활동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7~2009년에는 제35대 의협 회장도 지냈다.
지난해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린 정부에 맞서, 중대본과 유사하게 거의 매일 정례브리핑을 진행하며 강성 발언을 쏟아낸 당사자다.
그는 사태 초기 비대위 브리핑에서 의사를 '매 맞는 아내'로, 환자는 '자식'으로, 또 정부는 '폭력적 남편'에 각각 빗댔다. 또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해서 이 사태를 벌인 것은 의사가 아니라 정부"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반복된 '막말' 등으로 취임 6개월 만에 탄핵된 임현택 전 의협 회장과 결은 다르지만 설화를 빚은 전례도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에서 "비수도권 지역 인재 중심의 의대 증원은 수도권·비수도권 의대 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개악"이라며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음주운전 사망사고 관련 전력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결선 탈락한 후보들의 합산 지지율만 50%에 가까운 만큼, 현재로선 당선자를 예단하기 쉽지 않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 후보가 비교우위라는 분석도 있지만 아직은 예측이다.
다만, 누가 차기 회장이 되더라도 큰 틀에서 의협의 '투쟁' 노선이 바뀔 공산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둘 다 외과 전문의인 김 후보와 주 후보는 전공의 사직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고발당해 경찰 수사를 받았다. 김 후보는 이로 인해 의사면허 3개월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26년도 모집 중지' 초강수 시 평행선 이어질 수도
이처럼 강경파인 이들이 지난 4일 결선 진출 발표 당시,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문제를 길게 거론하지 않은 것은 이미 활시위를 떠난 사안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시 모집인원이 확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수시 미충원 인원을 기존대로 넘기지 않는 방식으로 증원분을 일부 감축할 여지가 있었지만, 지원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이 역시 '죽은 카드'가 됐다. 전국 39개 의대의 정시모집 지원자 수는 전년 대비 30% 급증한 1만 5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이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두 후보는
당장 늘어날 의대생의 교육 문제, 정부의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 등을 현안으로 언급했다.
주 후보는 "의과대학 학장들과 상의해 2025학년도 수업 받을 학생 수를 파악하고 2025~2026년에 나눠 정상적으로 수업을 받도록 하겠다"고 했고, 김 후보는 정부를 향해 "현재 추진 중인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잠정 중단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지금은 대통령이 궐위 상태이므로 그게 맞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 말대로 의료개혁을 강력 추진한 주체인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인 점을 고려하면, 의협 새 집행부가 확정되더라도 의·정 대화 재개가 쉽진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올해 신입생은 정부안대로 선발된 만큼 현실적 교육여건 등을 문제 삼아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종전 정원(3천여 명) 유지, 또는 '모집 전면중단'(0명)이라는 초강수를 내밀 가능성도 있다. 주 후보는 실제로 "2026년 의대 모집은 중지돼야 하고, 2025년도에 늘어난 1500명은 2027~2029년 3년에 걸쳐 줄여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후보들이 거부감을 나타낸 정부의 여타 개혁정책들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잇따른 의료계의 '보이콧'으로 한동안 주춤했던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최근 다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의개특위는 오는 9일 토론회에서 비급여·실손보험 개편 관련 정부안을 공개한 뒤 이달 내 최종안(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정부가 관리 대상으로 특정했던 도수치료 등을 '관리급여'(신설)로 지정하고, 본인부담률을 9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한도를 축소하고, 건강보험 급여항목 관련 본인부담금 보상비율도 줄이는 '5세대 실손보험' 체계 또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