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12·3 내란사태가 발생한 지, 3일로 딱 한달을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28분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그로부터 현재까지의 타임라인을 살펴본다.
계엄 선포 즉시 선관위 점거부터…가까스로 계엄 해제
CCTV에 기록된 계엄군의 선관위 시스템서버 촬영 모습. 연합뉴스비상계엄 선포 직후 2분 정도가 지난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거부터 시작됐다. 사전 준비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무엇이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 물론 '부정선거' 의혹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는 아직 어디에도 없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난 3일 오후 11시 25분쯤 계엄사령군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발표했다. 전공의를 포함해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이 48시간 이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계엄법에 근거해 '처단'한다는 포고령의 내용은 여전히 의료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포고령은 김용현 국방부장관이 초안을 작성했다고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의중 역시 반영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는 모습. 박종민 기자20여분이 지난 오후 11시 48분쯤 헬기 등을 이용한 중무장한 계엄군의 국회 진입이 본격적으로 시도됐다. 시민들과 의원 보좌·비서관 등의 목숨을 건 저항이 있었기에 국회 점거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5차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재석190인, 찬성190인으로 가결되는 모습. 윤창원 기자
4일 오전 1시쯤 국회는 계엄 해제 결의안을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2시간 30분 정도만에 이뤄진 신속한 조치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한 것은 4일 오전 4시 28분. 국회 의결 이후 3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을 의결한 것이다. 계엄법에는 비상계엄 해재 요구안이 의결될 경우 대통령은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해제까지 총 6시간이 걸렸다. 이후 윤 대통령은 2시간짜리 계엄이 어디 있느냐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계엄은 엄연히 6시간 동안 지속됐고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12·3 내란사태…중요 피의자 수사, 헌재 탄핵심판 두 갈래 진행
연합뉴스비상계엄 선포 다음날인 4일 오후 2시 43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 6당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 탄핵소추안에는 비상계엄 자체가 위헌·무효이며, 군을 불법 동원한 내란죄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라는 내용이 담겼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5일 윤 대통령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사임을 수용했다. 최소한 내란죄의 공범이 될 수 있는 인물에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기회를 줬고 이를 받아들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를 하던 시민들이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는 모습. 박종민 기자7일 오전 10시 윤 대통령은 1분 50초짜리 짧은 담화를 통해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을 모두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담화에는 제2의 계엄은 결코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이 내용에 안심할 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국민들은 적어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순간까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이날 진행된 탄핵안은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불성립됐다.
8일부터 9일 검찰 특수본은 윤석열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으며 법무부는 출국금지 조치했다. 수사기관은 9일 군 수뇌부와 윤 대통령을 향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8일 긴급체포된 김용현 전 장관은 10일 구속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12일 오전 9시 42분 윤석열 대통령은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는 내용을 골자로 약 28분 분량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7일 대국민담화와는 분량은 물론 그 내용이 사실상 완전히 달랐다. 이날 담화는 탄핵은 물론 향후 수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 14일 제419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을 상정하는 모습. 황진환 기자14일 오후 5시 윤 대통령에 대한 204명 찬성으로 의결됐다. 국민의힘 의원 최소 12명이 이탈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헌재의 탄핵심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내란사태 발발 한달째…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은 실패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모습. 황진환 기자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6일에는 경찰이, 18일 검찰에는 윤 대통령 내란 사건을 공수처 이첩하기로 결정했다. 12·3 내란사태 발생한 지 보름 만에 수사 주체가 공수처로 단일화된 것이다.
27일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가 헌법재판관 6인 체제에서 시작됐다. 이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3명 중 2명을 임명해 8인 체제가 됐다.
정형식,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첫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하는 모습. 황진환 기자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3차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자 30일 서울서부지법에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며 이튿날인 31일 법원은 30여 시간 만의 숙고 끝에 체포·수색영장을 발부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이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를 통과해 진입하는 모습. 황진환 기자새해가 밝았고 3일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첫 집행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날 오전 8시 5분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시작을 공지한 지 5시간 30분 만에 공수처는 집행 중지를 선언했다. 체포 영장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며 체포에 응하지 않은 윤 대통령에 대해 심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체포영장 유효 기간이 오는 6일까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르면 4일 체포 재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공수처가 대통령 경호처와 계속되는 대치 끝에 집행을 중지하고 철수한 가운데 3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찰 병력들이 철수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12·3 내란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지 20일이 흘렀지만 내란죄 현행범 윤석열 대통령은 체포는커녕 단 한 차례의 조사도 받지 않았다.
한편 검찰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볼 때 계엄은 최소 9개월 전 준비된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구속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의 공소 사실을 공개하며 지난해 3월부터 계엄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황진환·류영주 기자·대통령실 제공
검찰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일 군과 경찰 주요 인사들에게 직접 전화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말하는 등 계엄 해제안 국회 의결을 막으라고 적극 지시한 것으로 봤다.
수사 결과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지난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도 특정되지 않았던 '발포 명령자'는, 45년의 세월이 흘러 새로이 윤석열 대통령으로 지목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