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와 코스닥이 급락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코스닥 종가가 표시돼있다. 연합뉴스금융시장이 비상계엄에 이어 전개되는 탄핵 국면에 충격받은 모양새다. 코스피는 저점을 새로 쓰며 13개월 만에 2400선이 뚫렸고, 원달러 환율도 1430원을 돌파했다.
증권가는 코스피의 밸류에이션이 이미 경기 침체 수준이기 때문에 추가 폭락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하면서도 빠른 안정을 위해 '조기 대선'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탄핵 불발에 코스피 2400 뚫려…시총 112조 증발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날 2400선이 무너진 2360.53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400선이 뚫린 것은 2023년 11월 3일(2368.34) 이후 13개월 만에 처음이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패닉에 빠트린 지난 8월 5일 '블랙먼데이' 장중 저점인 2386.96조차 하회한 것은 탄핵 불발에 대한 '충격'이 상당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스피는 3일 종가인 2500을 고점으로 비상계엄 사태 이후 4거래일 연속 내리며 5.6% 하락했다. 이 기간 코스피 시가총액만 112조 6800억원이 증발했다. 코스피 시총 2위인 SK하이닉스(122조 9596억원)와 맞먹는 규모다.
코스닥도 전날 전 거래일보다 5.19% 하락한 627.01로 장을 마쳤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2020년 4월 이후 최저치다.
코스닥은 3일 692.81로 장을 마친 이후 4거래일 만에 9.5% 급락하며 약세장 진입으로 판단하는 기준인 –10%에 근접했다. 시총은 31조 2402억원이 삭제됐다.
외국인과 개인의 동반 이탈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외국인과 개인은 코스피에서 각각 9083억원과 9672억원 등 2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순매도했고, 개인은 코스닥에서도 4866억원을 시장에 던졌다.
우리은행 민경원 연구원은 "탄핵 표결이 부결됐으나 야당이 다시 안건을 상정해 표결에 들어가겠다고 밝히면서 3일 비상계엄에서 시작된 정국 불안 장기화 조짐이 확인됐다"면서 "이는 원화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극단적으로 위축시키고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재료"라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를 1437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당시 1442원까지 치솟은 것을 제외하면 지난 2022년 10월 1444.2원 이후 가장 높은 상황이다. 또 4일 1413원, 5일 1417원, 6일 1423원 등으로 거래일마다 고점을 새로 썼다.
탄핵 국면 장기화, 내수 타격 불가피
연합뉴스증권가는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불성립 폐기된 가운데 향후 정국을 3가지 시나리오로 전망한다. 증권가 리포트에는 △탄핵 부결 뒤 여야 대치 △탄핵 가결 및 조기 대선 △2차 비상계엄 등이 가능성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야 대치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는 한편 2차 비상계엄 확률은 매우 낮다고 증권가는 평가했다. 실제로 국회는 윤 대통령 거취를 놓고 국민의힘이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탄핵 재추진'에 나서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는 분위기다.
신한투자증권은 이 경우 국정 동력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밸류업 프로그램과 대왕고래(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1기 신도시 특별법 등 부동산 공급 확대, 방산 수출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노동길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의 12개월 후행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85배로 2004년 7월 반도체 경기 우려,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2019년 8월 일본과 통상마찰,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2023년 10월 긴축의 정점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정리했다.
따라서 이미 '과매도' 상태인 코스피에 과거 위기 때의 PBR을 적용하면 2300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 연구원은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태생적으로 싫어할 수밖에 없는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일단 포지션을 덜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당장은 회복이 어려울지라도 희망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정치적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경제 '심리'에 악영향을 미쳐 둔화 추세인 내수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KB증권 권희진 연구원은 "만약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될 경우 1월 1일부터 준예산이 편성돼 집행된다"면서 "준예산은 법적 근거가 있는 필수 지출만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나 추가 지출 등을 제외하기 때문에 내수 활력이 추가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조기 대선 후 경기 부양 기대…탄핵도 시간 소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탄핵가결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시장은 현재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로 '조기 대선'을 꼽는 분위기다. 조기 대선으로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재정 확대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설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환율 상승과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한 이유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NH투자증권 강승원 연구원은 "탄핵 국면은 경기 둔화 국면에서 발생했는데, 재정 지출 이슈가 우선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에 주목한다"면서 "새로운 리더십이 선출될 경우 정당 여부와 관계없이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국면 전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유명간 연구원은 "트럼프 정책 이슈와 국내 기업 펀더멘탈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조기 대선 시행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될 경우 변동성 안정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탄핵 역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단기적 불확실성은 계속될 전망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에서 탄핵안을 가결해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3개월, 이후 대선까지 2개월이 걸렸다.
iM증권 이웅찬 연구원은 "일단 불확실성의 구간을 지나가야 하지만 차기 대선 시점이 결정되면 정치적 리스크가 낮아지는 시점이 올 것"이라면서도 "2016년 사례에서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자 불확실성이 해소되며 증시가 올랐다는 점 정도만 참고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