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제공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국회에 의해 제동이 걸렸지만, 대통령실은 여전히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10시 30분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먹색 양복에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브리핑룸 연단 중앙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긴급 담화문을 약 6분간 낭독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조차 사전에 알지 못했고, 브리핑룸에 입장마저 제한당한 상태에서 내려진 '벼락' 선포였다. 대통령실 내 다수 참모조차 실상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겨냥한 '반국가세력'은 야당을 가리킨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없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건국 이후 전혀 유례없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정안전부 장관, 방송통신위원장, 감사원장 탄핵과 국방부 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 밖에도 국회가 국가 주요 예산 전액 삭감으로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돼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이라며 계엄 선포가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재차 강조했다.
국방부는 이에 따라 이날 밤 11시부로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등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를 대한민국 전역에 발령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대통령실 앞이 삼엄한 출입 통제 속 비상 근무를 위해 대통령실로 오는 직원들의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류영주 기자대통령실 경비·경호 역시 계속해서 삼엄해졌다. 자정쯤부터는 청사로 새로 들어오려는 취재진의 출입은 제한됐고, 대통령실·국방부 청사 입구 앞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경찰과 군의 통제로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이동 역시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윤 대통령의 선포 이후 곧바로 비상계엄 해제에 나섰다.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본회의장에 모였다. 국회는 4일 오전 1시쯤 본회의를 열고 재석 의원 190인 중 190인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국회의장실은 이로써 비상계엄령은 무효가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야 대표들은 이번 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을 지적하며 나란히 날을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의 이번 계엄 선포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불법 위헌"이라며 "이번 불법, 위헌의 계엄 선포로 인해 더 나쁜 상황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악순환을 끊어내고 다시 정상 사회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조경태 의원이 대화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역시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라고 지적하는 한편, 국회의 해제요구 직후 "위법, 부당한 지시는 거부할 권리가 있으므로 이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법적 책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켜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뒤인 4일 새벽 2시 30분 현재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