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교사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1심 재판부는 위증을 한 김진성씨에게는 벌금 5백만원을 선고했지만,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일각에서는 '위증한 자는 유죄인데, 위증을 교사한 자는 죄가 없다'는 판단이 쉽사리 납득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한 마디로 '이 대표가 김진성씨에게 전화로 증언을 요청한 점은 인정되나, '위증'을 시킨 고의까지 입증되지는 않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증언 요청은 했지만, 고의는 아니다"
26일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의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의혹의 불씨는 2002년 '검사 사칭' 사건에서 시작됐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을 취재하던 KBS 당시 최철호 PD가 이 대표와 짜고 검사인 척하며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에게 전화했다는 사건으로 이 대표는 벌금 150만원이 확정됐다. 이후 이 대표가 2018년 경기지사 토론회에서 이 사건을 두고 "누명을 썼다"고 말해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 됐고, 이 재판 핵심 증인이던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비서 출신 김진성씨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한 위증교사 혐의로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 대표는 2018년 12월 22일~24일 사이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증언을 요구하고, 변론요지서를 보내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1심 법정에서 '김 전 시장과 KBS 간에 이 대표를 주범으로 몰자는 협의가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했고 이 대표는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번에 위증교사 혐의를 심리한 1심 재판부는 김씨가 법정에 나와 한 진술 6개 중 4개를 거짓증언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이 대표의 '증언 요청'이 있었기에 촉발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김진성이 위증하게 된 주요한 동기는 이재명의 각 통화에서의 증언 요청 때문으로 보이는바, 이재명의 증언 요청은 위증에 대한 '교사 행위'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대표에게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우선 "교사 행위 당시 이 대표가 김씨가 이 부분에 대해 위증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8년 12월 통화 이후 약 5개월 뒤 법정에 나온 김씨가 어떤 증언을 할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기에 고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시간 차가 벌어진 데는 김씨가 한 차례 증인 신문 기일에 불출석한 배경도 있었다.
나아가 재판부는 "김씨 위증에 이 대표가 개입했다고 인정할 만한 직접 증거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씨 증언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재명에게 김씨로 하여금 위증을 하도록 결의하게 하려는 교사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했다.
"통상의 증언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방어권 보장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병량 측과 KBS 측 사이에 자신을 주범으로 모는 '협의'와 관련한 증언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반복적 상황 설명을 했다고는 인정했다. 하지만 "김진성이 모를 수 있는 협의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증언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사 사칭 사건이 있었던 2002년 5월부터 약 16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정황 설명이 필요하다고도 봤다.
즉, 자신이 필요한 발언을 언급했더라도 통상적인 증언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변론 요지서를 제공한 것을 두고도 "선거법 위반 사건의 피고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방어권 정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시장님은 돌아가셨고"…앞뒤 맥락도 보면
재판부는 통화 녹취록 속 위증 교사 의혹이 짙었던 발언을 따지기도 했다. 이 대표는 통화 당시 "어차피 세월도 다 지나 버렸고, 시장님은 다 돌아가셨고"라고 말했다. 또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김씨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고도 했다.
검찰은 이 발언을 들며, 이 대표가 적극적으로 위증을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이 대표 주장과 반대되는 증거가 나오기 어려운 점을 이용해 허위 증언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같이 해석할 여지도 있다면서도 녹취록 속 다른 맥락도 살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그냥 있는 대로 뭐 어차피 세월은 지났잖아요. 안 본건 얘기할 필요는 없는 거고", "그때 당시 사건을 재구성하자는 건 아니고"라고도 말한 부분에 주목했다. 이는 사실대로 진술해달라는 것이거나 전해 들어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면 된다는 취지로 볼 수도 있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즉 녹취만으로는 이 대표가 김씨에게 허위 증언을 시킨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부족하단 것이다.
"혐의 소명됐다" 했는데, 재판해 보니 무죄
위증 교사 사건은 이 대표가 받는 5개의 재판 가운데 유죄 예상이 가장 짙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위증 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것도 유죄를 예상한 주요 근거 중에 하나다.
이 때문에 이 대표의 무죄 선고 이후 정치권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위증한 이가 유죄인데, 거짓말을 시킨 이는 무죄라는 판결이 이해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왔다. 교사범을 더 엄히 처벌하는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검찰도 즉각 "이 대표에게 '범의(犯意)'가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것은 법리와 증거 관계에 비춰 납득하기 어렵다"고 항소의 뜻을 밝혔다.
다만 형사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 변호사는 "소명과 입증은 엄밀히 다르다"며 "소명은 혐의 (개연성을) 추측할 수 있는 상태이지만, 형사 재판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유무죄 입증이 돼야 유죄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 한정된 자료를 토대로 이뤄지는 영장 실질 심사와 재판은 구분 지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