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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별의별(いろいろ) 사람이 있구나" 가르쳐준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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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5년 전, 2114년 출간될 소설을 노르웨이 미래도서관에 전달했습니다. 제목은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 수신자인 아들은 물론, 다음세대의 생존도 담보할 수 없는 먼 미래를 향해 그는 "내가 쓴 것을 읽을 인간들이 살아남아있을 것이란 불확실한 가능성을 믿어야만 한다"고 밝혔습니다. 작가가 붙잡은 "근거가 불충분한 희망"은 창사70주년을 맞은 CBS노컷뉴스가 <아이가 있는 삶, 미래와의 협상>을 준비한 절실함의 또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저출생 문제의 당사자이기도 한 기획팀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부터 출발해 '추세 반전'의 실마리를 찾는 데까지, 다섯 꼭지에 걸쳐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살펴봅니다.

[CBS 창사70주년 특별기획: '아이가 있는 삶, 미래와의 협상'⑪]
불특정 다수 향해 '아이 함께 키워보자'고 초대한 가노 호코(母)
'공동육아' 응한 이들은 現니트족과 비슷한 다메렌(낙오연대) 청년들
지금보다 온정적 사회?…쓰치(子) 탄생 이듬해 대지진·사이비종교 테러 연이어
지난 9월 10일 '미니 동창회'에서 침몰가족 참여 소회 털어놓은 母子·돌보미들
어린 딸과 침몰하우스 산 싱글맘 "언제든 교류 가능한 공간, '필수 인프라'였다"
히키코모리 청년에서 '아이 엄마'로…"힘을 조금 빼고 키워도 된다는 것 알게 돼"
'잘 자란' 아이들…"절대 불행하지 않았어" "'초(超)'란 말 붙을 정도로 즐거웠다"

'침몰가족'에서의 성장기를 영화와 책으로 기록한 가노 쓰치(30)는 "'초(超)'라는 말이 (앞에) 붙을 정도로, 적어도 저는 무척 즐거웠다"며 '혼나도 도망 갈 곳이 있는 것'을 최대 미덕(?) 중 하나로 꼽았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침몰가족'에서의 성장기를 영화와 책으로 기록한 가노 쓰치(30)는 "'초(超)'라는 말이 (앞에) 붙을 정도로, 적어도 저는 무척 즐거웠다"며 '혼나도 도망 갈 곳이 있는 것'을 최대 미덕(?) 중 하나로 꼽았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이기적 MZ라고요?"…청년이 말하는 '출산의 조건'
②"'아빠 껌딱지', 레알 가능한가요?"…主양육자 아빠들의 이야기
③"'우리 아버지처럼'은 안 할래요"…요즘 아빠들의 속사정
④[르포]"MBTI 'T'인 아빠는 육아 젬병?"…'파더링' 현장 가보니
⑤그렇게 아버지가 된다…"10년 후 나는 어떤 아빠일까"
⑥"'또' 스웨덴?"…30대 싱글여성 셋, '복지천국' 찾은 이유
⑦"첫 데이트서 '더치페이'한 남편"…'선(線) 있는' 다정한 육아
⑧"몇 살이면 꼭 OO해야 한다? 그런 것 없어"…'근자감' 배경엔
⑨"'불평등하려고' 열심히 사는 한국, 출산절벽일 수밖에…"
⑩약 30년 전 낯선 이들과 아이를 길렀던 엄마의 사연
⑪"세상 별의별(いろいろ) 사람이 있구나" 가르쳐준 어른들
(계속)

"20년 후 '빅 조 브래디' 식당 앞에서 다시 만나자." 약속은 지켰지만, 추억의 장소는 철물점으로 변했고 친구는 지명수배자가 됐다. 차마 제 손으로 벗을 체포하지 못한 순경의 하룻밤을 다룬 오 헨리(O. Henry)의 단편 '20년 후(After Twenty Years)'처럼 20년은 한 사람의 인생이 180도 바뀌고도 남을 기간이다. 작품은 '잭팟'을 노리며 향한 미국 서부에서의 시간이 선량한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켰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일본에서 '비(非)혈연 공동육아'를 시도한 대범한 싱글맘 가노 호코(52)가 도쿄 히가시나카노역 앞에서 '돌보미 모집 전단'을 뿌린 시점과 아들 가노 쓰치(30)가 같은 장소에서 자신의 특별한 유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홍보 전단을 돌린 시기 사이에도 2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우연히, 또 의지에 따라 소속되기를 택한 '공간'은 삶의 형질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됐다.
 

'가족도, 친척도 아닌' 어른들과 7년 가까이 산 아이

비혈연 육아 공동체인 '침몰가족'에도 나름의 룰(rule)이 없진 않았다. 처음 온 사람은 절대 아이와 단둘이 있을 수 없었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비혈연 육아 공동체인 '침몰가족'에도 나름의 룰(rule)이 없진 않았다. 처음 온 사람은 절대 아이와 단둘이 있을 수 없었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앞서 사진전문학교에서 만난 20대 초반 남녀는 '유사 동거' 중 아들을 낳았다.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둘의 관계를 결속시키진 못했다. 엄마인 호코는 "좋은 사진을 찍는다고 꼭 좋은 인간이란 법은 없다"며 '야마 씨'(쓰치 父)와의 3인 가족을 거부했다. 바야흐로 '침몰가족(沈沒家族)'의 서막이다.
 
사회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가족'에 '침몰'이란 파괴적 단어를 붙인 작명은 블랙코미디와 같았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함께 아이를 키워보지 않겠냐'는 전단지를 뿌린 호코와 이에 응한 이들이 직접 지었다.
 
1990년대 중반 이혼가정이 늘고 가족 간 유대가 헐거워진 일본의 사회상을 들어 "남자는 일하러 가고, 여자는 가정을 지키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사라진다면 일본은 침몰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한 한 정치인의 말을 비튼 것이다. 혼인이나 혈연관계에 기초해 '가족은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명시한 자민당 헌법 개정초안 제24조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발상이기도 했다.
 
가노 모자(母子)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20명 안팎의 '돌보미'들과 약 7년을 함께했다. 히가시나카노의 비좁은 연립주택에서 1년 반, 그리고 호코와 같은 싱글맘이었던 타카하시 라이치(시노부)씨와 찾아낸 '5LDK'(방 5개에 거실·응접실·주방을 갖춘 일본식 주거형태) 복층 구옥에서 보낸 시간이 각각 5년이다. '침몰하우스'에서의 2차 공동생활 후 모자는 도쿄에서 약 300㎞ 떨어진 아열대 섬으로 거처를 옮긴다. 하치조지마행(行) 배를 탔을 때 쓰치의 나이는 8세였다.
 
쓰치는 사회성 짙은 다큐로 유명한 영화감독, 하라 가즈오를 좋아한 부모의 취향을 빼닮았고 결국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됐다. 독립영화 공모전(피아필름 페스티벌·PFF)에까지 출품한 침몰가족 다큐는 당초 의도한 결과물은 아니었다. 여느 평범한 대학 4학년생처럼, 학부 졸업을 앞두고 준비한 졸업과제가 그를 다시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나를 키운 '침몰가족'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 물음표는 쓰치가 영상과 책을 만든 동기였고, 취재팀이 올해 현지 취재를 결심한 이유기도 했다. 15년 만에 자신을 돌봐 준 어른들을 수소문한 쓰치는, 카메라를 동반한 재회를 총 72분짜리 영화로 담아냈다.
 

지진에 사이비종교 테러 잇따른 시절, 탄생한 육아공동체 

1992년 와세다대학 동창들이 결성한 '다메렌'은 취업은 물론, 결혼과 연애와도 거리가 먼 2030 청년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의 슬로건은 '교류 무한대!'. 역전 광장이나 공원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흔했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1992년 와세다대학 동창들이 결성한 '다메렌'은 취업은 물론, 결혼과 연애와도 거리가 먼 2030 청년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의 슬로건은 '교류 무한대!'. 역전 광장이나 공원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흔했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전제해야 할 것은 '침몰가족'이 태동한 과거의 일본이 특별히 더 온정적 사회라 보긴 힘들다는 점이다. 엄마인 호코가 침몰가족들에게 아들을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가던 극장 '포레포레히가시나카노'를 필두로 전국에서 개봉한 <침몰가족(Family By Chance)>(감독 가노 쓰치)은 농촌의 '품앗이 돌봄' 등을 연상시켰으나, 이와는 엄연히 구별된다는 게 쓰치의 설명이다.
 
"(중략) 엄마가 도시 한구석에서 살아남기 위해 추구한 곳은 폐쇄적인 마을사회도 혈연도 아닌 육아경험도 없고 원래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도 어울릴 수 있는 아이와 아이, 어른과 어른, 아이와 어른이 서로 어우러지는 장소였다."<침몰가족>(정은문고, 가노 쓰치著) 中
 
이 시절 일본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쓰치가 태어난 이듬해 1995년엔 연초부터 한신·아와지대지진 지진(일본 효고현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지금껏 회자되는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사건(신흥 종교단체가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연고 없는 이들이 무리 지어 먹고 자는 생활이 당국의 눈에 수상해보인 건 당연지사다. 아이를 사적으로 '남'의 손에 의탁하는 것도 고와보일 리 없었다.
 
당시 호코가 '침몰가족' 무료소식지에 실은 한 일화엔 이 같은 공동체를 미심쩍게 바라본 주변의 시선이 잘 드러난다. 침몰하우스를 찾은 한 구청 공무원은 여러 명이 더불어 살고 있단 호코의 말에 "기분 나쁜 집이네", "옴진리교 같은 거 아니죠?"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의 일본이라면, 또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비혼(非婚) 싱글맘의 공동육아에서 특기할 점은 한 가지 더 있다. 아이 돌봄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대부분 취업은 물론 연애·결혼과도 거리가 먼 20~30대 청년들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말로 '안 돼(だめ)'와 '한 패(連·れん)'의 합성어인 '다메렌(낙오연대)'으로 불린다. 낙오연대는 1992년 와세다대학 동창이던 가미나가 고이치와 페페 하세가와가 결성한 청년들의 모임이다. 일종의 느슨한 대안 공동체로, 스스로 '낙오'를 긍정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자기 몸 하나도 건사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가정을 꾸리고 큰일을 하겠냐고 생각하는 규범적 상식과는 상반된다. 잉여시간이 아무리 많다 해도, 지금의 니트(NEET)족과 비슷한 젊은이들에게 부모가 자녀 돌봄부담을 선뜻 나눌 수 있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싱글맘, '낙오 청년'에게 '다른 삶' 가능성 보여준 침몰하우스 

지난 9월 10일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 소재 기획팀 숙소에서 진행된 가노 모자와 공동육아자들의 집담회는 '침몰가족 동창회' 같았다. 침몰하우스로 사용된 '5LDK' 집을 찾아냈을 때 가노 호코의 모습을 재연하는 타카하시 라이치(시노부)씨.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지난 9월 10일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 소재 기획팀 숙소에서 진행된 가노 모자와 공동육아자들의 집담회는 '침몰가족 동창회' 같았다. 침몰하우스로 사용된 '5LDK' 집을 찾아냈을 때 가노 호코의 모습을 재연하는 타카하시 라이치(시노부)씨.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가노 모자만큼 공동육아자들의 면면이 궁금했던 취재팀은 지난 9월 10일,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의 제작진 숙소로 총 3명의 침몰가족 구성원들을 초청했다. 호코에게 동거를 제안한 데 이어 4살짜리 딸 메구와 침몰하우스에 합류했던 시노부씨와 요양보호사로 근무 중인 50대 남성 카게야마 쇼지씨, 현재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만화가 사토 나미에(결혼 전 성은 '후지에다')씨 등이다.
 
가노 모자까지 동참한 이날 집담회는 가히 '침몰가족 동창회'와 다름 없었다.
 
평일이었던 당일, 퇴근 및 이동시간을 고려해 저녁 6시 반쯤 시작한 대담은 11시를 훌쩍 넘겨 '막차'가 끊기기 직전 끝났다. 각별한 세월을 함께한 이들에게는 격조한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침몰가족원들은 취재팀이 미리 준비한 교자와 야끼소바(일본식 볶음면),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등을 먹으며 정담을 나눴다. 쓰치가 침몰하우스에서 같이 자란 경험을 토대로 '전우'라 표현한 메구씨도 특별게스트로 동석했다.


Q. '침몰가족'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시노부: "호코씨가 종종 찾던 주거형 화랑을 갔었는데 모자가 돌출베란다에서 실로폰을 치면서 놀고 있었어요. 이후 작은 아파트 방에 어른들이 빽빽하게 모여서 공동육아란 걸 하고 있다기에 놀러 갔죠.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란 생각(이었어요)…이혼하고 딸과 둘이 살게 된 참이라 '싱글맘끼리 살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호코는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거기서 끝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가족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은 분위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그럼 집을 같이 한 번 구해보자고 해서 (부동산을 돌아다녔는데) 사람들이 좀 이상한 눈으로 봐서…그땐 '룸셰어(room share·공유하우스)' 같은 개념도 없었으니까요. 자매라고 하면 너무 안 닮아서 안 믿을 거 같고, '사촌'이라고 속이며 다녔죠(웃음)."

 
-나미에: "미디어에서 '낙오연대'를 다룬 걸 많이 봤었는데, 방송내용 중 '아카네'(※침몰가족 일원인 페페씨가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라는 바(Bar)가 있어서 한 번 찾아가 봤죠. 거기 '침몰하우스'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데려가 달라 했습니다. 그때 호코씨를 만났는데 초면인데도 너무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인상 깊었어요.
 
또 '돈을 많이 안 들이고도, 잘 사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호코씨의) 벌이가 많아 보이진 않았는데, 모은 돈으로 해외여행도 가고 정말 '액티브(active)'한 인생을 사는구나…제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재미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어요. 본인이 처한 상황 안에서의 최대한을 파워풀하게 즐기는 분이랄까요?"
 
-쇼지: "고등학교 때부터 '즐겁지 않다면 인생도 (살) 필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때 알게 된 낙오연대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 보였습니다.
 
특히 침몰가족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던 몇 명이 '아이와 같이 있으면 그 자체로 굉장히 위안(힐링)이 된다' 얘기를 해서, '구경이라도 가볼까' 싶었죠. 침몰하우스는 한 달에 한 번 '보육회의'란 걸 했는데 그때 참가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초반엔 진지하다가, 뒤로 갈수록 '파티'가 되어가는데, 그 모습이 재밌어 보여서 (공동육아에) 참여하게 됐어요."

 
'침몰가족'이 사람을 유인할 수 있었던 큰 요인이 이처럼 '유(有)잼'이었던 것은 맞다. 다만, 시작은 '24시간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린 자녀와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싱글맘의 절실함이었다. 쇼지씨는 호코를 두고 "(그땐)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린 사람으로 보였다. 쓰치는 에너지가 넘치고 아주 건강한 아이로 보였던 반면, (엄마인) 호코는 축 처진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육아 동료'들의 얘기를 듣던 호코는 "(공동 육아·생활이 이뤄진 집을 같이 구한) 시노부씨가 정말 큰 힘이 되어 줬다. 그가 아니면 침몰하우스는 절대로 시작 못 했을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시노부씨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당시 호코의 모습을 재연하며 "(지은 지 30년 된) 방 5개에 옥상이 있는 그 집을 찾았을 때 호코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거면 우리가 하려는 걸 할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 화답했다.
 

육아 마치면 상시 대화 가능했던 공간…"수도·전기 같은 개념"

오사카 출신으로 도쿄에 오기 전 자신을 가리켜 '히키코모리'라 표현한 사토 나미에씨. 우연히 방송을 통해 접한 '다메렌'에 동질감을 느껴, 이후 침몰가족에 합류한 그는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오사카 출신으로 도쿄에 오기 전 자신을 가리켜 '히키코모리'라 표현한 사토 나미에씨. 우연히 방송을 통해 접한 '다메렌'에 동질감을 느껴, 이후 침몰가족에 합류한 그는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생존을 위한 바람직한 연대였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궁금증이 생겼다. 왜 정부나 지자체의 '공적 지원'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안은 왜 강구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시노부씨는 "아이와 단둘이 사는 게 불안했던 건 '공적 서비스를 받는 것(방안)을 포함해서'였다"며 "그 생활 자체가 (제게) 굉장히 고정화된 역할을 요구하고, 도망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공적 지원이 들어온다 해도 숨 막힐 거란 생각이 들었고, 타자와 어른이 여럿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고 전했다. 육아 일과가 끝나고 거실로 내려가면, 언제고 자신과 교류할 성인(들)이 있다는 점이 '숨구멍'이 되어줬다. 이러한 소통 자원이 자신에겐 수도·전기와 같은 '필수 인프라'였다고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는데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양보해야만 끝나고, 그냥 '지나가면 되겠지'란 식으로 참다가 점점 쌓이면서 부부 사이가 나빠지더라고요. '침몰가족'끼리는 제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가능했어요. 어떤 생각을 말했을 때 누군가는 동의하고 누군가는 이상하다 생각하겠지만 집의 '공기'와 관계없이 그런 의견이 존중받는 게 좋다고 봤어요. 그게 아이에게도 보장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각자 형편에 맞게 돌아가며 쓰치를 돌본 공동육아자들에게 금전적 보상은 물론 없었다. 음식과 맥주 정도만이 상시 제공됐다. 그럼에도 아이가 '아무도 없이' 방치되는 일은 없었다. 처음 집을 방문한 '예비 돌보미'는 반드시 그의 신원을 확인해줄 선행 침몰가족원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나름의 '룰'도 있었다.
 
이들은 그날그날 "오늘 처음, 쓰치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엄청 기뻤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응석을 부린다. 어떻게든 먹였더니 이번에는 '놀아줘'라고 울음을 터뜨린다. 태어나 처음으로 잠시 쓰치에게 화가 났다" 등의 희로애락을 육아노트에 꼼꼼히 남겼다.
 
침몰하우스에서 육아를 처음 경험한 돌보미들 중엔 훗날 실제 부모가 된 이들도 있다.
 
원래 오사카에 살았던 나미에씨는 도쿄에 오기 전 자신을 가리켜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은둔형 외톨이)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 당시엔 나는 돈을 벌고, 결혼해서 남편을 내조할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한 마디로 '세상에서 별 볼 일 없는 사람' 같은데 낙오연대에서 낸 책 등을 보면서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스물 셋에 가노 모자와 인연을 맺은 나미에씨는 침몰하우스에서 독립한 뒤 동거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쓰치의 감독 입봉작인 <침몰가족> 팸플릿에 만화를 그려주기도 한 그는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조금 더 힘을 빼도 괜찮구나'를 알고 애를 키울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덕분에 '별의별 사람이 있다'는 걸 일찍 배웠습니다"

학창시절 자신의 가정환경이 남다르다는 점을 자각하게 됐지만, 그로 인한 콤플렉스는 전혀 없었다고 말한 가노 쓰치. 쓰치는 다양한 어른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그 시절이 "즐거웠고 좋았다"고 밝혔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학창시절 자신의 가정환경이 남다르다는 점을 자각하게 됐지만, 그로 인한 콤플렉스는 전혀 없었다고 말한 가노 쓰치. 쓰치는 다양한 어른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그 시절이 "즐거웠고 좋았다"고 밝혔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그럼 부모도 친척도 아닌, 다종다양한 어른들과 살을 맞대고 성장한 아이들에게 침몰하우스는 어떤 의미일까. 쓰치와 메구 모두에게 물었다. 인터뷰 내내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청하던 메구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메구: "한국에서 이걸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한 곳(침몰하우스)에서 자란 아이로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절대로 불행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란 걸 배울 수 있었다는 겁니다.
 
만약 제가 평범한 생활을 했었더라면, 그런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아마 전체 인생을 통틀어서도 모르고 넘어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쓰치: "저는 사실 그 환경밖에 모르기 때문에 다른 세계가 어떻다는 걸 알지 못합니다. 초·중·고 때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 환경이 남들과는 많이 달랐구나'를 알게 됐지만 그로 인한 콤플렉스나 내게 '결함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야단을 맞으면 도망 갈 곳이 (항상) 있었고 '잘했다'고 달래주는 곳도 있었죠. 마치 게임의 세계에 여러 필드(field·영역)가 있는 것처럼 어디 가면 같이 계속 게임을 하고, 어디선가는 둘이 앉아 멍 때리기를 할 수 있는 집이었어요. 제 관점에선 적어도 '초'(超·매우)란 접두사가 붙을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그저 제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보통의 일반적인 가정보다 어린 나이에 '정말 세상에는 별의별(いろいろ) 사람이 있구나'란 걸 알게 됐다는 겁니다(웃음)."

 
한편, 종종 한국 영화를 본다는 쇼지씨는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2019)을 봤다"고 밝혔다. 자녀 없이 40대에 만난 파트너와 동거 중인 그는 "그 작품에 그려져 있는 '한국 가족'이라는 (전통적) 틀에서 어떻게든 탈피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저출생 위기에 직면한) 세상이 좀 더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친정에 와서 애를 키우라'는 어머니의 제안은 거절했지만, 그를 통해 접한 70년대 공동육아 선례를 참고한 호코는 침몰가족이 또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길 바랐다. "어린 메구와 쓰치를 자전거 앞뒤로 태우고 다녔던 행복한 감각이 지금도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육아를 두고 "혼자 하기엔 좀 아까운 일이었다"고 밝힌 가노 호코. 친정 어머니를 통해 접한 1970년대 '도쿄 코무우누'라는 공동육아 사례를 참고한 호코는 '침몰가족' 또한 누군가에게 또 다른 '힌트'가 되길 바란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육아를 두고 "혼자 하기엔 좀 아까운 일이었다"고 밝힌 가노 호코. 친정 어머니를 통해 접한 1970년대 '도쿄 코무우누'라는 공동육아 사례를 참고한 호코는 '침몰가족' 또한 누군가에게 또 다른 '힌트'가 되길 바란다. CBS디지털뉴스제작센터 제공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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