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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밀키트가 낫죠"…'이상기후'에 밥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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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올 여름 '역대급' 폭염의 여파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고 수입산 수산물이 늘어나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국내 대형마트는 농수산물을 사전에 대량 매입하고 원산지를 다변화하는 등 기후위기 속에서도 최대한 저렴하게 상품을 내놓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식품업체들도 다양한 대체식품을 개발하거나, 친환경 시설을 도입한 농가들을 지원하는 등 직·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해 이상기후에 대응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실태와 그에 대한 유통·식품업체의 해결책을 연속 보도한다.

[기후위기, 이제는 상수①]
폭염 등 이상기후 탓에 신선식품 소비 절반으로 '뚝'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생선·과일 안 먹게 돼"
실제 한국, 농산물 수입 개방도 높아 기후플레이션에 취약
오만산 갈치에 국내산 패션후르츠까지…대형마트, 대응책 '분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 수산물 코너. 김민아 인턴기자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 수산물 코너. 김민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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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30년차 주부 정모(54)씨의 카트에는 밀키트(Mealkit·가정 간편식)가 가득 담겨 있었다. 농수산물 재료 가격이 너무 비싸 차라리 완제품을 사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해서다.

정씨는 "채소를 비롯해 고춧가루, 마늘 등 재료 값들이 너무 오르다 보니까 소량으로 사서 그때그때 소비하는 편"이라면서 "저렴한 밀키트 같은 경우 정확히 필요한 재료들만 들어있고 손질도 편해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근래 들어 생선 소비도 확 줄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육류는 좋아하기 때문에 가격이 좀 올라도 사 먹는데, 생선류는 육류만큼은 좋아하지 않다 보니 오른 가격으로는 굳이 안 사 먹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겨울이면 감이나 귤도 거의 떨어뜨리지 않고 사서 먹었는데 이제는 안 사게 된다"고 했다.

영등포구의 또 다른 대형마트에서 만난 정모(60)씨는 일본에서 지내다가 최근 입국했다. 정씨는 "과일과 채소가 일본에 비해 두 배 정도 더 비싼 것 같다"면서 "특히 수입산이 전보다 늘어났는데 맛과 질 모두 국내산보다 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철 신선식품 가격 보고 '멈칫'…"생선·과일 못 사겠어"

    
국내 이상 기후가 현실화하면서 '한국인의 밥상 지형'도 변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농작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먹거리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기후플레이션'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30년간(1991~2020년) 우리나라 평균 기온이 이전 30년(1981~2010년)에 비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10년마다 연 평균 기온이 0.3도씩 꾸준히 상승해 2010년대에는 1980년대보다 0.9도가 올랐다. 폭염과 열대야 현상도 이전 30년에 비해 각각 1.7일과 1.9일 증가했다. 특히 최근 10년간(2011~2020년) 평균 폭염일수가 14.9일로 1980년대보다 크게 증가했다. 반대로 한파일수는 0.9일 줄어들었다.

기후 변화와 기상 악화에 의한 작황 부진은 신석식품 가격을 밀어 올렸다. 이에 따라 신선식품 소비가 최근 1년 동안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온라인으로 소비자 1227명을 대상으로 '과일 등 신선식품 가격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56.7%가 최근 1년 간 과일 등 신선식품 소비를 줄였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신선식품 소비량이 변화한 이유로는 '판매 가격'이라는 응답이 47.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한국이 기후플레이션에 유독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은 대부분 농산물을 국내 수급에 의존해 농산물 수입 개방도가 높은 국가에 비해 이상기후로 농산물 작황에 가격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가 실물 경제 최대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승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상 여건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지적 날씨 충격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농산물 수입 확대와 같이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등의 구조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해 품종 개량 등을 통해 기후적응력을 높일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통계개발원 '기후 평년을 통해 본 기후 변화' 보고서 캡처통계개발원 '기후 평년을 통해 본 기후 변화' 보고서 캡처

"오만산 갈치, 국내산 패션후르츠"…대책 마련 '분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 김민아 인턴기자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 김민아 인턴기자
서민 밥상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내 대형마트들도 기후위기 속에서도 최대한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마트는 기온 변화에 민감한 배추를 무, 애호박과 같이 필수채소로 인식해 연중 저렴하게 파는 전략적 EDLP(Every Day Low Price: 연중상시저가) 품목으로 따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물량 수급'에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농가와 사전 계약 재배를 진행해 생산 전량 매입 △영남권, 호남권 산지바이어(Buyer·상품구매자)제도 운영 등을 통해 최대한 저렴하게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산지바이어제도를 통해 영호남 지역에 직접 상주하는 바이어가 산지를 돌아다니며 실시간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올 여름 폭염으로 한 포기에 1만원에 육박했던 배추 도매가가 최근 3천원대로 떨어지는 등 김장철을 앞두고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달부터 남부 지역에서도 배추가 나오면서 물량이 충분해지고 도매가는 2천원대에서 등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마트는 여기에 양파, 감자 등 장기 저장이 가능한 품목들의 경우 자체 신선 물류센터인 후레쉬센터를 통한 사전 비축을 시작했고, 특정 산지가 아닌 문경, 아산, 예산, 서산, 춘천, 해남, 무안 등으로 산지를 다각화했다.

롯데마트는 수산물 수급 안정화를 위해 원산지를 다변화하고 있다. 특히 '엘니뇨' 영향으로 동해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최근 어획량이 급감한 오징어의 올해 원양산 비율을 25% 까지 늘렸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원양산의 경우 우리나라 어선이 포클랜드 인근 원양 해역에서 잡아 올리는 물량을 뜻한다"면서 "원양산은 정부가 주관하는 국산 수산물 행사에서도 포함되기에 일반적으로 국산과 동일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의 열대과일 판매대. 김민아 인턴기자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의 열대과일 판매대. 김민아 인턴기자
롯데마트는 또 칠레산 연어의 수입량을 크게 확대했고, 갈치의 경우 올해 세네갈의 갈치 조업에 따른 시세 상승으로 수입산 물량의 90% 가량을 오만산으로 운영했다. 홈플러스의 경우 역으로 기후 온난화로 인해 국내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진 과일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제주산 패션후르츠(백향과)를 선보여 준비한 물량 3500팩을 단기간에 모두 소진했다.

다만 수입산 대비 신선도가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싸고 생산량이 적어 판매를 대폭 확대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에 홈플러스는 농수산물 산지 다각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엘리뇨로 인해 필리핀에서 바나나 수확량이 감소해 대체 산지인 베트남 바나나의 수입량이 증가하고 있고, 캐나다, 우즈베키스탄산 과일도 새롭게 수입하기 시작했다"면서 "중국산 건오징어, 베트남산 반건조 오징어, 브라질산 문어도 올해 처음으로 선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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