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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후변화·AI의 역습…풍요 속 '전력 빈곤' 사회[電맥경화] ②"대정전 내년에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송전망이 뭐길래[電맥경화] ③"송전망 건설은 반도체 생존의 문제…이러다 中에도 잡힐 것" (계속) |
주요국들이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해 전방위적 지원을 쏟아내며 기업을 넘어 국가 간 대항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한국은 전력 등 기본 인프라 구축에서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TSMC의 대만 전력 수급 우려…남 얘기 아냐"
지난 7월 대만의 전력수급 문제에 대한 미국의 한 언론보도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인 TSMC가 대만에 있다는 이유로 심각성이 부각됐다. 이에 앞서 엔비디아의 대만 지사 등이 자리잡고 있는 타이베이의 과학단지에서 정전이 발생하면서 대만 내 전력 공급 상황에 대한 걱정이 현실화 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대만 역시 에너지 취약국이다. 코트라 대만 타이베이무역관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의 지난해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6%에 이른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제조업의 전력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반도체 제조업의 전력 사용량은 2019년과 비교할 때 41.6% 급증했다
대만 전력공급 문제와 글로벌 공급망과의 상관관계 보고서 중 일부. 코트라 타이베이 무역관 유기자 작성.대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한국 역시 반도체는 생산·수출·투자 등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대표산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는 11년 연속 수출 1위 산업으로 국내 수출의 약 16%를 차지한다.부가가치나 수출액 규모 면에선 반도체는 국내 최대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수급동향 9월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3%다. 대만의 에너지 수입의존도(96%)와 비슷한 수준으로 양국 모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미세공장 전력 비례관계…아무리 첨단 기술 개발해도 전력 없으면 '꽝'
반도체 산업에서 전력은 공기에 비유될 정도로 필수적인 요소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의 전력의존도는 타산업 대비 최대 8배 높아 전력인프라 확보 없이 투자를 진행하기 어렵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전력과 물이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전력도 균일하고 질 좋은 전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는 공기 청정도가 높은 '클린룸'에서 이뤄지는데, 클린룸 청정도는 높은 수율에도 영향을 준다. 클린룸은 365일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냉각기와 공조장치가 가동돼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더불어 첨단 제품 등 제조공정 난이도에 따라서도 전력 소모가 증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세 공정을 구현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최신 장비들이 필요하다. 그걸 도입하기 위해서는 또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뿐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증가 등 전력 확보가 필수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각국 정부 역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골몰하고 있다.
미국의 몇몇 주는 전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늦추고 있으며, 최근 스리마일 섬 원전1호기 재가동을 결정했다. 1979년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기억되는 곳으로 스리마일 섬 원전 재가동은 전력 수급의 다급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대만은 일본과 필리핀에 친환경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한 뒤 해저 케이블로 전력을 끌어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탈원전 기조가 강했던 대만은 최근 원전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
용인 클러스터 조성 약속…송전망 확보 난관
한국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을 조성해 도로, 전력, 용수 확보 등의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송배전망 건설 난관 등으로 지방 발전소에서 어떻게 전력을 끌어올지 등 전력공급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2042년 삼성전자 등이 들어서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하루 최대 발전용량은 7GW 수준으로 추산된다. 1.4GW급 신한울 1호기 5기 분량에 해당한다.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방안. 산업부·과기부 제공
문제는 수도권 내에는 발전소가 없고 지방에 분포돼 있는 전력을 끌어와야 한다는 점이다. 동해안과 호남권에서 원전과 화력발전소, 재생에너지 등에서 생산한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데 결국 송전탑과 같은 전력망 설치 문제로 귀결된다.
삼성전자보다 일찌감치 클러스터 조성에 들어간 SK하이닉스는 용인시 원삼면 일대 일반산업단지에 반도체 팹 4기를 건설해, 2027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3년이라는 고난의 시간이 있었다. LNG발전소건립, 주민 토지 보상 문제, 처리수 등과 관련한 민원 등으로 당초 계획보다 3년이 지연 된 내년 초에 착공을 시작한다.
"이러다 TSMC가 독식할 것", "중국에도 따라 잡힐 것"
이 때문에 업계나 학계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상직 전 산업부 장관은 지난 14일 한국경제인협회가 마련한 특별대담에서 "반도체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기술인력, 자금력, 전력, 데이터 4가지 필수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며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지체되고 있는 송전망 건설을 조속히 완공하고, 신규 원전건설과 차세대 SMR(소형모듈원전) 조기 상용화도 시급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전력이나 공업용수는 기본적으로 인프라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줘야 한다. 대만이니 일본이니, 미국도 그렇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너무 미온적이다"라면서 "한국의 반도체는 그냥 좀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1등을 해야 하는 운명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다 TSMC가 다 독식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발전소는 언제든지 지을 수 있다. 근데 송전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국가가 산업을 국내에서 유지할 거냐, 말거냐 수준의 생존 문제다"라며 "지금 주민들의 낮은 수용성으로 반대하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경고를 덧붙였다. "전기 문제는 반도체의 핵심이고 365일 24시간 끊이면 안 된다. 이 공급이 불안하다면 우리는 TSMC나 중국 반도체에 따라 잡힐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