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진희. 이끌엔터테인먼트 제공배우 지진희하면 떠오르는 젠틀한 엘리트 이미지는 없었다. JTBC 토일드라마 '가족X멜로'의 지진희는 끊임없이 망가지고, 매달리고, 코믹한 웃음을 안겼다. 간만에 복귀한 드라마인만큼 안전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신선한' 생활 연기로 돌아왔다.
"요즘 드라마나 미디어를 보면 굉장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게 많아요. 거기에 많이 익숙해져 있고 물들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와중에 우리 드라마가 굉장히 신선하고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굉장히 큰 매력이고, 감독님과 작가님의 힘이 아닐까 해요. 자극적인 부분을 적정선으로 자기만의 리듬으로 그리기가 쉽지 않은데 끝까지 그렇게 가더라고요. 되게 좋았어요. 작품 선택을 잘했다는 기쁜 마음이 들었죠."
지진희가 연기한 변무진은 전 재산을 날려 아내 애연(김지수 분)과 이혼했지만, 11년 뒤 건물주가 되어 돌아와 애연과 재결합을 꿈꾼다. 이혼한 부부의 재결합 로맨스란 측면에서 '환승연애' 부부 버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느 정도 드라마적 허용을 감안하더라도 과연 지진희는 이혼 후 재결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부부 생활에는 서로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진이는 본인이 원해서 이혼을 한 게 아니라 당한 거니까 재결합을 할 여지가 있고요. 가족과 아내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끝까지 유지되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이혼하거나 헤어지는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에 무진이 같은 이혼이 아니라면 다시 돌아가긴 어려울 거 같아요. 제가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나이에 싸울 것 같지는 않고, 두 사람이 합의 하에 원해서 이혼할 수는 있겠지란 생각이죠."
이제 현장에 가면 고연차 선배 대열에 속하게 됐다. 그 동안 수많은 현장을 겪으면서 지진희가 깨달은 한 가지는 절대 후배 배우들에게 압박을 주거나 군기를 잡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연기 전공이 아닌 일반 대학을 졸업한 지진희는 지나치게 엄격한 선후배 위계 질서가 현장에서 얼마나 독이 되는지 몸소 배웠다.
"제가 자칫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면 신인 친구들은 그 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이미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까지 그러면 정신 못 차리죠. 그러면 드라마에는 완전 마이너스고요. 그들이 편하고 자유롭게 연기해야만 드라마가 풍성해지고, 느낌이 살아요. 그게 안될 때 작품이 힘들어진다는 걸 제가 너무 느꼈거든요. 예전에 이상하게 하는 선배들이 있었지만 사실 저는 상관 없었어요. 대학 직속 선배가 없었어서 심한 터치도 없었던 거 같아요. 다만 옆에서 보기에 너무하지 않나 싶고, 쟤 너무 힘들겠다 싶은 장면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전 선배가 되면 그렇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모두를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배우 지진희. 이끌엔터테인먼트 제공모녀 관계를 연기한 변미래 역의 손나은과 김지수 역시 수평적인 선후배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두 사람은 촬영하기 전에 매일 만나서 한강 산책을 하고, 밥을 먹었다고. 지진희는 "이러기가 쉽지 않은데 두 사람 다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다"라며 끈끈한 모녀 '케미'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전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남을 가질 정도로 선후배 간 수평한 관계를 만들고, 우리 드라마가 잘 되기 위해 노력한 거죠. 똑같은 인간으로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신인 배우들에게 그런 걸 이용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만약 현장에 대학 선배들이 많았다고 해도 제 본성은 바뀌지 않았을 거 같아요. 예전에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강압적인 선배들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새로운 도전도 많이 했다. 머리 위에서 달걀이 깨지고, 험하게 구르는 등 여러 가지 고생은 기본이고, 빨간 하이힐을 신고 여장까지 감행했다. 50대 남자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만한 조건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여장이라 불편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 이렇게 편하지 생각했는데 그 전에 제가 되게 불편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하이힐을 못 신을 거 같았는데 신어보니 다 신어졌어요. 또 한 가지 장점이 있어요. 몸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안돼요. 그리고 한 5~10m 왔다 갔다 하는 거니까 견디지 못할 건 없죠. 매일 신고 다니면 못 견딜 거 같지만요. 발등에 신발이 벗겨지지 않게 얇은 줄이 있었는데 굉장히 배려를 해주신 거죠. 걷는 게 해결되니까 고민했던 부분도 해결됐고, (연기가) 쉽게 느껴졌어요. 제가 손목과 발목이 얇은 건 알고 있었는데 예쁜 것과 상관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찍어보니 예뻐 보이더라고요."
지진희는 '가족X멜로'로 50대에도 멜로와 로맨스가 가능한 배우임을 증명했다. 50대 남자 배우들이 장르물 위주로 활약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그만큼 평소 자기 관리에 소홀하지 않게 늘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50대에도 멜로나 로맨스가 부자연스럽지 않은 배우, 실제로 지진희가 추구하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정말 운 좋게 로맨스를 계속하고 있어요. 제작진의 선택지 안에 들어간 것도 사실 굉장히 고마운 일이에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딱 맞아 떨어지거든요. 예전에 젊었을 때는 갑자기 준비를 하면 한두달 만에 만드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제 쉽지 않으니까 평소에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두고 있어요. 완벽하게 하는 건 아니라도 1~2주나 한달 정도 준비하면 어느 선까지 갈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만 조절 중인 거죠."
배우 지진희. 이끌엔터테인먼트 제공한 번 술자리를 시작하면 5차까지 달렸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진희는 6년 전 금주를 마음 먹었고, 지금도 지키고 있다. 술자리는 빠지지 않고 가지만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만큼 물을 마신다고. 물보다 술 마시는 게 쉬웠다는 너스레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술은 취해도 계속 마시게 되는 부분이 무섭거든요. 아예 안 마실 거면 마시지 말고, 마실 거면 마시자는 생각이었어요. 옛날에는 마실 거 다 마시고 살 빼는 게 가능했죠. 처음 연기 시작할 때 10㎏를 빼라고 했는데 먹을 거 다 먹고, 운동을 5~6시간씩 하면서 빼는데 성공했어요. 지금은 그게 안돼요. 그러니까 아예 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1년 금주했을 때 한 잔 마신 맥주가 너무 행복해서 더 이어갈까 말까 고민도 했었어요. 그런데 이걸 끊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실제로 그 뒤로 '따뜻한 말 한마디' '미스티' 등을 찍었고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금주를 했기에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을 계속 한 게 분명히 있었죠. 이번 드라마 노출 장면도 계속 몸을 운영하던 부분이 있어 어렵진 않았어요."
2년 가까이 부상 당한 양쪽 어깨를 치료하느라 고생한 적도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촬영 당시 어깨 인대가 끊어졌지만 스케줄 때문에 병원을 가지 못했는데 나중에 말썽이 생겼다. 이미 찢어진 어깨 근육이 마음대로 엉겨 붙어 팔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 상황이 된 것. 물론, 지금은 어깨가 360도 자유자재로 돌아간다.
"병원에 갔더니 1년 반에서 2년 동안 물리치료를 해야 된대요. 빨리 하려면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 된다는데 그건 안되거든요. 다른 방법 없겠냐고 했더니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한방 병원에 갔는데 대침을 가지고 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대요. 마음대로 엉겨 붙은 근육을 다시 찢고, 바르게 붙게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예요. 하자고 했더니 한의사 분이 너무 아파서 환자에게 고문 수준이라 하기 어렵다고 했어요. 저는 코 부상 수술 이런 것도 다 참아봤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죠. 아픈 근육을 찢어야 해서 마취는 할 수가 없어요. 아물면 계속 뜯어 내고, 또 뜯어 내고…. 재갈까지 물고 피가 철철 나는데 신기하게 한 번 치료 받으면 그만큼씩 어깨가 다시 올라가요. (웃음) 그러다 골프 각도가 너무 괜찮아서 치료를 그만뒀어요. 나중에는 제가 알아서 근육을 찢고 계속 스트레칭했어요. 지금은 다 나았어요."
지진희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주 당연한 삶의 순환이 '배우'란 직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 그는 진짜 '내 삶'에 대한 고민을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이 해왔다. 인간의 본능은 오래 살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생이 다해 죽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롭게 태어난다. 매 연기마다 최선을 다하되, 만약 물러날 시점이 온다면 충분히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강압적인 위계 문화를 이어받지 않는 것. 이 모두를 포함해 '진희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순환처럼 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겠죠. 하지만 아닌데 붙잡고 끝까지 가는 것 또한 문제일 거 같아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가겠지만 아니면 자연스럽게 빠지는 거죠. 저는 나오고, 또 새롭게 들어오는 친구들이 순환돼야 하지 않을까요. 때가 됐을 땐 미련 없이 갈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되는 거고요. 내가 이 시대를 사는 거기도 하지만, 이 시대에 내가 살아가는 것도 맞잖아요. 그러니까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이상, 이 시대를 내 시선으로 바라보고, 내 생각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진희적 사고'라고 해주세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