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전, 란>팀이 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정혜린 기자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2일 화려한 개막식을 열고 영화의 바다로의 항해를 시작했다. 지난해 인사 논란 등 내홍을 겪었던 BIFF는 올해 '대중성'을 내세우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날 오후 해운대 영화의전당 일대는 바람에 거세게 부는 날씨에도 일찍부터 국내외에서 온 영화팬들이 몰렸다. 친구와 연인, 가족과 함께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은 개막식 준비가 한창인 행사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개막식이 다가오자 영화의 전당 입구와 매표소 앞에는 긴 대기줄이 만들어졌고 굿즈샵 등 일대 행사장도 발 디딜 틈 없었다. 돗자리를 깔고 두꺼운 옷을 껴입은 채 좋아하는 배우를 기다리는 시민들 표정에서는 지친 기색 없이 설렘만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함께 영화제를 찾은 장하나(40대·여)씨는 "지창욱 배우가 개막식에 온다고 해 서울에서 영화제를 보러 왔다"며 "정말 오랜만에 턱시도 입은 배우의 모습을 볼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서울에서 온 송혜경(40대·여)씨는 "개막작 <전. 란>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특히 박정민 배우가 이번에도 색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주실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얼른 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2일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찾은 관객들이 이른 시각부터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김혜민 기자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자 행사장 일대에는 하나둘 화려한 불빛이 켜졌고 축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이윽고 배우 강동원과 김희애, 진선규 등 국내외 유명 배우과 감독들이 레드카펫에 오르자 기다리던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를 쏟아냈다.
배우들은 열띤 환영에 화답하듯 객석을 향해 엄지를 들어올리거나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반가움을 표해 관객을 웃음 짓게 했다.
레드카펫 행사가 끝난 직후 배우 박보영과 안재홍의 사회로 본격적인 축제의 막이 올랐다.
배우 안재홍은 "10년 전쯤 <족구왕>이라는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참석했을 때가 떠오른다"면서 "부산국제영화제가 감독, 배우, 영화인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올 때마다 느낀다"며 BIFF와의 남다른 인연을 전했다.
배우 박보영도 "아시아 최대 영화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드디어 시작한다. 사회를 맡게 돼 굉장히 가슴이 벅차오르고 떨린다"며 "올해는 어떤 영화와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새로 발견되고 주목될지 기대가 된다"고 설렘을 드러냈다.
배우 박보영과 안재홍이 2일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정혜린 기자 마침내 영화제 개막이 선언되고 뒤이어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등 시상식이 진행됐다.
아시아 영화 산업과 문화 발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인물에게 수여되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일본 스릴러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구로사와 감독은 "정말 감격스럽다. 올해 완성한 두 편의 영화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있어 무척 기쁘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여성 영화인의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올해 처음 신설된 '까멜리아상'은 류성희 미술감독이 수상했다. 류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 <괴물>,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수많은 작품에서 독보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영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한국영화공로상'은 故 이선균 배우에게 돌아갔다. BIFF는 이번 영화제에서 <고운사람, 이선균>이라는 주제로 특별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해 그의 대표적인 영화 6편을 상영한다.
시상식이 끝난 뒤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는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됐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작품이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건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상 처음이다.
영화 <전, 란>은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하고 김상만 감독이 연출했다. 배우 차승원, 강동원, 박정민 등이 출연한 작품으로, 조선시대 왜란이 일어난 혼란한 시대에 함께 자란 최고 무신 집안 아들과 그의 몸종 간의 서사를 그렸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故 이선균 배우를 기리는 추모영상이 스크린에 나오고 있다. 정혜린 기자 지난해 수장이 잇따라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박광수 신임 이사장 체제를 꾸려 새 출발을 알렸다. 집행위원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갈등을 봉합한 만큼 영화제가 세계 영화인의 축제로 재도약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영화제 기간 유명 영화인들이 관객과 직접 만나는 '오픈토크'부터 지역 주민이 함께 영화를 즐기는 '커뮤니티 비프' 등 부산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려 축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될 전망이다.
영화제는 오는 11일까지 열흘 간 63개국 224편의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며, 싱가포르 출신 에릭 쿠 감독의 작품 <영혼의 여행> 상영을 끝으로 축제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