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이 좀처럼 도약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IBM의 자체 AI(인공지능)칩 생산을 맡기로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사업 확장에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대만 TSMC의 기존 고객을 빼앗아 오는 데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보고, IBM처럼 AI칩 자체 생산 의지를 갖고 있는 빅테크들과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봤다.
다만 TSMC처럼 중소형 팹리스들과 협력 관계를 이어가며 이들과 동반성장하며 생태계를 구축하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IBM은 26일(현지시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반도체 콘퍼런스 '핫칩 2024'에서 신형 프로세서 텔럼2와 AI 가속기 스파이어를 공개하며 모든 칩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만들겠다고 밝혔다. 신형 AI칩은 삼성 5나노미터(㎚·1㎚=10억 분의 1m) 공정에서 양산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1세대 제품인 텔럼에 이어 차세대 제품 수주를 계속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파운드리 1위인 TSMC에 대한 추격에 대한 동력을 잃지 않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타트업이나 차량 관련 주문은 늘었지만 여전히 대형 고객사 확보에 대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삼성전자의 오랜 '우군'이었던 구글이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될 차세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제조를 TSMC에 맡긴 상황 속 IBM AI칩 수주는 삼성 파운드리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인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3%로 TSMC(62%)와의 격차는 직전 분기 수준(49%포인트)을 유지하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23% 늘었지만 점유율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추격의 불씨는 살렸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당분간은 악전고투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시스템LSI사업부의 지난해 영업적자 규모는 2조원을 웃돌고 올해 상반기애도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면 올해도 파운드리 사업에서 조 단위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며 '비전 2030'을 꺼냈지만 업계에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TSMC는 고객사들이 구형칩을 생산하는 소규모 회사일때부터 빅테크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지금의 위치에 이른 것"이라며 "소품종 대량생산부터 다품종 대량생산까지 가능한 TSMC와 비교할때 업력과 인력, 투자가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현실적으로 무리한 목표를 제시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TSMC의 '우군'을 빼앗아 오는 것보다는 자체적으로 AI칩 개발에 나선 빅테크 수주에 집중하는 전략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시각도 있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전 분야를 단시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고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첨단제품시장에 국한되어서 봐야할 것"이라며 "IBM처럼 AI칩을 개발하려는 기업들을 빨리 캐치해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인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유재희 교수는 "TSMC처럼 고객사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삼성전자의 제조라인 특성상 TSMC처럼 작은 규모의 고객사 요청까지 소화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서는 선두주자이지만 시스템반도체에서는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글로벌마케팅을 통해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력 개선 의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보인다.
삼성전자 새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은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와 시스템LSI사업부 등 메모리를 제외한 제품과 서비스) 중 메모리 경쟁력 회복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모양새다.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ASML의 최첨단 장비인 하이-NA EUV(극자외선) 장비 도입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서울과 도쿄, 실리콘밸리 등을 돌며 개최하는 파운드리 포럼 행사를 대폭 축소한 것은 전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원한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HBM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건 다양한 사업과 기술에 대해 더 공세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선두주자이지만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인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산업은 공세적이기보다 방어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