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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참사, 경찰은 '운전자 과실' 결론…남은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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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과수, 급발진 아닌 운전 미숙으로 판단
피의자는 일관된 '급발진' 주장…재판서도 다툴 듯
전문가들 "소프트웨어 결함 검증 없어…반쪽짜리 검증"
"데이터-현장 교차검증으로 진실 밝혀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9명의 사망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사고의 운전자 차모(68)씨가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차씨의 운전 미숙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경찰은 '운전자 과실'로 판단한 근거가 되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 등 급발진 관련 분석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EDR의 신뢰성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차량 결함 분석 능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나오는 가운데, 피의자 차씨는 계속해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재판에서도 사고 원인을 둘러싼 다툼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 "차량 기계적 결함 없어…액셀을 브레이크로 착각한 듯"

이번 사건을 한 달간 수사해 온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일 오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피의자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지만 피의자의 주장과 달리 운전 조작 미숙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류재혁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은 브리핑에서 "국과수 감정 결과 가속장치·제동장치에서 기계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고 EDR 또한 정상적으로 기록되고 있었다"며 "EDR 분석에 따르면 제동페달은 사고 발생 5.0초 전부터 사고 발생 시(0.0초)까지 작동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량에 장착된 EDR은 사고 또는 충돌이 발생하면 가속페달(액셀)과 제동페달(브레이크) 등의 작동 상황을 저장하는 기록 장치다. 사고 발생 5초 전부터 사고 발생 시간까지 총 5초의 기록이 저장되는데, 해당 5초동안 제동페달을 밟은 기록이 없다는 것이 경찰의 결론이다.

류 서장은 "피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주장하는데 브레이크를 밟았던 기록은 없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뗐다 하듯이 최고 99% 변위량의 풀액셀을 끝까지 밟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에 BMW 차량을 충격하고 난 이후에야 브레이크를 밟은 기록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가속페달 변위량 99% 수치가 몇 초 이상 지속됐는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류 서장은 "거의 4초 정도는 밟고 있었다. 계속 전반적으로 다 밟고 있고 순간적으로 뗐다가 다시 밟았다. 순간적으로 두 번 정도 발을 떼 수치가 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답했다.

류 서장은 "사고 당시 피의자가 신었던 오른쪽 신발 바닥에서 확인된 정형 문양이 액셀과 상호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며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 사고가 아니라, 운전자가 브레이크와 액셀을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경찰·국과수 "차량 기계적 결함 없어"…전문가들 "반쪽짜리 검증"

영장심사 출석하는 시청역 역주행 운전자. 연합뉴스 영장심사 출석하는 시청역 역주행 운전자. 연합뉴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경찰의 설명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EDR 기록은 차에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남는데, 최대 4개까지 기록된다고 한다. 또 EDR은 0.5초 단위로 속도, 엔진 회전수(rpm), 가속페달 변위량(%), 제동페달(ON·OFF), 기어 등의 항목을 기록한다.

차씨의 차량이 인도 안전펜스를 들이받은 1차 충돌 상황, 보행자들과의 2차 충돌 상황, BMW 등 도로에 있던 차량들과의 3차 충돌 상황 등이 EDR 기록을 발생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EDR 기록이 총 몇 개 찍혔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아울러 EDR 기록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EDR은 자동차의 뇌라고 할 수 있는 전자제어장치(ECU)의 통제를 받는데, ECU 오류로 급발진이 발생했다면 EDR에 제대로 된 기록이 남겠냐는 것이다.

국과수는 지난달 11일 이번 사고가 운전자 과실 때문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감정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국과수는 가속장치와 제동장치에서 기계적 결함은 발견하지 못했고, EDR 또한 정상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국과수의 급발진 감정 능력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박병일 자동차정비 명장은 "(국과수는) 데이터만 가지고 분석한다. 고장 코드가 들어있으면 고장, 고장 코드가 들어있지 않으면 이상 없다고 판단한다"며 "고장 코드는 특정 상황이 3~4초 동안 유지될 때 고장 코드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2초 동안 문제가 있었다면 고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고장 코드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도현 군이 사망한 '강릉 티볼리 급발진 의혹 사건'의 소송대리인인 하종선 변호사도 "국과수는 차량을 굴리는 상태에서 분석하지 않고 세운 상태로 하드웨어를 점검하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며 "국과수는 ECU의 소프트웨어 결함 부분은 아무런 검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국과수 감정서는 항상 '기계(하드웨어)적인 결함은 없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급발진은 하드웨어적인 결함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결함에 의해 발생한다"며 "실제 현장 검증을 해야 하는데, 세워놓은 차만 보고 '기계적인 결함은 없다'로 결론 내는 반쪽짜리 보고서"라고 지적했다.

피의자 "급발진" 일관되게 주장…"EDR 기록과 현장 교차검증 필요"

차씨는 사고 직후부터 현재까지 줄곧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호텔 주차장 출구 약 7~8m 전에 이르러 '우두두'하는 소리와 함께 브레이크가 딱딱해져 밟히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인명피해가 컸던 사건인 만큼 진실 규명을 위해 수사기관이 EDR 기록과 CCTV,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 차량 결함 여부 분석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 변호사는 "가속페달 변위량 기록이 정상이나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 있지만 1차적으로는 EDR 기록에 의해서 가속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소위 변위율 0%일 때 RPM이 얼마인지, 속도별 RPM은 얼마인지 등을 비교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속페달을 99%로 밟고 있다가 떼면 속도나 RPM이 떨어져야 한다. 얼마나 떨어진 걸로 기록됐는지 등 수치를 공개하고 설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차의 블랙박스 영상이나 CCTV 영상 공개 등을 통해 운전자가 급발진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에 지형적인 특성상 경사진 곳인데 어떻게 차량에 급가속 현상이 발생하게 됐는지 현장 검증을 통해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끝으로 "갈비뼈가 여러 군데 골절됐을 때 통증이 굉장히 심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했을 것"이라며 "차씨가 그런 상태에서도 BMW 충격 전까지 가속페달을 계속 밟고 있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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