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 제공 유사 이래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때론 의술이라는 과학적인 언어로 포장되거나 생명 연장을 위한 실험 도구로 활용돼왔다. 수많은 전쟁과 참화, 재난 속에서 인간의 몸은 의학 발전을 명분으로 끔찍한 실험을 동반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세계사를 뒤흔든 5가지 생체실험'은 역사와 의학사 연구자인 저자가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실행한 다양한 방식의 생체실험과 그 역사적 배경을 소개한 책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은 곧 병원이었다. 질병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던 당시 그리스인들은 이 신전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의사는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니면서 의술을 시행했다. 의료 사고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고대 로마 시대의 의사·해부학자로서 고대 해부학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갈레노스의 해부학은 사실 동물실험에 국한해 인체의 장기를 살피는 오류를 지녔다. 사람이 섭취한 영양분이 간으로 이동해서 '자연의 기운(Natural Spirit)'을 통해 혈액으로 변한다고 믿었다. 이후 심장으로 이동하고,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가 '생명의 정기(Vital Spirit)'와 섞여 온몸으로 순환한 다음 소멸한다고 생각했다.
전쟁과 살육은 생체실험과 의술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왔지만 끔찍한 실험도 자행됐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 가장 치명적인 급소를 찾아내고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신체 가죽을 벗기거나 산 채로 고통을 느끼며 끔찍한 죽음을 맞게 하는 행위들이 빈번했다.
근대의 가장 대표적인 생체실험은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내과 의사인 요제프 멩겔레(1911~1979)의 어린아이와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마루타'로 불린 이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광범위한 생체실험이 있다.
우생학을 신봉했던 요제프는 금발과 푸른 눈의 아리아인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으며 어린 아이 눈에 화학물질을 삽입하거나 쌍둥이에게 세균이나 약물 투입, 해부 등을 하는 끔찍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이 실험으로 4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우생학은 세계대전 당시 동맹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잔혹한 실험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제는 교토제국대 의학부를 수석 졸업한 이시이 시로(1892~1959)가 세운 731부대를 통해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은 물론 일부 연합국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벌여 세균, 약물, 가혹한 환경에서 인체 실험 등을 수행해 수천 명을 희생시켰다.
동물의 혈액을 인간에게 주입하거나 바닷물이 생리식염수를 대체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마루타에게 주사하기도 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인간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사망할 때까지 돌리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70% 이상이 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1932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공중위생국과 터스키기연구소가 흑인 소작농부 600명을 대상으로 자행한 비밀 생체 실험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은 백인 우월주의가 낳은 희대의 폭력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미국 흑인들이 정부와 보건당국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김서형 지음 | 믹스커피 | 2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