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는 지난달 28일 정기명 시장과 간부 공무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직장 내 갑질 등 3대 비위행위 근절 캠페인을 펼쳤다. 여수시 제공전남 여수시가 '직장 내 갑질 제로화'를 선언하고 조직문화 개선에 나섰지만 하위직 공무원들의 고충은 여전한 모습이다.
부서원들이 상급자의 점심식사를 책임지는 '모시는 날' 구태가 잇단 지적에도 이름만 바뀐 채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여수시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부서장들을 대상으로 '공직문화 개선을 위한 불합리한 관행 근절 협조' 공문을 시달했다.
공문에는 불합리한 관행인 '부서장 점심 모시는 날'과 관련한 조직문화 개선에 노력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여수시청공무원노조가 조합원 17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데 따른 조치다.
여수시청공무원노조가 지난달 11일 노조 홈페이지에 공개한 '직장문화 개선 사항 설문 조사 결과' 일부 항목. 여수시청공무원노조 제공
노조의 조사 결과 응답자 44% 가량이 '부서장 점심 모시는 날'을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애초 취지인 직원 화합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24%에 불과했다.
'부서장 점심 모시는 날'은 하위직 공무원들이 돌아가면서 국·과장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는 관행을 뜻한다.
팀별로 순번을 정해 월간 일정표를 작성, 일선 부서별로 월 1회 이상 국·과장에게 각각 점심식사를 대접해야 한다.
다수의 부서에서 이같은 관행을 유지하고 있으며 부서장 입장에서는 매주 1~2회 부서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
식사비용은 부서원들이 매월 사비를 걷어 마련한다.
한끼에 8천 원으로 제한되는 팀 예산으로는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점심시간까지 긴장해야 하는 점도 문제다.
메뉴 선정이 자칫 부서장의 취향에 어긋날 경우 핀잔을 듣는데다 마음 편해야 할 점심시간에도 의전에 집중해야 한다.
시보떡 관행(신입 공무원이 시보 기간을 마치고 정식 임용되면 주위에 떡을 돌리는 문화)도 없애는 추세에 사비로 부서장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이 길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같은 구태는 수차례 자정 노력에도 이름만 바뀐 채 지속되고 있다.
여수시는 '부서장 점심 모시는 날'에 대해 지난 2021년 공문을 통해 불합리한 관행이라며 금지를 요청했다.
이후 2022년 1월에도 일선 부서장에게 같은 내용의 협조 공문을 보낸데 이어 올해도 노조의 설문조사 발표에 맞춰 공문을 전파했다.
하지만 협조 공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간담회'와 같은 형식으로 이름만 바꿔 관행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속앓이를 하면서도 업무상 불이익을 우려해 선뜻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처지다.
'부서장 점심 모시는 날' 운영 부서에 속한 한 여수시 공무원은 "소속별로 사정이 다른 경우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부조리가 심하다. 직장 내 갑질일 수도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다"며 "오랜 관행인 만큼 불합리하다고 생각해도 조직 문화의 특성상 문제 제기하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여수시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최근 공문 발송 이후 부서장 점심 모시는 날에 대한 애로사항이 접수되지는 않았지만 점검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며 "조만간 이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기명 여수시장은 올해 3월 직장 내 갑질 등 행위 제로화를 선언했으며 지난달 28일에는 '직장 내 3대 비위행위 ZERO'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 캠페인은 국·과장을 포힘한 5급 이상 간부 공무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