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 에 참가한 교사들이 카네이션 헌화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선생님이 생전에 너무 고생만 하다 가셔서 안타까운 마음에 추모하러 들렀어요. 교육 현장에 변화를 위해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대 직장인 심모씨는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 마련된 서이초등학교 교사 추모 공간을 찾았다. 그는 헌화대 앞에 서서 묵념하고 국화꽃 한 송이를 조심스레 내려뒀다.
'슬픔을 넘어 교육 공동체 회복으로' 이곳에는 서이초등학교 교사 순직 사건(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학생, 학부모, 교사가 슬픔 없이 상호 존중으로 어우러지길 바라는 내용의 추모객 메모가 많이 붙어 있었다.
1년 전 서이초 사건 발생 후 교권 회복을 위한 관련법 등 여러 대책이 잇따랐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한때 수험생들의 선호 대학이었던 교육대학(교대)은 수능 합격선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기피 현상이 커지고 있는데,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 마련된 서울 서이초등학교 순직 사건 추모 현장에서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주보배 기자서이초 사건 이후 법 개정됐지만…교사들 "체감 못 해"
대구에서 20년째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김성문(가명·40대)씨는 자신이 맡은 아이에게 직접 욕설을 들었지만 아이로부터도, 학부모로부터도 사과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학부모에게 상황을 얘기하니 '선생님에게 한 건 아니겠죠'라고 하시더라고요. 학교 관리자들에게 털어놓으니 '좀 더 교실을 잘 운영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하거든요. 거기서 많이 무너졌습니다"
김씨는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청이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교원지위법을 개정해 '교육활동 침해 행위 사실을 알게 된 학교장이 가해 학생을 교원으로부터 분리 조치하고 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하지만 김씨가 말한 학교 현장은 너무나 달랐다. 그는 "분리를 하려면 가해 학생을 돌볼 또 다른 인력이 필요하고, 공간도 필요한데 제가 있는 지역에선 가능한 학교를 거의 못 봤다"며 "그러다 보니 '참아라', '병가쓰고 들어가라' 정도가 최선이다. 주변에도 병가 쓰고 쉬고 계신 동료 선생님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박은지(가명·30대)씨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 문제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정서적 학대 문제에 걸릴까 봐 적절한 교육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여전하다"며 "학부모가 악성 민원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없지 않은가. 제도적 개선이 이뤄졌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9일부터 나흘 간 전국 유·초·중·고 교원 426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서이초 사건이 교권 5법 개정 등 교권 보호 제도 개선에 기여했다'고 답한 교사는 11.6%에 그쳤다. 제도 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지난 3일부터 닷새간 서울교육대학교 718교권회복연구센터에 의뢰해 서울 초등학교 교사 8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교사들은 '나의 육활동이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없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다'는 질문에 5점 만점 중 4.58점을 매겼다.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한 시민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4등급도 간다…교대 합격선 큰 하락에 "교권 추락이 영향"
교대 진학 열기가 식은 것도 이 같은 교육 현장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종로학원이 대입정보포털 '어디가'를 통해 전국 9개 교대 2024학년도 정시 합격선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9개 교대는 서울교대·전주교대·진주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춘천교대·한국교원대 초등교육·청주교대·부산교대 등이다.
특히 유일하게 합격자의 수능 최저 등급을 공개한 공주교대의 경우 수능 위주의 일반전형에서 국어·수학·탐구 영역에서 최저 6등급을 받은 학생도 합격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3학년도 최종등록자 국수영탐 평균 등급이 2.6등급이었던 것과 크게 달라진 양상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한 번 더 준비하고 있는 조모(20세)씨는 "학부모 민원으로 스트레스도 심할 것 같고 학생들의 폭언 사례도 너무 많아 교대 생각을 접었다"며 "주변 친구들도 서이초 사건 때문에 아예 교사 생각을 접거나 차라리 학원 강사로 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메가스터디교육 남윤곤 입시전략실장은 "최근 2년 사이에 교대를 선호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 (수능 합격자 평균 등급이) 4등급 학생도 (교대) 입학이 가능해졌고 지방교대의 경우 지원자가 현저히 줄었다"며 "교대 인기가 굉장히 많이 떨어진 이유에 교권 추락 현상이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세종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박문종(가명·30대)씨는 "주변 교사들은 물론 저도 자녀가 교사가 된다고 하면 안 시키고 싶다고 한다"며 "적은 임금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힘든 건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는 문제라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교대 교육학과 박남기 교수는 "교대 지원율이 과거와 달리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며 "사회적 존경, 처우 등이 보장됐던 과거와 달리 교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뀌어 교사의 교육권 침해가 다반사가 됐다. 교육활동이 극도로 위축되고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져 교사들의 전문 직종성은 인정이 안 되고 있는 추세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정부에서도 낮아진 (교대) 등급 컷을 의미 깊게 고려해야 한다"며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전문적인 업무 수행에 초점을 두게 하기 위해선 무리한 민원 요구가 있을 경우 국가와 사회에서 예산과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교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