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예 가파 어촌계장◇박혜진> 10여 년 전 제주에 정착한 한 사진작가가 해녀가 되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던 끝에 지금은 한 어촌계를 대표하는 어촌계장으로 활동을 하고있습니다. 현재 가파도 어촌계를 대표하는 유용예 가파도 어촌계장인데요. 만나보겠습니다. 작가님은 언제 어촌계장이 되셨습니까?
◆유용예> 어촌계장 직책을 맡은 건 2021년도 2월입니다. 어촌계장의 임기가 4년인데 이제 4년째 임기를 채웠습니다.
◇박혜진> 가파도 어촌계에 소속된 해녀분들이 몇 분이십니까?
◆유용예> 현재 올해 2명이 은퇴하시고 지금은 43명입니다.
◇박혜진> 어촌계장 중에 제주출신이 아닌 경우는 드물지 않나요?
◆유용예> 제주도에 103개 어촌계가 있는데 그 어촌계마다 어떤 역사성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몰라요. 그런데 가파도의 경우는 사실 굉장히 파격적인 상황이었죠. 제가 올해 가파 어촌계 11대 어촌계장이거든요.
해녀 공동체에서도 외지인 중에서 결혼한 형태가 아닌 외지인이 해녀공동체에 가입을 한 형태도 처음입니다. 제가 어촌 계장을 맡게 된 데는 해녀분들의 절실한 요구도 있었고 제가 섬에 거주한 것이 1~2년 된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해녀분들 옆에서 함께 일을 했기 때문에 제안해 주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어촌계장이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습니다. 처음 어촌계장을 제안해 주셨을 때 거절했었어요. 결국 어촌계총회에서 추대가 돼서 어촌계장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해녀들 사진찍어주는 유용예 작가. 유 작가 제공
◇박혜진> 어촌계장으로서 할 일이 많으셨겠어요.
◆유용예> 네. 제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보조 지원 사업이라든지 어촌계에 노후된 시설이나 바다 환경 등 부수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진행하고요. 요즘 수산업법도 굉장히 많이 바뀌고 있거든요. 지원 정책들도 굉장히 많이 바뀌기 때문에 계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고요.
특히 바다에 가서 수산물을 잡으면 아무런 고민없이 팔아줄 수 있는 판로를 만들어줄 수 있는 어촌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혜진> 제주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언제쯤이셨습니까.
◆유용예> 저는 제주라는 섬을 너무 사랑했어요. 대한민국 남쪽에 이런 기후적 환경을 갖고 있는 섬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가파도라는 섬과의 인연은 2010년도에 제가 가파도에 갔었거든요. 바다를 바라보면서 앉아 있었는데 해녀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계속 서계신 거예요. 그러다가 제 옆자리에 앉으시더니 '어디서 왔느냐. 왜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느냐' 물으시더군요. 사실 나중에 여쭤보니까 제가 걱정이 됐었다고 하시더구요.
그러다가 그분이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이 바다에 가면 뭐가 있고, 저 바닷 속에는 뭐가 있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주시는데 제가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던 바다가 아닌 전혀 다른 생이 넘쳐나는 이야기만을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그 할머니를 쳐다보게 됐는데 그런 눈을 처음 본 거예요. 제가 바다가 가득한 해녀의 눈이라고 표현했었거든요. 검푸른 바다 가파도의 바다가 가득한 해녀의 눈. 그 해녀의 눈이 정말 너무 구슬프면서도 촉촉하면서도 일반적으로 보던 어떤 사람의 눈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너무 궁금한 거예요.
바다를 닮은 눈을 하고 있는 해녀라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할머니를 쫓아갔어요. 늦게까지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가 저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죠. 그런데 계속 마음이 가파도로 향하더라고요. 그 해녀분이 말씀해 주시던 바다가 너무 궁금해서 다시 카메라를 집어 들고 가파도를 찾았어요.
2010년 그때부터 저는 집중적으로 가파도와 인연이 시작됐고 그 이후에 가파도 해녀분들을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 해녀를 직접적으로 가까이 보게 되고 결정을 하게 되죠. 내가 이 섬으로 와야겠구나. 정착해야겠구나.
처음에는 2박 3일, 4박 5일, 일주일, 열흘, 한 달이 되고 그러다가 몇 달을 거주하게 되면서 완전하게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한 거죠. 지금은 벌써 14년째 살고 있습니다.
◇박혜진> 타 지역에서 오신 분이 해녀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하던데 작가님은 예외였던 것 같아요.
◆유용예> 오랜 시간 섬을 오가면서 이분들과 쌓아온 신뢰감도 있었고, 해녀 할머니들이 굉장히 좋아해 주셨어요. 손녀딸처럼 딸처럼. 제가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쫓아다니면서 바다에 같이 가곤 했는데 해녀 할머니들이 저를 사진가로서 보는 게 아니라 바다에 같이 갈 수 있는 벗이라고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 가파도에서는 바다에 같이 들어가는 해녀 동료를 '물벗'이라 부르거든요. 정말 이쁜 말인데 '나랑 물벗해서 바다 같이가자' 이 말을 해 주셨을 때 제가 엄청 감동을 받았죠.
해녀 유용예 작가. 유 작가 제공◇박혜진> 제주 바다에 갯녹음 현상이 심해진다는 얘기들이 나옵니다. 가파도의 바다 사정은 어떻습니까?
◆유용예> 제가 어촌계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4년이란 시간동안 바다에 대한 좋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실질적으로 바다를 들여다보고 관찰할 수 있었구요. 제가 사진가로서 섬과 바다에 대한 해녀로서 기록을 하다 보니까 여러 변화를 체감하게 되더라구요.
가파도 섬에서 발생한 해양 쓰레기나 일반 쓰레기들은 다 외부로 반출이 되다보니 어느 정도 쓰레기양을 산출할 수가 있더라고요. 또 바다에 대한 변화를 기록하다 보니까 사라진 것들이 있어요.
매년마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조업하는 루틴이 있는데 2018년도까지는 어촌계에서 모자반을 공동 작업했는데 2019년도부터 모자반이 바다에서 사라져 채취를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기록한 것을 보니 2018년도 제가 모자반 공동 작업에 참여해서 35만 원인가 받았거든요. 2019년도부터는 0원이 된 거예요.
2019년에도 미역에 문제가 발생을 해요. 미역도 어느새 녹아서 사라져서 수입이 0이에요. 다음 해에 조간대에서 나고 자라는 톳이 어느 정도 수입원이 돼 줬는데 없어진 거예요. 저희 어촌계에서 상품화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더라고요. 지금 바다의 변화라는 부분들이 해양 쓰레기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거는 치우면 돼요. 근데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의 위기가 더 걱정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을 했는지 기후 변화로 바다 수온이 올라갔다. 보이지 않는 물속의 오염원에 의해서 현상이 발생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 저희는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정말 위기라고 생각해요.
해녀들이 바다에 의지해서 일을 하는데 해조류가 사라지니까 사실 바다의 위기가 해녀분들의 가정 경제 위기까지 오게 된 거죠.
◇박혜진> 지금 해녀 문화 전승에 대한 얘기도 나옵니다만 해녀들의 고령화에 급감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 문제 어떻게 보세요?
◆유용예> 해녀 문화는 해녀라는 사람을 포함해 그들이 살아온 공동체성, 문화 생활사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서 하는 말이거든요. 근데 이 것이 유지가 되려면 지속적으로 해녀분들의 세대가 딸, 며느리, 자녀로 이어져 왔듯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환경적 배경이 돼야 돼요.
직업적 특성상 여전히 생계형이잖아요. 바다가 계속 물려줄 수 있도록 전승 보존될 수 있게끔 새로운 세대가 와서 경제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끔 환경이 개선돼야 합니다. 아니면 새로운 것들이 대체돼야 합니다.
해녀로서 지역의 바다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또 해녀로서 지역 문화 가치를 같이 이어가면서 또 가치 있게 만들어갈 수 있게끔 행정도 해녀들도 어촌계도 다 함께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용예 작가 작품. 유 작가 제공
◇박혜진>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유용예> 어촌계장 임기가 끝나도 가파도 섬에서 해녀라는 직책으로 다시 돌아갈 거구요. 어촌계의 구성원으로 다시 돌아가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해녀분들과 어촌계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들을 해야죠.
또 유용예란 사람으로서의 삶을 굉장히 성실하게 책임감 있게 살아갈 거고요. 어촌계장을 하면서 잠깐 멈췄던 제 작업들이 있어요. 멈췄다기보다 조금 느리게 해왔던 작업들이 있는데요. 가파도 해녀 문화를 기록했었던 것들을 보여주고 알려야겠다.
저는 그것들이 가파도 섬 해녀 문화의 가치성과 우수성이라고 생각하는 자부심이 있는데 그것들을 해녀분들한테 조금 더 나눠줄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