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썼으니 '소변' 마셔…이게 비즈니스인가요?"[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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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소한 싸움은 없다! 사회적 논의를 끌어내는 다양한 싸움을 조명합니다. 변화를 위해, 생존을 위해, 존엄을 위해 기존 체제와 관습에 맞서는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성착취 사회'와 싸우는 사람]
일본 소녀 지원 단체 '콜라보' 니토 유메노 대표 인터뷰

CBS노컷뉴스와 화상인터뷰를 진행 중인 니토 유메노 콜라보 대표CBS노컷뉴스와 화상인터뷰를 진행 중인 니토 유메노 콜라보 대표
"일본의 한 유명 학자가 '너 말이야 소녀들의 일자리를 뺏으면 안 돼. 지적장애가 있는 애들은 몸속에 벌레를 넣는 행위도 기꺼이 한다고. 칭찬을 해주면 기쁜 듯 웃어. 네가 그런 애들의 행복을 뺏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해'라고 말했다."

AV(Adult Video·실제 성행위가 담긴 영상물) 출연피해 방지구제법(이하 AV신법)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소녀 지원 단체 콜라보(Colabo) 니토 유메노 대표는 '계약과 합의'의 민낯을 지적했다. 그는 계약서 한 장으로 AV업계의 성폭력이 자발적인 선택으로 포장된다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일본은 AV신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영상이 공개된 날부터 1년간 조건 없이 계약을 해지하고 영상 판매와 유통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영상 제작자는 AV마다 출연자와 출연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자주규제에 따라 '적정한 AV'를 만들고 있다"며 "출연을 강요한 사례는 단 1건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안이 시행된 2022년 6월부터 10월까지 전국에서 103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니토 대표는 CBS노컷뉴스와 화상 인터뷰에서 "AV업계에서 일어나는 성착취는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자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의사로 선택한 것처럼 믿게끔 유도하는 작업을 날마다 하고 있다. 그것은 협박이나 강요 없이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모델·아이돌 권유받은 7명 중 1명, 성인물 촬영 요구당해"

일본 내각부 홈페이지 캡처일본 내각부 홈페이지 캡처
암시장 연구기관인 하보스코프는 AV를 비롯한 일본의 성산업을 연간 약 240억 달러(29조 원) 규모로 추산한다.

거대한 AV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업자들은 소위 '상품 가치'가 있는 어린 여성을 끊임없이 시장에 공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린 여성을 적극적으로 유인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본 내각부의 2020년 조사 결과, 모델·아이돌 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 7명 중 1명이 '듣지 않은-동의하지 않은 성적 행위 등의 촬영 요구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2016년 조사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받은 사람 중 32.1%가 위협이 두려워 음란물 촬영에 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델·아이돌 데뷔를 미끼로 계약서를 쓰게 한 후 AV 촬영을 강요, 거부하면 위약금으로 겁박하는 수법도 국제인권기구 휴먼라이츠나우(HRN)의 2016년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다. 피해자 중 일부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세상을 등졌다.

특히 빈곤·학대 등의 배경을 가진 10대들이 표적이 되기 쉽다. 니토 대표는 "(가정폭력 등 때문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소녀에게 한 업자가 접근해 거처를 마련해줬다. 소녀가 18살이 되자마자 업자는 AV 촬영을 제안했고 소녀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가 만난 실제 피해자의 사례다.

또한 "성 학대를 받은 아이 중 일부는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AV배우를 동경한다. AV배우들은 이런 소녀들과 SNS로 소통하고 '18살이 되길 기다릴게' 같은 말로 유인한다. 직접 소녀들을 스카우트해 돈을 버는 배우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AV업계에 유리한 AV신법에 반대하는 긴급 액션' 집회 중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니토 유메노 대표. SNS 캡처'AV업계에 유리한 AV신법에 반대하는 긴급 액션' 집회 중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니토 유메노 대표. SNS 캡처
법안 제정에 앞서 민간 지원단체 자격으로 실무자 회의에 참석했던 콜라보는 AV신법에 '성교' 및 '폭행·학대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AV신법은 성교의 금전거래를 금지하는 매춘방지법과 달리 계약에 따른 성관계를 사실상 인정한다. 또한 '계약 여부'에 중점을 뒀을 뿐 업계의 성착취와 유인 수법은 심도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는 "촬영 중 소변을 보게 하거나 마시게 하는 수준의 학대가 빈번하다. 업자들은 연출이라고 하지만 (영화와 달리) 이는 명백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출연자가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위를 계약에 의한 비즈니스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니토 대표는 AV신법에 반대하는 항의 집회를 개최하며 정치인들과 AV업계의 타깃이 됐다. 그는 "일본 성산업은 규모가 거대하고 정·재계와도 관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의원들이 콜라보에 대한 가짜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 업자들의 살해·강간 협박도 있었다. 심지어 단체를 패러디한 AV도 나왔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선택으로 모든 문제의 책임을 돌리면 업자도 사회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여성들이 AV업계로 빠지게 되는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 복지에 구멍은 없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콜라보 패러디 AV 판매 이벤트 공지(왼쪽)·실제 명함과 유사하게 만든 가짜 명함. 엑스 캡처콜라보 패러디 AV 판매 이벤트 공지(왼쪽)·실제 명함과 유사하게 만든 가짜 명함. 엑스 캡처

"예능으로 포장된 AV산업 소비, 개방적 성문화와 구분해야"

"AV배우가 성인 페스티벌 같은 행사에 출연하는 일이 일본에서는 흔하다. 가볍고 친근한 방식으로 AV문화를 접하다 보면 무의식중에 AV나 성매매를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성착취를 인식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AV의 엔터테인먼트화'에 니토 대표는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한국 넷플릭스는 AV배우와 감독 인터뷰를 담은 예능프로그램 '성+인물'을 공개해 성산업을 미화했다는 논란에 직면했다. 지난 19일 유튜브 채널 '노빠꾸 탁재훈'은 AV배우가 여성 아이돌에게 "AV배우로 데뷔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을 편집 없이 내보내 비판을 사기도 했다.

일본 AV배우들이 출연하는 'KXF 성인 페스티벌'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까지 번진 바 있다. 주최 측이 수원-파주-서울 등지에서 개최를 시도했으나 지자체의 거부로 개최가 무산되고,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성인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에서 성인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다.

이와 관련 여성계는 성착취가 만연한 AV산업을 예능이라는 포장지에 담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개방적인 성문화'와 'AV 산업 소비'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수원여성의 전화'는 성인페스티벌에 대해 "안전하고 자유로운 성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아닌, 노골적으로 '여성의 성'을 매개로 수익만을 노리는 명백한 성 착취이며 성매매를 옹호하는 문화를 확산할 뿐"이라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성의 신체를 '놀이'로 소비하고 있기에 심각한 성폭력"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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