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0시 31분께 화재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서신면의 한 일차전지 제조 공장. 화성=황진환 기자경기 화성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로 다수의 이주노동자가 숨진 가운데 이 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유사 화재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안전 교육 지원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재는 관련 교육 자료를 찾기 어려운 데다가, 외국어로 된 가이드라인도 없어 이주노동자들은 취약한 환경에 놓여있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27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으로서 외국인용 안전보건교육 자료를 개발하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외부 공개 자료 중에 이번 사고처럼 물로는 진화하기 힘든 리튬 배터리 화재 관련 외국어 번역 자료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단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주노동자용 안전보건자료 가운데 리튬 배터리 화재 관련 자료는 한 건도 검색되지 않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자료실' 홈페이지에 게재된 외국어 자료 중 리튬 배터리 화재사고 자료는 검색되지 않는다.
제조업 화재 사고와 관련해 외국어 동영상 자료는 '용접·용단 작업 중 화재사고 예방'과 '국외재해사례' 영상이 게재돼 있다. 비시청각 자료로는 각종 포스터와 OPL(One Point Lesson) 등이 있지만, 교육 주제는 인화성 물질 취급작업, 섬유 재단기 사용 작업, 분진폭발 등으로 리튬과 같은 금속 화재와는 직접 관련이 없었다.
다만 공단은 홈페이지에 '물반응성 물질(금속류)의 취급 및 저장 안전수칙' 교육 자료를 공개하고 있었지만, 이 자료는 고용허가제(E-9) 인력 송출국 16곳 언어 가운데 어떤 것으로도 번역돼 있지 않았다. 리튬 등 금속류를 취급하는 요령과 안전수칙, 소화방법이 적시된 거의 유일한 자료였지만, 이마저도 이주노동자용이라고 보긴 어려운 셈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소속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정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 적용되면서 사업주의 안전보건교육 실시 의무는 더욱 강조됐다.
하지만 안전보건관리자를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여건을 고려해 정부는 관련 지원 사업들을 전개해왔다. 그 중 하나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을 통한 안전보건 교육자료 제공이다. 공단은 최근 산업현장에서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해 중국, 라오스 등 고용허가제 송출국 16개 언어로 번역된 교육자료도 제공한다고 밝혀왔으나, 이번 참사를 계기로 보완 필요성도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보도자료 발췌이처럼 번역본을 넘어 리튬 등 금속류 화재 관련 안전 가이드라인 자체를 찾기 어렵다 보니 스스로 대응 방안을 마련한 업체도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CBS노컷뉴스 통화에서 "리튬이온 화재가 많았다 보니 사전 예방 차원에서 안전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며 "자생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 증가세와 리튬 배터리 제조업 등 산업 성장 속도에 비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개발 속도는 한참 뒤쳐졌다는 진단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홍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은 이주노동자 안전교육을 할 때, 그 나라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을 데려와 교육하지만, 중소기업은 비교적 그런 식의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특히 파견회사로부터 인력을 도급받는 경우에는 안전교육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해서 요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업주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도 있다"며 "외국인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 등을 고민해야 하지만 법무부와 노동부 등 관련 정부 부처의 관심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리셀은 3개월 전 소방당국이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3동' 공장을 정확히 지목하며 "제품 생산라인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리튬 화재 시 물을 뿌려선 안 된다는 지침도 제시했지만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3동엔 리튬 화재에 대비한 전용 소화장비도 전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주노동자 18명과 한국인 노동자 5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업주의 안전 인식 자체가 바닥이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처음 출근한 작업자들도 볼 수 있게 작업장 곳곳에 비상 대책 매뉴얼을 비치했다"며 "정기적으로 화재가 발생한 환경을 조성해 분말 소화기로 끄는 교육도 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CBS노컷뉴스 통화에서 "사업주에게 안전교육 의무가 있다. (아리셀이)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제로 교육했는지는 파악해야 한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