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화성=박종민 기자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2층 화재 현장에는 계단으로 통하는 출입구 외에 비상구도 한 개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출입구 앞에선 화재가 발생했고, 유일한 비상구는 가벽에 가려져 곧바로 향하기 어려운 구조라 노동자들이 대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6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불이 난 공장 2층에는 계단으로 통하는 비상구 한 개가 있었다. 다만 노동자들이 몰려있던 곳과 비상구 사이에 가벽으로 경계가 있어 노동자들이 곧바로 대피하는데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현장에는 판매용 리튬 배터리 3만 5천여 개가 보관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출입구 앞에 쌓였던 리튬 배터리에서 화재가 처음 발생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소방당국은 노동자들이 출입구 반대 방향으로 대피해 인명피해가 생겼다고 설명했는데, 당시 출입구 앞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결국 두 통로 모두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2층 (작업장) 출입구 앞에서 발화가 됐는데 노동자들이 놀라서 다 막혀 있는 안쪽으로 대피를 했다"며 "대피를 하려면 출입문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안쪽으로 들어가서 짧은 시간에 유독성 연기를 흡입해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작업장에 비상구가 있었다 해도 비상구 앞에 적재물 등이 쌓여 있는 등 사업주가 안전조치 의무를 소홀히 해 인명피해를 키웠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폭발성·발화성·인화성 물질 등으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리튬 등 위험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는 비상구가 한 개 이상 설치돼야 한다.
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화성=박종민 기자샛별 노무사사무소 하은성 노무사는 CBS노컷뉴스 통화에서 "일반적인 건물에서도 비상구 앞에 '비상 셔터가 내려오니까 적재물을 쌓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있다"며 "이런 점들을 지키지 않고 적재물을 쌓게 되면 실질적인 비상구 기능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자 대다수가 (출입구) 반대 방향으로 대피했다면 비상구 위치 등이 제대로 안내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안인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만약 비상구가 막혀 있어 노동자들이 제대로 탈출하지 못했다면 형사처벌 사안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건강연대 유성규 노무사는 "(비상구가 있더라도) 비상구는 항상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을 따져볼 때, 비상사태에 대비한 환기 시설,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한 화재 예방 교육, 대응 매뉴얼 비치 등이 잘 됐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순관 아리셀 대표를 비롯한 업체 관계자들을 입건해 이들의 범죄 혐의 등을 수사할 방침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전날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공장 관계자 등 5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경찰은 소방당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과 함께 합동 감식반을 꾸리고, 정확한 화재 원인 파악에도 나섰다.
전날 합동 감식이 끝난 뒤, 경기남부청 오석봉 과학수사대장은 브리핑에서 "합동감식의 주요 사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발화장소, 화재원인, 단시간에 화재가 확장돼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한 이유"라며 "오늘 감식 내용을 바탕으로 유관기관에서 각자 분석을 진행하고, 더 필요한 사항에 대해 협의해 빠른 시일 내에세 (2차 감식) 실시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