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청. 부산 동구 제공 부산의 한 지자체가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예비비로 피복을 교체하는 등 예산을 쌈짓돈처럼 집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회가 개원 이래 처음으로 예비비 지출과 예결산을 모두 부결시키면서 갈등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25일 취재를 종합하면 동구청은 민방위기본법 시행령과 규칙이 일부 개정되면서 지난해 8월 전 직원의 민방위복을 교체했다. 이 과정에서 구청은 재난·재해 목적 예비비 3800만 원을 사용했다.
예비비는 지자체가 예측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지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제도로, 사전에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진행된 삼보연립아파트 긴급보수공사에도 예비비 3천만 원이 투입됐다. 해당 아파트가 안전 최하위 등급인 E등급을 받은 건 2022년이다.
이 때문에 의회에서는 구청이 사업 필요성을 충분히 미리 인식해 본예산에 반영할 수 있었지만,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손쉽게 예산을 쓰기 위해 이를 예비비로 편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동구의회는 예비비가 원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됐다고 판단해 지난 18일 제323회 의회 정례회 1차 예결 특위에서 '2023년도 예비비 지출 승인안'을 이례적으로 부결시켰다.
예산결산특별위원 6명은 만장일치로 부결을 결정했다. 이는 의회 개원 이래 첫 사례다.
부산 동구의회. 송호재 기자 예비비 외에 애초 의회에서 승인을 내준 '세입·세출 결산 승인안'도 부결됐다. 의회는 구청이 보조금을 지급한 후 사후 확인을 제대로 거치지 않거나 예산을 목적에 맞지 않게 썼다고 보고 있다.
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지역에서 환경정화활동 등을 하는 관변단체인 바르게살기운동 동구협의회는 경남 하동으로 수련대회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구청은 3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고 협의회는 차량대여비와 식대 등에 보조금을 사용했다.
애초 제출된 계획서에는 90명이 참석했고 버스 2대가 이동했다고 기재돼 있다. 하지만 의회는 활동사진 등을 토대로 볼 때 90명이 참석했다고 보기 어렵고 버스도 1대만 이동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구청이 지난해 5월 동부경찰서와 자율방범대 발대식 행사를 진행하면서 예산 450만 원을 들여 기념 수건을 제작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사업은 사업계획서상에 '동구 지역치안협의회 범죄예방 활동'으로 기재됐으나 의회는 기념품 제작을 범죄 예방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동구의회 이희자 의원은 "숙고하지 않은 예비비 집행과 예산이 당초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된 사례가 군데군데 보였다"면서 "그동안의 경우 이미 쓴 돈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맥락에서 의원들이 간단히 의견을 내고 넘어갔지만 이번 심사에서는 지극히 이례적인 결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김희재 의원도 "민방위복 구입이 예비비로 집행할 만큼 급한 사안인가 하는 지적도 있었고 본예산에 충분히 올릴 수 있는 사안인데 이를 예비비로 처리한 부분도 있었다"면서 "좀 더 엄격하게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의원들이 부결 결정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청은 애초 계획에 없던 예산이 필요해졌고 신속한 진행을 위해 예비비로 처리한 부분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또 추후 예비비 투입 사업 내용을 보다 면밀히 살핀다는 입장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민방위복 개편이 결정되면서 애초 계획에 없던 예산이 필요했고, 예산을 편성해 승인받다 보면 시간이 걸리다 보니 예비비로 처리했다"며 "아파트 긴급보수공사의 경우 여러 부서끼리 협업회의를 진행하고 현장 점검도 거치다 보니 2022년 말 본예산에 반영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수련대회 보조금 지급 건은 협의회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제대로 소명이 안 될 경우 감사까지 진행할 방침"이라면서 "의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예비비 사용 시 내용을 보다 꼼꼼하게 살펴 추후에는 심사가 부결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