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접경지역인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금2리. 고무성 기자"여기는 대북과 대남 확성기 방송이 시끄럽게 들리는 곳이라 틀게 되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고 전쟁이 날까 봐 불안하지."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금2리.
오금리는 북한과 약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과 함께 북한의 확성기가 모두 철거되기 전까지는 방송이 오금리까지 또렷하게 들렸다고 한다.
특히, 대남 확성기는 출력을 최대로 높이면 주간에는 10km, 야간에는 24km 떨어진 곳까지 소리가 들린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주체사상을 자랑했고, 우리나라는 뉴스와 음악을 많이 틀었다고 한다.
이날 찾은 오금2리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마을회관을 들어서자, 농사일을 마치고 더위를 피해 쉬고 있는 할머니들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60대 3명과 80대 1명 등 4명은 우리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검토에 대해 기자가 묻자, 한목소리로 "안 돼, 안 돼, 그거 하면 안 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탈북단체 대표부터 북한에 대북전단을 날리지 못하게 잡아야 한다"면서 "그 사람으로 인해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어 "탈북단체가 먼저 대북전단을 날리니까 이번에 북한이 오물 풍선 수백개를 날린 것"이라며 "북한은 완전히 사상이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80대 할머니는 "6·25전쟁을 안 겪은 사람들은 모른다"며 "다시는 전쟁을 안 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에서 남쪽을 향해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공격을 한 지난 1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본 북한 모습. 연합뉴스같은 날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는 북한의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에 이미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어민 박태원(64)씨는 "바다에 나가면 GPS상에 선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월선한 것처럼 표시돼 조업을 할 수 없다"며 "조업철에 남북관계 악화로 어민과 주민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박씨는 북한의 GPS 전파 교란이 시작된 지난달 29일부터 전날까지 조업을 나갔지만 허탕만 쳤다. 앞서 북한은 서북도서 일대를 향해 GPS 전파 교란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GPS 위성 신호보다 강한 교란 전파를 발사해 수신기를 마비시키는 이른바 재밍(Jamming·방해 신호) 방식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파 교란이 이어지면 어선들이 어장 위치를 찾을 수 없어 조업뿐만 아니라 자칫 NLL 북쪽으로 넘어가는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박씨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당장 생명 안전 위협과 생계활동도 할 수 없게 된다"며 "남북이 적대 행위를 멈추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북한이 지난달 말부터 대규모 '오물 풍선' 테러와 GPS 전파 교란 공격을 이어가는 등 도발 전술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도 강경 대응하기로 하면서 접경지역 주민들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힘써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대통령실. 연합뉴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8일부터 남쪽으로 오물풍선을 보내는 등 본격적인 대남도발에 나섰다. 북한이 지난달 28일부터 남쪽으로 살포한 오물풍선은 1천여개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를 열어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안보실은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효력 정지 기한을 뒀지만 남북 관계가 진전될 기미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폐기'로 해석된다.
정부의 이번 군사합의 효력 정지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군은 각종 군사훈련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구체적으로 군은 군사분계선에서 5km 내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이 가능해진다. 해상에서는 접경 수역에서 포사격, 해상 기동훈련 등을 할 수 있다.
당장 합동참모본부는 4일 서해 해상사격훈련에 대한 항행경보를 내리면서 해상군사훈련을 예고했다.
남북이 갈등국면에 접어들자 접경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군사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평화와 연대를 위한 접경지역 주민·종교·시민사회 연석회의'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접경지역 충돌 위기가 곡조되고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이 위협받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며 "서로를 자극하는 적대행위를 즉각 멈추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