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요? 심심하니 사람 구경이나…" 홀로, 가난한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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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구의 19%가 노인
이들 가운데 30%는 '독거노인'
상당수 '가난한 노년'으로 파악
"'고독 극복'도 사회적 지원 필요"

어버이날 전날인 7일 서울 종로구 무료급식소 앞을 한 노인이 배회하고 있다. 나채영 기자어버이날 전날인 7일 서울 종로구 무료급식소 앞을 한 노인이 배회하고 있다. 나채영 기자
"어버이날에는 심심하니까 안국동 복지관에 가서 사람 구경하려고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료 급식소 앞에서 만난 이모(92)씨는 '내일 계획이 뭐냐'고 묻자 이 같이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이씨는 어버이날에도 누구 하나 찾아오는 이 없는 독거노인이다. 2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50대 딸 둘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이씨는 도봉구 7평짜리 집에서 홀로 TV를 보는 것보다 사람 구경할 수 있는 복지관이 좋다며 "춤추는 것도 배우고, 장기도 두고, 신문도, 바둑도 둘 수 있다"고 했다.

매일 오전 6시 30분에 맞춰 서서울어르신복지관에 출근도장 찍듯 오는 강모(97)씨는 지난 20년 동안 늘 그래왔던 대로 올해 어버이날도 이곳에서 보낼 예정이다. 강씨에게 어버이날은 10평 남짓 월세방을 나와 복지관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이다. 강씨는 "(어버이날) 가정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마음이 서글퍼져서 좋은 것만 생각하려고 한다"며 "이제 내가 (하늘나라로) 갈 때가 됐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강씨는 1995년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은 이후로 하나 뿐인 외아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그는 "내가 돈이라도 많아서 도와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며 "기대를 아예 안 하려고 한다. 그냥 잊어버리려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고쳐 썼다.

노인 10명 중 3명 '독거'…상당수는 '가난한 노년'


어버이날 곳곳에서 보이는 훈훈한 풍경에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이들처럼 홀로 쓸쓸하게 하루를 보내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인구 고령화 흐름 속에서 전체 인구의 약 20%가 65세 이상 노인이고, 이들 가운데 약 30%가 홀로 사는 것으로 집계되는 만큼 독거노인들의 생활상에 대한 촘촘한 파악과 맞춤형 관리 등 사회안전망 강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은 2000년도에 337만 2천 명으로 300만 명대였으나, 2017년 700만 명대, 2020년 800만 명대로 늘더니 2022년 처음으로 900만 명대까지 늘어 올해 1천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지난달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는 991만 3817명으로 총 인구수(5128만 5153명)의 19.3%에 달한다. 노인이 세대주인 1인 세대수는 287만 7283세대로, 전체 노인 인구수에서의 비중은 29%로 나타났다. 노인 10명 가운데 3명은 홀로 사는 셈이다.

이들 독거노인 상당수는 '가난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 결과 2022년 말 기준 가구주가 65세 이상 노인이고, 가구원이 1명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57만 1천 원이었다. 2명 이상 함께 사는 노인 가구 월평균 소득(375만 7000원)의 42%에 불과한 수준이다. 2022년 기준 독거노인 10명 가운데 7명(72.1%)은 빈곤 상태라는 내용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도 있다.

관리 강화에도 '사각지대'…"취약층 발굴 관건, 외로움 극복도 지원해야"


이렇다보니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도 민·관 협력과 돌봄 로봇 등 스마트 기술까지 동원해 관리·지원망을 강화해나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의 안타까운 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선 혼자 살던 70대 노인이 폐업 모텔에서 숨진 지 2년여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 행정당국은 사망 사실을 모른 채 장기간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매달 약 70만 원씩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지자체와 협력해 취약 1인 가구 등 고위험 가구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사회보장급여 수급자에 대한 사후관리체계를 정비하겠다"며 "고독사 위기를 사전 포착해 관리하기 위한 고독사 예방 보완대책도 연중 마련하여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발표한 계획에 근거해 이·통·반장 등 지역 주민이나 부동산중개업소와 같은 지역 밀착형 상점을 '고독사 예방 게이트키퍼'로 양성하고 다세대 주택, 고시원 밀집 지역 등 고독사 취약지역 발굴을 위한 각종 대책을 추진 중이었다.

결국 안전망 강화의 관건은 취약 독거노인 '발굴'에 있는 만큼, 예산과 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허준수 교수는 "수면에 드러난 독거노인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책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는데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독거노인들 같은 경우에는 전혀 공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다"며 "다각적인 차원에서 위험을 상시로 파악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약 독거노인 발굴 후엔 사회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방식의 지원 접근법도 폭넓게 고려돼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김영선 교수는 "독거노인 지원 범위가 소득 뿐 아니라 외로움 극복 등 심리 지원으로도 확대돼야 한다"며 "사회적 고립이나 소외감 등은 노인에게 매우 큰 문제"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영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외로움부'를 신설해 사회적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약을 먹으라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게 하는 하나의 중재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며 "고독감을 느끼는 노인들의 정책적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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