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침수 마을 구조. 경남도청 제공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왜 그렇게 인명 피해가 많이 났나요?"(경남지사)
"지금 이 건하고 유사합니다."(환경산림국장)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점검 안 하고 있다가 이제 합천에 문제 생기니까 점검한다고 하잖아요."(경남지사)
"죄송합니다."(환경산림국장)
"물이 잘 흐르도록 한 게 하천인데, 그 목적을 무시하고 완전히 둑을 쌓아 버리면 물이 어디로 가라는 거예요? 그런 허가를 내주는 관청이 어디 있어요?"(경남지사)어린이날 연휴인 5일 내린 비로 경남 합천군 2개 마을이 물에 잠긴 데 대해 7일 열린 경상남도 확대간부회의에서 박완수 지사와 담당 국장이 나눈 대화다.
박 지사가 화가 단단히 난 이유는 비가 더 많이 내렸거나 조금만 구조가 늦었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것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탓이다. 게다가 한밤중에 합천 대양면 양산·신거마을 일대가 물이 차올라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방당국에 구조 요청이 온 시간은 5일 밤 11시 39분. 거의 자정 무렵에 합천119 안전센터 선착대가 먼저 도착했다.
물은 어른 가슴 높이까지 차올랐고, 마을 주민 대부분이 깜깜한 밤에 옥상과 지붕에 올라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다. 소방대원들은 보트를 타고 주민들을 구조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은 직접 업고 나와야만 했다.
비닐하우스 위에서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외국인 노동자 2명을 구출하기 위해 소방대원들은 헤엄쳐 건너가 이들을 구출했다.
물에 잠김 합천 마을. 경남도청 제공
비가 많이 내린 것도 아닌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물난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방대원들이 집마다 두 번에 걸쳐 수색을 하는 등 마을 주민 40명을 무사히 구조했다.
놀란 80대 할머니와 투석 환자 등 2명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 32명은 아직도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5일 하루 합천에 내린 비의 양은 59.6mm. 남해·하동은 200mm가 넘는 비가 내렸고, 도내 평균 강수량의 평균인 86.1mm보다 적다.
지난해 7월 청주 오송읍 오송역 인근 궁평2지하차도가 집중호우에 따른 인근 하천 범람으로 침수됐다. 이 사고로 차량 17대가 물에 잠기고, 14명이 숨졌다. 사고 당일 조치 미흡과 제방공사 부실이 드러났다. 인재다.
경남도의 담당 국장이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유사하다고 한 것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고속국도 14호선 함양~창녕 건설 공사 현장이 침수의 원인이라는 것을 지목한 것이다.
박 지사도, 마을 주민들도 같은 생각이다. 오죽했으면 박 지사가 "이런 (점용) 허가를 내주는 관청이 어디 있냐"고 호통을 쳤을 만큼 시공사의 '집중호우'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시공사 측은 직경 1m짜리 수관 5개만 설치하고 60m 길이의 하천을 막아 임시도로(가도)를 냈다. 교각 상판을 얹기 위해 필요한 작업으로 보인다. 상류에서 흘러온 많은 물이 임시도로에 막혔고, 결국 범람으로 이어졌다.
합천군은 집중호우를 우려해 지난 3월 '임시 성토한 가도 구간과 유수 흐름을 방해하는 가시설물에 대해 우수기 전 반드시 철거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1년 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농경지 침수가 발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박완수 경남지사가 지적한 하천 물 흐름을 막은 임시도로(가도) 설치 현장. 독자 제공 아직 우수기는 아니지만, 기상 이변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비가 점점 자주 내리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꺼번에 비가 쏟아지는 상황을 예측하고 대처했어야 했다. 수관 역시 떠내려온 나뭇가지와 부유물에 막혀 버렸다.
박완수 지사는 하천공사의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할 것을 도 감사위원회에 지시했다. 하천 임시도로는 합천군이 경남도 사무위임조례에 근거해 공사 하천 점용허가를 내줬다.
박 지사는 또, "우수기 전에 물 흐름에 지장을 주는 하천공사가 있는지 점검하고 예방하라"고 강조했다.
도는 재해구호기금을 합천군에 투입해 피해 복구에 나설 계획이다. 하천 점용 등 물 흐름에 지장을 주는 시설 등에 대한 전수 점검을 벌여 문제가 있는 곳은 우수기 전에 개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