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시네마 달, 연분홍프로덕션 제공※ 스포일러 주의2014년 4월 16일 이후 10년, 제삼자의 프레임 안에서 미처 전하지 못했던 그러나 처음부터 한결같이 목소리 높였던 세월호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가 한 피해자 아버지의 기록을 통해 드디어 관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바람은 단 하나였다. 바로 '진실 규명'. 그리고 이를 통해 바란 미래 역시 오로지 하나였다. 다름 아닌 '안전 사회'. 그리고 그들의 바람을 더 이상 '그들' 안에 둘 것이 아니라 '우리'로 다시금 옮겨와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들이 겪은 그날의 진실을 알아야 했기에 가족들과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외쳤다. 작은 희망도 잠시, 결국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
10년의 시간, 3654일, 5천 개의 영상들이 쌓이는 긴 세월 동안 또 다른 비극적인 참사들이 이어졌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바람은 더욱 간절해졌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하기에 그들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감독 문종택, 김환태)을 공동 연출한 문종택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딸 지성을 잃은 아버지다. 평범한 시민이던 그는 2014년 여름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거의 모든 일정을 카메라로 기록해 왔다. 그리고 다른 누구의 시선도 아닌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자 아버지의 시선으로 세월호 10년을 '바람의 세월'에 압축했다.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시네마 달, 연분홍프로덕션 제공무엇보다 '바람의 세월'은 그동안 제삼자의 시선, 제3의 프레임 안에서 이야기해 온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당사자이자 그 중심에 있는 유가족이 직접 감독이 되어 이야기하고, 또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 영화다.
영화는 '바람의 세월'이란 제목처럼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바람으로 10년의 세월을 견뎌 온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당한 이후 전원 구조 오보를 시작으로 세월호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언론과 정부라는 제삼자의 시선을 통해 왜곡되고 가려졌다.
그리고 결국 제삼자의 시선, 제3의 프레임은 세월호 가족들에게 불명예와 상처를 남기고, 그토록 원했던 진실규명조차도 이뤄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월호가 10주기인 2024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시네마 달, 연분홍프로덕션 제공누군가는 이미 진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느냐 물을 수 있지만, 사실 제대로 밝혀진 사실은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희생됐다는 것 외에는 없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은 봉인됐고, 해경과 선원들의 의문의 행동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세월호 참사를 위한 조사단 구성과 조사조차 늘 반쪽짜리였고, 책임지지 않은 정부의 행태에 진실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고 있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과정과 진정한 바람을 끌어냈다. 피해자 가족이 찍고, 피해자 가족이 이야기함으로써 드디어 '진짜' 이야기를 드러냈다. 배·보상 문제, 정치로 끌고 온 세월호 등 온갖 억측과 누명, 음모와 정쟁에 둘러싸인 채 진짜 목소리가 가려졌던 세월호 참사가 문종택 감독을 통해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온 셈이다.
제삼자의 시선이 아닌 피해자 가족의 시선에서 바라본 정부와 언론은 무책임하고, 잔인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을 마주해보자는 것이지만, 정부와 언론은 이를 왜곡할 뿐이다. 가족들의 목소리는 가려지고 왜곡되며 여론을 흔든다. 정부가 말하는 거짓, 언론의 보도는 어느덧 유가족의 진실을 거짓으로 뒤덮는다.
정부는 피해자 가족들 사이를 갈라치기하고, 결국에는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일반 국민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는다. 이 과정을 지켜보자면,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고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시네마 달, 연분홍프로덕션 제공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단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이태원 참사가 등장하는데, 세월호 가족들이 원하는 건 국가적인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사회로 향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반복되는 참사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진짜 바람이다. 그렇기에 '바람의 세월'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바람이기도 하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여전히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로 반복되고 있듯이 세월호 참사도 10년을 지나도록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진실규명을 위해 사회 안으로, 정치 안으로 힘든 발걸음을 내디딘 세월호 가족들이 건넨 손을 다시금 잡아야 한다. 이제는 10년의 '바람의 세월'을 우리가 이어받아 나아가야 할 차례다.
'바람의 세월'을 두고 문종택 감독은 마음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세월호 참사일부터 3654일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과정에서 애써 담담해지고자 한 문종택 감독의 목소리로 큰 역할을 한다.
피해자 가족의 모습, 담담한 목소리가 아픈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사회적인 재난임에도 이를 부정하려는 정부가,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했을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세월호와 피해자 가족을 부정하고 낙인찍어 몰아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시네마 달, 연분홍프로덕션 제공기록자로 선 문종태 감독의 모습은 늘 프레임 바깥에 위치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장을 지켜왔지만, 그는 항상 카메라 뒤편에서 누구보다 힘든 싸움을 해왔다. 기록 속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기록 속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런 그가 '바람의 세월'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등장할 수 있는 순간은 '목소리'다.
때론 담담하기에 더 아픈 게 있다. 문 감독은 기록자이자 당사자로서, 아버지로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무수히 순간을 맞이해왔다. 그런 그가 오히려 내레이션을 통해서는 담담하려고 하며 참사의 기록, 세월호 가족들의 기록을 짚어나간다. 늘 프레임 바깥에 위치해 있던 그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을 때 더 담담해질 수밖에 없었음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동시에 더욱 또렷이 마음으로 다가온다.
또 하나, 카메라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인상적인 방식 중 하나는 흔들리는 카메라다. 기록자이자 아버지로서 현장을 누빈 문 감독의 카메라는 늘 흔들린다. 그중에서도 세월호 선체 안에서 마치 파도에 흔들리듯 좌우로 움직이는 화면은 마치 그날 세월호 안에 있는 느낌을 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진실이자 단원고 아이들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그날에 발 들인 느낌을 준다. 그 어지럽게 흔들리는 속에서 관객들이 '바람의 세월'이 전하고자 한 감독과 가족들의 메시지에 온 마음으로 다가와달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출렁이는 파도로부터 진실도, 아이들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우리'가 손 내밀고 연대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마음으로 담아온 관객이라면 '바람의 세월'은 반드시 엔딩 크레딧을 마지막까지 확인해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 속에 떠난 이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던 이의 이름이 하나하나 스크린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을 끝까지 마주하는 것, 이는 '바람의 세월'을 보러 온,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이기 때문이다.
104분 상영, 4월 3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바람의 세월' 메인 포스터. 시네마 달, 연분홍프로덕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