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싱어송라이터 서리의 미니 2집 '페이크 해피' 인터뷰가 열렸다. 레이블사유 제공싱어송라이터 서리는 K팝 팬들에게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타이틀곡 '제로 바이 원 러브송'(0X1=LOVESONG)을 피처링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글로벌 미디어 회사이자 레이블인 88라이징(88rising)에 합류해 언택트 자선 콘서트에 출연했고, 기리보이와 '긴 밤'(The Long Night)이라는 곡을 협업하기도 했다. 잠시 소속사 없이 지낼 때도 '도적: 칼의 소리' '이두나!' '사랑한다고 말해줘' 등 다양한 드라마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좋아했고 꽤 빨리 '가수'라는 꿈을 키웠던 서리는 고등학생 때 진로 상담을 하고서야 "도저히 제가 하고 싶은 게 음악밖에 없는 것"을 깨닫고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다"라고 느꼈다. "바늘구멍보다 좁은 길"을 가려는 딸을, 부모님은 염려하며 반대했다. '진짜 하고 싶은 건지, 스치는 바람인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스스로를 돌아보고 열정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서리는 "어필할 수 있는 노력을 많이" 해서 가수가 됐다.
2020년 정식 데뷔한 서리가 지난 21일 두 번째 미니앨범 '페이크 해피'(Fake Happy)를 냈다. 주로 싱글 위주로 활동한 그가 미니앨범을 내는 건 약 4년 만이다. 2023년 초부터 '미니앨범을 내고 싶다'고 바랐고, 약 1년 만에 실현했다. CBS노컷뉴스는 앨범 발매 하루 전인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서리에게 '페이크 해피' 제작기를 들어보았다.
원래 이번 앨범은 "조금 더 추울 때" 내려고 했다. 디벨롭(발전)을 거듭하다 보니 조금 늦어졌다. 시간 여유가 생긴 건 다행이었다.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좀 더 차분하게 검토하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꾸준히 습작은 해 왔고, 지금과 같은 구성으로 제대로 진행한 것은 반년 정도다. 서리는 "굉장히 성장할 기회였다. 하나의 산을 넘고 나면 성장하게 되지 않나. 저한테도 그런 의미가 있던 작업"이라고 돌아봤다.
원래 이번 앨범명으로 고려하던 이름은 '앤드 미'였다. 하지만 '페이크 해피'로 바뀌면서 네 번째 트랙의 제목이 되었다. 레이블사유 제공동명의 타이틀곡을 비롯해 '킬 더 데이'(Kill the day) '브로큰'(Broken) '앤드 미'(and Me)까지, 앨범 수록곡 전 곡이 '록'을 기반으로 한다. 어릴 때 해외 록 뮤지션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음악을 많이 들었고, 그 후로는 라우브(Lauv)나 트로이 시반(Troye Sivan) 음악을 들었다. 초창기에 신시사이저가 많이 들어간 일렉트로닉 팝 계열의 몽환적인 음악을 했던 데는 라우브와 트로이 시반 영향이 컸다.
물론 지금도 꾸준히 에이브릴 라빈 음악을 듣는다. "약간 회상에 빠지듯." 서리는 "비교적 최근에 팝 펑크 붐이 불면서 저도 다시 끓어오르더라. 나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록적인 느낌을 녹여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그런 부분이 많이 들어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앨범 정식 발매에 앞서 '브로큰'(Broken)을 선공개했다.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잘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본인과 그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다는 서리는 "그 마음이 고이고 고이면 스스로가 되게 작아진 느낌이 들더라. 세게 얘기하면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는, 작았던 마음을 마주해야 할 것 같았다"라고 운을 뗐다.
나의 '작은 마음'을 언제쯤 마주할 수 있을까 예전부터 고민하다가 "스스로를 솔직하게, 정말 꾸밈없이 내보이고 싶다"는 욕구를 앞세워 '브로큰'이라는 곡을 작업하게 됐다. 가사 쓰는 데 가장 오래 걸렸던 곡이기도 하다. 서리는 "저한테도, 내용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크다"라며 "마주하기 싫었던 부분을 마주함으로써 하나의 성장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많이 했다"라고 밝혔다.
서리의 새 앨범명과 타이틀곡 제목 모두 '페이크 해피'다. 레이블사유 제공숨기고 싶은 내 이야기를 꺼내 음악으로 만드는 데 주저함은 없었을까. 서리는 "처음 데뷔하고 너무 좋은 동시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스스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게 두렵기도 하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다 보니 점점 '나는 뭐지?' 생각을 많이 했다"라며 "노래를 듣고 걱정하는 분들도 좀 있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서 팬분들에게 '걱정 안 하셔도 된다'라고 하고 싶다"라고 웃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고 했을 때 이렇게 약한, 나약한 부분을 보여주는 게 과연 옳을까 이런 생각도 했어요. 가사를 쓸 때 어디까지, 어떻게 쓸 것인지, 포장을 할 것인가 고민하기도 했고요. 생각보다 많은 아티스트가 자기 얘기를 하더라고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안티히어로'(Anti Hero)에서 자기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잖아요. 그걸 보고 더 멋있다고 생각하지 '저 사람 뭐야? 멋없다' 이런 생각 안 하듯이, 저도 용기를 내서 걱정을 그만하고 솔직하게 가 보자는 생각이었어요."첫 번째 트랙 '킬 더 데이'가 서리가 말한 '밝은 곡'이다. 가장 록적인 곡이기도 하다. "가벼운 것에서 시작해서 점점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는" 트랙 리스트를 짠 건, "바깥에서부터 제 내면으로 걸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가장 가볍고 밝은 노래"인 '킬 더 데이'를 앨범 첫머리에 두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혹은 TV를 보면서 '하루를 날릴 때'를 소재로 삼았다. '하루'를 의인화해서 가사로 표현했다. 한편으로는 '킬 더 데이'가 해외에서는 '하루를 죽여놨다', 즉 '아주 끝내주는 하루를 보냈다'라는 상반된 의미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서리는 "처음에는 '하루를 날렸다'라고 시작하지만 후렴에서는 '남은 시간만이라도 기깔나게 보낼 거야'라고 풀어봤다"라고 전했다.
처음 앨범명 후보이기도 했던 마지막 곡 '앤드 미'는 지난해 습작으로 쓴 곡 중 하나였다. 우선 이번 앨범의 분위기에 잘 어울릴 것 같았고, 주변에 들려주었을 때도 "굉장히 신선하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마디로 '군중 속의 외로움'을 표현한 노래다.
서리의 미니 2집 '페이크 해피'는 지난 21일 저녁 6시 발매됐다. 레이블사유 제공사람이 많은 곳에서 오히려 고립되는 느낌이 들고, 소수로 있을 때 강한 편이라는 서리는 "그래서인지 이 노래가 잘 써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 이유 없이 외로울 때가 있다. 갑자기 너무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데, (노래 속) 화자는 사람 많은 곳을 다니면서 외로움을 덜어내려고 한다. 근데 거기서 더 큰 외로움을 느껴서 화장실에서 자기 얼굴 보며 얘기하는 것처럼 써 봤다"라고 설명했다.
4년 만에 미니앨범을 내면서, 서리는 새삼 목소리의 변화를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데뷔 앨범은 풋풋하게 느껴지더라"라며 웃었다. 인터뷰를 해 보니, 서리는 노래하는 목소리와 말하는 목소리가 사뭇 다른 스타일이었다. 본인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서리는 "많은 분들이 제 목소리에서 편안함을 느끼시는 것 같아서 되게 감사하게 느껴진다. 팬분들이 편지 형식으로 써 주신 댓글을 볼 때도 '잠을 못 잤는데 노래를 듣고 잠을 자게 됐다' '릴랙스하는 데 도움이 됐다'라고 해 주실 때 오히려 제가 큰 위안을 받는다. 그런 게 제 목소리 장점인 것 같고 유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다양한 장르도 어울릴 수 있게 제 목소리가 많이 잘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여러 가지로 나름 시도를 해 봤다. 편안하기만 한 음악만 하고 싶진 않다. '페어리 테일'(Fairy tale)과 '킬 더 데이'가 보컬적으로 변화 주려고 노력한 곡"이라고 답했다.
이번 앨범 '페이크 해피'는 독특하게 CD가 아닌 LP로 나온다. 회사 제안이었다. 서리는 "예전에 팬분이 제 음악을 LP에 담아 보내주신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이 난다. 그분이 보시면 좋아하시지 않을까"라며 "저도 LP 내는 건 처음이라 굉장히 설렌다"라고 밝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