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제구 국민의힘 김희정 후보(왼쪽), 진보당 노정현 후보(오른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제공"윤석열 정부가 싫든 좋든 마누라 믿듯 믿어 줄란다!"
"당을 보고 뽑으면 되나? 사람을 보고 뽑아야지!"22일 오전 부산 연제구 연산동 한 부동산에서는 총선을 화두로 한바탕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공인중개사 김모(50대·남)씨가 "지금 정부가 못하는 건 맞지만, 더 잘하라고 응원해야 한다. 마누라 믿듯이 싫은 일이 있어도 도와줘야지 잘못한다고 버릴 수 없잖아"라며 "한나라당 때부터 지지했으니 이번에도 국민의힘 김희정이다. 당을 보고 찍어야지, 사람 보고 하면 투표하러 안 간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 공인중개사 심모(60대·여)씨가 "완전 옛날 마인드"라며 지적하고 나섰다. 심씨는 "총선에서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할 사람을 뽑아야지, 당을 보고 뽑으면 되나"라며 "(국민의힘) 김희정, (진보당) 노정현 두 후보가 장단점이 있다. 김 후보는 경험이 있으니 더 잘하려고 노력할 거고, 노 후보는 초선이니 더 열심히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최근 이 지역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진보당 노정현 후보로 옮겨갔다. 김씨는 "노정현은 세력이 약한데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겠느냐.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심씨는 "노정현이 아무 목소리도 못 낼 사람은 아니다. 특히 이 지역을 위해서는 많이 목소리 낼 사람"이라고 상반된 평가를 했다.
22일 부산 연제구 한 과일가게 앞에 과일이 진열돼 있다. 박진홍 기자인근 전통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대체로 현 정부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채소 가게 주인 이모(50대·여)씨는 "윤석열 대통령 모든 게 별로다. 김건희 여사 이슈도 그렇고 경제도 어렵고 특히 너무 독재다.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며 "옛날에는 군사 독재였다면 지금은 검사 독재다. 민주주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20년간 식당을 운영해 온 배모(60·남)씨는 "요즘 시장이 너무 어려운데, 여기 상인들은 대부분 노정현 후보를 찍는다고 한다. 손님들도 대부분 마찬가지 반응"이라며 "지역을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에 해 온 사람들(국회의원들)이 너무 책임감 없이 하고 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10 총선을 코앞에 둔 부산 연제구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부산에서 행정·사법 기관이 밀집한 이곳은 단일 선거구가 된 1996년 제15대부터 2012년 제19대 총선까지 무난히 보수 정당이 승리한 지역이다.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당선되며 파란을 일으켰지만, 제21대에는 다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이주환 의원이 당선돼 보수 텃밭으로 돌아왔다는 평이 나왔다.
이번 총선은 3파전으로 출발했다. 국민의힘은 이 지역에서 제17·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희정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성문 전 연제구청장이 주자로 나섰고, 진보당은 연제구에서 재선 구의원을 지낸 노정현 부산시당위원장을 내세웠다.
22일 부산 연제구 한 횡단보도에 국민의힘이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진홍 기자총선 레이스 초기만 해도 연제구는 격전지로는 분류되지 않았다. 세간의 시선은 국민의힘 김희정 후보와 이주환 의원 간 경선 결과와 그에 따른 후폭풍에 쏠렸다. 그랬던 연제구는 민주당과 진보당이 야권단일화 경선에 들어가면서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민주당 이성문 후보와 진보당 노정현 후보는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단일화 경선에 나섰고, 그 결과 노 후보가 승리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변은 이어지고 있다. 부산일보와 부산MBC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 18~19일 부산 연제구 거주 만 18세 이상 503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진보당 노정현 후보는 47.6%, 국민의힘 김희정 후보는 38.3% 지지율을 기록했다.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9.3%p로 오차범위 밖에 있다.
민주당 지지층의 79.2%, 중도층 53.6%가 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90.3%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보수층 지지는 82.4%에 그쳤다. 노 후보는 야권단일화 경선 승리에 대한 '컨벤션 효과'가 이어지고 있고, 김 후보는 이주환 의원과의 경선 과정에서 생긴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2일 부산 연제구 한 횡단보도에 진보당이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진홍 기자이에 대해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차재권 교수는 "일시적인 컨벤션 효과라고 보기에는 노 후보가 가진 정치적 위상이 그렇게 크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연제구가 보수 표심이 강한 지역이지만 보이지 않는 '정권 심판' 심리가 매우 큰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반면 국민의힘 지지 세력은 전반적으로 조직적 결합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김 후보에 대한 지역 내 부정적 정서가 광범위하게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라며 "기본적으로 정권 심판 심리가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상태여서, 웬만한 무기로는 선거판을 흔들기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 기사 본문에 인용한 여론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무선 자동응답(ARS) 조사로 진행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