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응급실 병상 현황. 보건복지부 응급의료포털 캡처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 후 맞는 첫 주말.
24일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은 전공의들의 무더기 이탈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줄어 비교적 한산했지만, 응급실은 위태로운 상태로 '빨간불'이 켜졌다. 응급의료포털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서울대병원 응급실 일반 병상 26개는 모두 차 여유 병상이 없다. 환자 4명은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대기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실 앞. 정진원 수습기자
응급실 앞에서 만난 한 119구급대원은 의료 현장의 '인력 공백'으로 응급실 앞 대기가 길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길 때는 6시간에서 12시간도 기다린다"며 심상치 않은 상황을 전했다.
암 환자인 아버지가 코로나19 진단을 받아 급히 응급실을 찾은 아들 정광채(22)씨는"병원에 연락할 때부터 '지금 파업 때문에 (병원) 안에 사람(의사)이 별로 없다. 오셔도 많이 대기해야 할 거다'라고 미리 고지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의료계의) 토론도 봤는데 속이 터진다"며 "(의사 측이) '송구스럽지만, 자기네들의 목소리를 낼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라고 하는데
보호자 입장에서는 의사들 스스로 환자를 돈벌이로 본다는 걸 인정하는 것밖에 안 된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살려야 된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병원이 비어 대기 시간은 적은 것 같다"고 했다.
한 의료진은 "(전공의) 선생님이 없다고 TV에서 자꾸 얘기하지 않느냐. 전공의들이 퇴사하고 파업했다고 하니 환자들이 줄 수밖에 없다"면서도 "
(전공의) 3명, 4명이 하던 일을 교수님 혼자서 하고 있어 대기 시간이 생긴다"며 실제 진료를 마치기까진 시간이 지체된다고 말했다.
정부와 의사들의 '강대강 대치' 속 마음을 졸이는 건 환자들이다.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김모(66)씨는 "
골수이식을 원래 3월 중에 하기로 돼 있었는데 지금 무기한 연기됐다"며 "골수 이식을 해야만 완치되는 병이라 그것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상심이 크다"고 낙담했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경기도 광주에서 2시간이 걸려 병원을 찾은 정호택(80)씨는 "파업이다 뭐다 실력 행사만 해버린다면
당장 아픈 사람은 어떡하느냐. 죽으라는 얘기 하고 똑같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신우암 환자인 아버지의 휠체어를 끌고 있던 남정훈(53)씨는 "입원 환자 수가 40% 정도 줄었다. 병동 환자 수가 많이 빠져나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공의들이 빠져나가면서 병원들은 신규입원을 줄이고 퇴원을 앞당기고 있다. 그는 "의사들이 환자를 대할 때 소명 의식을 갖고 하는 건지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박인 수습기자
특히 전임의들과 4년 차 전공의, 교수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단 관측이 나오면서 의료대란으로 이어질까 환자들의 불안은 심해지고 있다. 이들은 현재 외래 진료와 수술, 입원 환자 관리 등을 도맡으며, 병원 현장의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병원 교수들이 구성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이번 주말이 (의료대란) 사태의 골든타임"이라며 정부에 "전공의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이들과 행동을 같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폐암 말기 환자인 최상희씨는 "교수들까지 동참하는 건 말이 안된다. 우리 같은 암환자들 수술은 못한다고 할 망정 검사나 나머지 (진료는) 할 수 있게끔 해야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음 달로 잡힌 병원 진료와 항암 치료가 미뤄질까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항암은 제때 못 받으면 (치료가) 무효가 돼 버리는 거다. 항암을 할 수 있을지, 잘 되면 좋겠다"고 답답해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22일 보건의료재난 위기 경보를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올렸다.
정부와 의사들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의사 증원 반대 집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