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진원 수습기자"심전도로 신장 기능 체크하는 일도 전공의들이 해야 되는데 지금 한 명밖에 없대요. 그래서 1시간을 기다렸어요."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대형 병원의 진료 차질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병원들이 전공의의 빈 자리에 전임의와 교수를 배치해 입원환자 관리와 응급상황에 대비하고 있지만, 주말을 앞두고 환자와 보호자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23일 오전 30대 만성 신부전 환자인 아들의 혈액 투석을 위해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를 찾은 전혜영(62)씨 불안한 표정으로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20여 년 넘게 투석해 온 아들 걱정에 전씨는 "주말에도 혈액 투석할 수 있는데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8시 59분에 번호표를 받았는데, 진료 시간도 40~50분쯤 지연된다는 연락이 왔다"며 "이래저래 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또 "3월에 잡혔던 진료는 무기한 연기된다는 연락을 어제 받았다"며 "검사할 의사가 없어서 순차적으로 하는데 언제 할지는 알 수 없고, 연락할 때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의료 공백 사태가 길어질까 걱정스럽다는 전씨는 "투석 환자는 응급 상황이 자주 생긴다"며 "아는 분도 염증이 심해져서 수술해야 되는데 의사가 없어서 일단 약만 먹고 회복되면 그때 수술하자고 했다더라"고 전했다.
23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만난 만성 신부전 환자의 보호자가 "전공의 파업으로 신장긴급처치클리닉 외래가 중단됐다"는 안내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정진원 수습기자이날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비뇨기암 환자 오모(83)씨는 지난 3일 신우신염과 패혈증이 와 10일간 입원했다가 지금은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쯤 수술을 했다는 오씨는 "중환자실 진료는 들어갔지만 검사는 못 할 것 같다는 안내를 들었다"며 "신우신염 때문에 중간 중간 열이 난다. 치료를 지체하면 패혈증까지 갈 수 있어 응급실에 올 수밖에 없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공의들이 근무지를 이탈하면서 전국 종합병원 대부분 중증·응급 환자 위주로 축소 운영되고 있다. 일부 진료과에서는 수술이 예정됐던 경증 환자들에게 수술 시기를 예정일보다 늦추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날 세브란스병원 3층 폐기능검사실 앞에서 만난 육종암 환자 심모(72)씨는 "의료 대란 때문에 MRI 검사는 다음 주에 전화 주겠다는 안내를 들었다"며 예약 날짜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병원에서 내원한 김에 CT 촬영을 하라고 했지만, 심씨는 "5시간은 기다려야 될 것 같다"고 한숨만 쉬었다.
녹내장 수술을 상담하기 위해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70대 남성 A씨는 수술 일정을 잡았지만, 담당 교수에게 "파업 때문에 수술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설명을 들어야 했다.
A씨는 "눈 수술을 빨리 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을 것 같아 걱정"이라며 "교수님이 마취과 의사들이 파업하는 문제만 해결되면 수술이 가능한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장기이식센터에서 진료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 주보배 수습기자얼마 전 서울성모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았던 80대 여성 김모씨는 두 눈에 통증이 느껴져 병원을 찾았지만, 4월쯤에야 진료 예약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들었다.
김씨는 "안과를 가니까 안과 치료를 못 한다고 했다"며 "요즘 의사 선생님들이 파업해서 예약 자체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사라지면서 응급실도 포화 상태다. 이날 오후 신생아 응급환자를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호송한 한 구급대원은 "병원에서 안 받아줘서 너무 힘들었다"며 "병원끼리 연락해서 조율하는데 꽤 많이 돌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몇 시간이 걸려서 신생아 환자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구급대원은 환자 이송을 마치고 다급하게 병원을 떠났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오후 10시 기준 주요 94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약 78.5%인 8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약 69.4%인 7863명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