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아무래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공대나 자연대보다 의대로 몰릴 것 같다. 우리나라 연구자 인재가 유출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최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들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3)씨의 걱정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만약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 한 번 (의대를) 써봤을 것 같다"는 뒷말을 덧붙였다.
정부가 내년부터 의과대학 증원 방침을 발표하면서 대학교 이공계와 자연계열 학생과 교수진들이 동요하고 있다. 누군가는 의대로 갈아탈 절호의 기회라며 환호하지만, 자연과학이나 공학에 뜻을 둔 학생이나 교수들은 유례 없는 인력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5058명으로 2천명 늘리겠다고 밝혔다. 65% 이상 늘어난 수치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만난 서울의 대학교 이공계, 자연계열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염려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의과대학으로 진학하는 경향이 지금도 상당히 강한데, 정부의 이번 방침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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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주변에서 의대를 목표로 '반수'(학교에 적을 둔 채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것)에 돌입했다는 목소리가 심삼찮게 들렸다. 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재학 중인 권모(21)씨는 "이미 많은 친구가 반수를 했다"며 "의대가 증원되다 보니까 '다시 (의대에 도전)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정보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5)씨는 "주변 친구 중에서 의대를 가려고 재수하거나 휴학하거나 해서 공부를 다시 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증언하듯 전했다.
고려대 산업경영공학에 재학 중인 안모(22)씨는 "고학번이지만 '이번이 의대로 갈아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말 취업 준비가 막막하면 (의대 진학에) 진지하게 도전해 볼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종로학원은 서울 주요 대학의 자연계열 내 무전공 학과들에서 중도탈락률이 특히 높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연세대 융합과학공학부(ISE) 중도탈락률은 15.6%로 전체 평균의 5배에 달했으며 성균관대 공학계열은 12.4%, 자연과학계열 14.2%로 역시 학교 평균을 상회했다. 소위, 서울의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대학조차 이공계 이탈 현상이 짙어지는 모양새다.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기존 이공계 학생들의 이탈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종로학원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험생 2025명 중 47.7%는 '의대 정원 확대가 재수에 유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40.4%는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재수하겠다'고 응답했다.
당장 의대 정원 확대 이후 이공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투자 예산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정부가 의대에 투자를 늘리면서 상대적으로 이공계 투자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서울대 공과계열 대학원생인 A씨는 "지금은 (의대) 인원만 늘린다고 했지만 나중에 R&D 예산을 줄인다는 얘기가 나올까봐 걱정이다"며 "실제로 지금도 과의 예산이 줄었다는 말이 있어서 우려가 좀 있다"고 했다.
이어 "의대 정원을 늘리다 보니까 교수 입장에서는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대학교 이공계열 교수들도 우려를 보였다. 특히 교수들은 현 의대 정원의 65% 수준인 대규모 증원을 갑작스럽게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이공계열 B교수는 "의대 정원이 2천명이 늘어나면 그만큼 이공계 쪽 학생들이 다 의대를 갈 수 있기 때문에 이공계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얘기하는 의대 정원 수가 합리적이고 타당한지를 되짚어봐야 한다"며 "1년 전에 의과대학에 물어봤을 때 인원 증가가 얼마나 필요한지 물으니 200~300명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정원을 10배 가까이 갑자기 늘리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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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공계열 인력 부족이 현실인 상황에서 문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또 다른 서울의 한 대학교 이공계열 C교수는 "과거에는 이공계 쪽에서 최고는 물리학과였다. 지금은 의예과로 꽉 채워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 (의대 정원) 3천명에서 2천명이 늘어나니까 이공계 쪽에 갈 고급 인력들이 (의대로) 우르르 가면 그만큼 이공계가 황폐화될 것 같다는 우려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지금 이공계에서 연구할 때도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가급적이면 사람을 덜 쓴다. 대학원생들이 안 오기 때문이다. 지금 (인력 부족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우려를 넘어 허탈감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고려대 융합생명공학과 대학원생 김모(29)씨는 "갑자기 의대 2천명이 증원되다 보니까 허탈감, 상실감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있다"며 "아무래도 의대 졸업생이 사회적 지위가 높고 봉급 수준도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라고 씁쓸해 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서울시의사회 회원들이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 반대 궐기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박종민 기자의대 정원 확대로 학생과 교수 모두 우려를 보이고 있지만 대학교 측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우리 학교가 얼마나 늘고 이런 내용이 확정된 것이 없다"며 "(이공계 학생이 이탈한다는 우려에 대해) 아직 예상할 수 없다"고 했다.
한양대학교 관계자도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서 정해진 것이 없고 학교는 현재 논의 중이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