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잇따른 정치인 습격 사건이 벌어지면서 경찰이 서둘러 발표한 주요 인사 경호 강화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호 대상자를 무한정 늘리는 데 제도적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용할 경력(警力)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변보호팀' 조기 배치…경찰서 형사들도 차출
경찰은 26일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 신변보호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A(15)군이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의 머리를 내려친 지 하루 만이다.
사건 당일 저녁 한덕수 국무총리가 '긴급지시문'을 통해 "총선을 앞두고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안전 확보와 유사범죄 예방에 전력을 쏟아달라"고 경찰청을 콕 집어 지시하자, 경찰청도 즉각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미 경찰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 직후 여야 대표를 대상으로 전국 시도청 마다 '주요인사 전담보호팀'을 구성하고, 주요 인사가 관할 지역을 방문하면 정당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안전대책을 수립하는 등 경호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더 나아가 이번에는 조기 운영하던 근접 신변보호팀을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새로운미래 이낙연 인재영입위원장에게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국 36개 기동대를 '전담보호부대'로 지정하고, 관할 경찰서 형사 등으로 구성된 '자체 신변보호팀'도 정당 공개 행사 등에 배치할 계획이다.
거리 유세 등 위험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다목적 당직기동대 등을 추가로 배치하고, 관할 경찰서장은 현장에 임장해 우발상황에 대비한다.
이번 조치 적용해도 '제2 배현진' 못막아
배현진 의원 피습 당시 옷에 묻은 혈흔. 배현진 의원실 제공사실 경찰의 경호 대상에는 정당 대표를 포함한 정당 인사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전·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정도만 경찰의 경호를 받는다.
정당 대표들이 경찰의 경호를 받는 기간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국한되므로, 현재도 엄밀한 의미에서 법적 근거가 있는 경호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정당 인사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 논란이 되면서 경찰이 신변보호팀을 조기에 배치한 것이다.
결국 배 의원 같은 일반 국회의원들은 개인 의정활동이나 선거운동 기간 경찰의 근접 경호를 받지는 못하는 셈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처럼 국회의원이 개인 일정을 갖는 상황까지 경찰이 경호에 나서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무작정 경찰의 경호 대상자를 늘리기도 어렵다. 법적 근거가 없으니 당장 인력과 예산부터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호 인력 등은 상급 비밀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경력이 필요하다"며 "당장 경호 대상자를 늘리게 되면, 정작 지켜야 할 경찰관들이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호 대상자를 늘리려는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다. 2006년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김정훈 의원 등 32명은 '요인경호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법률 제안서에서 "사회 주요 인사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증대하고 테러 수법이 날로 흉포화·지능화 하는 현실에 비춰 정당 대표자, 대통령 선거 후보자 등 국가 주요 요인이 보다 체계적인 경호를 받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법률은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채 국회 회기가 종료돼 폐기됐다.
또 경찰관만 쥐어짜나…'정치인 향한 폭력'의 근저는?
일각에서는 조기 신변보호팀을 운영하고 일선 경찰서의 형사들까지 동원해 자체 신변보호팀을 배치하는 이번 대책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한 경찰관은 "경호라는 임무는 생각보다 인력과 예산도 많이 필요하고, 전문성도 요구되는 일"이라며 "흉기난동 때도 내근직까지 모조리 동원해 순찰을 하더니, 이제는 선거라고 정치인 보호에 인력을 다 쓰게 생긴 상황"이라고 혀를 찼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8월 서울 신림동과 경기도 성남 지하철역 서현역 등에서 흉기난동이 잇따라 발생하자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다.
이때 기동대는 물론 내근직 경찰관들까지 모두 동원돼 방범활동에 투입됐는데, 정작 지난해 11월 예산 부족으로 일부 경찰관들은 초과근무수당조차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더구나 테러와 폭력 등 모든 범행을 경호와 방범활동만으로 틀어막을 수도 없는 만큼, 애초 정치권으로 향하는 폭력의 근저를 살피고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화여자대학교 이종곤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미디어의 영향으로 확증편향은 심화되고, 정치적 양극화도 심화되는 상황"이라며 "나와 다른 편과 협력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없어져야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세상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진단했다.
정치적 양극화와 확증편향, 그리고 이런 현상을 더욱 조장하고 갈라치는 정치권의 문화부터 점차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국대학교 곽대경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정치권부터가 폭력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며 "진영 싸움이 계속되니 극단적인 혐오 정치도 이어지게 되고, 우리 사회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폭력의 토양이 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