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수수 의혹을 받는 송영길 전 대표. 황진환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연구소, ○○위원회의 실체…알고 보니 선거조직? (계속) |
판사 : "비영리법인이 특정 개인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됐는데,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캠프를 도와주는 게 일상적입니까?"
증인 : "조직 성격을 떠나 선거 시점이 되면 '그 사무실'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근거지였죠."
판사 : "선거활동을 할 때 공식적인 보좌관 조직을 포함해 원내조직과 비영리조직이 포함되는 것이 통상적인 정치권의 관례라는 취지입니까?"
증인 : "대부분 그렇습니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관련 재판에서 판사와 증인(민주당 전 지역위원장 출신)의 대화다. 판사가 언급한 비영리법인은 '먹사연'을 지칭한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먹사연과 같은 비영리조직이 특정 정치인의 선거를 지원하는 외곽조직으로 변질되는 사례가 정치권내에선 다반사임을 추정할 수 있다.
24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판사의 지적대로 공직선거법은 공익법인의 설립 취지를 감안해 선거 개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선거법 제89조는 '명칭의 여하를 불문하고 (공식 선거기구 외) 기관·단체 등을 설립·이용할 수 없고, 이 단체를 운영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먹사연 직원들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보좌진 등 측근들과 함께 선거전략 등을 세우는 등 당 대표 선거활동을 지원한 것으로 판단했다. "(먹사연을) 사실상 경선캠프 조직처럼 활용했다"고 봤다.
또 검찰은 송 전 대표가 먹사연을 이용해 후원금을 유치했고, 먹사연 기부금 중 7억 6300만 원은 송 전 대표의 불법정치자금이라고 공소장에 적었다.
'지역주의 해소와 통일국가 발전 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단법인이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치인의 '외곽 조직'으로 변질됐다는 게 검찰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송 전 대표 측은 "먹사연은 통일부에 등록된 비영리법인으로 송 전 대표와 별개로 운영된 독립체이자, 정책 싱크탱크일 뿐"이라고 선거 지원 부분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특정 후보 출마선언 맞춰 '급조'된 공익단체
스마트이미지 제공 4‧10 총선을 앞두고 송 전 대표의 먹사연처럼 ○○연구원, △△연구소 등 비영리법인 단체들이 특정 후보를 '음성적으로' 지원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수도권내 한 지역에서 설립된 A단체의 경우, 창립총회 때 유일한 '특별강사'로 초청을 받은 B씨가 강의 후 보름 만에 해당 지역구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B씨의 이력과 업적, 지역과의 연관성 등이 행사 홍보물을 통해 대대적으로 유포됐다. 게다가 후보의 공약 대부분이 강연 내용과 일치해 지역내 정치권에선 '사전선거운동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A단체의 홈페이지에는 후보의 공약과 유사한 내용이 설립 목적 등 정관에 명시돼 있다. 정기후원을 위한 자동이체 방법 등 안내문도 표시돼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역발전 구상을 위한 연구모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특정 후보자의 이름과 공약 등을 알리기 위해 '급조'된 선거 외곽 조직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도 A단체의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B씨와의 직접 연관성 등이 확인되지 않아 정식 조사에는 착수하지 못 한 상황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역 정계에서 의심을 사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면서 "동일 내용으로 강연이나 공약 관련 활동이 단체를 통해 계속된다면 조사 대상이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출마 기자회견 당시 'A단체가 선거조직 아니냐'는 질문에 "지역을 위한 거버넌스이지, 선거 예비조직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의원 제안에 사단법인 설립…공약·치적 홍보 채널
황진환 기자 경남에서는 현직 국회의원이 공익단체 설립에 나선 사례도 확인됐다. C의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민간 연구단체 대표 D씨에게 자신의 역점 공약사업과 관련한 새로운 단체 창립을 제안해 사단법인인 E단체를 설립했다. C의원과 E단체, 민간 연구단체는 지난달 창립 공개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E단체 역시 조직조차 꾸리지 않은 상황에서 C의원의 주요 공약 사항 등을 홍보하는 데 업무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욱이 E단체 설립에 핵심적 역할을 한 민간 연구단체는 E단체 연구 분야와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전문성도 없는 단체를 이용해 마치 자신의 후원단체를 만든 셈이다.
창립 토론회 직후 C의원은 신년 메시지에서 E단체 활동의 근거가 되는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라며, 자신의 '1호 의정성과'로 홍보했다.
E단체 대표는 B의원과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특정 정당 소속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광역단체장 선거캠프 등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단체 대표 D씨는 "공공기관을 유치하고 발전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단체를 만든 것"이라며 "의원실에서 먼저 제안을 해왔고, 기존 학술단체는 목적상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특수목적법인으로 단체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을 받아 관련 행사 등을 유치하기 위한 후원금을 받고 있다"며 "의원과는 5년 전쯤부터 알게 된 사이이고, 의원이 지분을 갖거나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C의원과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정책연구 핑계로 '그림자 캠프' 역할"…전문가, '부도덕성' 지적
스마트이미지 제공 이같은 사례들에 대해 한 국회의원 후원 조직에서 활동했던 F씨는 "처음엔 지지하는 정치인의 정책을 발굴하고 제안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지만, 후원 정보를 비공식적으로 주변에 퍼뜨리고 온라인 단체방을 이용해 사실상 '비선 캠프'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자원봉사로 끝나면 좋은데 후보가 당선되면 '한 자리'나 '공천'을 노린 활동을 하면서 계파 간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이권 개입 논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공익법인을 악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제 해택과 비교적 쉬운 기부금 활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영리법인의 경우 고유목적사업만 수행하면 법인세 납부 의무가 없다. 또 비영리법인은 말 그대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인 운영 자금을 기부금 형태로 받는데, 이에 대한 회계가 정치후원회에 비하면 느슨한 편이다.
김성완 시사평론가는 "음성화되고 이권에 개입하는 부정한 자금 흐름 등이 문제다"라며 "관련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어도, 정치적 자율성에 기대 도덕적 해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