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저희들끼리는) 0.6명대 후반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있어요."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내달 말 통계청이 발표할
2023년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을 이렇게 전망했다.
매년 역대 최저를 갱신 중인 출산율이 재작년 기준 0.78명에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인데,
그야말로 '날개 없는 추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 중 합계출산율이 1명에도 못 미치는 곳은 한국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중세시대 흑사병에 견줬지만,
인구위기는 전염병과 달리 사회적 환경이 변수로 작용한 '선택'이란 점에서 자못 더 심각하다.
이에 총선이 불과 석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는 지난 18일 일제히 '저출생 공약'을 선보였다. 정책들의 초점은 각각 '현금성 지원' 확대(더불어민주당), '일-가정 양립' 지원 강화(국민의힘) 등으로 달랐으나 저변에 깔린 위기의식만은 같았다.
중구난방식 정책에 '실권 全無' 저출산위…"인구부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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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발등에 떨어진 당면 과제"(이재명 대표), "청년들과 부모들의 현재 문제"(한동훈 비대위원장) 등 인구 소멸이 국가적 현안임에 뜻을 모은
여야가 공통적으로 꼽은 해결과제는 '거버넌스'다. 한마디로
현재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체제로는 사회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인구감소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기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저출생 관련 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집행하는 전담부서인
'인구위기 대응부' 신설 추진을 약속했고, 집권 여당도
부총리급 '인구부'를 설치해 저출생 정책을 통합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조직 개편 관련 설명에 상대적으로 더 힘을 실은
여당은 당초 '부서 폐지'가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업무까지 인구부로 흡수시키겠다고 부연했다. 저출생 문제는 보건·복지, 교육, 노동 등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만큼 부처간 '칸막이'를 넘어 효과적 정책을 수립·실행하기 위해서는 부총리급 격상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데이터 기반 인구전략 자문회의에서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다소 의미심장한 대목은 여당이 저출생 문제 관련 '국가책임 강화'의 일환으로 인구부 신설안을 내놨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수장인 부위원장이 장관급이라곤 하나, 실효적 권한은 거의 없는
저고위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인구문제 대응을 총지휘하는 '컨트롤 타워'로서 저고위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저고위의 전신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꾸려진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다. 이듬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시행됐고, 2006년부터 범정부 차원의 5개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출범 당시엔 민간의 아이디를 적극 수용하고 관료 조직의 경직성을 벗어나자는 선의로 기획된 체제였다. 하지만
'저출산'과 '고령화'란 거대한 두 주제를 통으로 묶은 가운데 광범위한 기본계획을 중심으로 수립된 정책들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채로 '백화점식 나열일 뿐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0월 '초저출산 장기지속 시대의 인구위기 대응방향' 특별보고서에서 "정책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영역에서 부처 단위로 사업을 모으는 '과제(사업) 중심 기본계획' 방식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가령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7~2021)의 목표 중 하나는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인데, 이러한 정책 목표의 불명료함이 "특정 과제를 '저출산 정책'이란 이름으로 추가하게 하는 맥락으로 작동"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중구난방식 정책, 그나마도 이행 여부를 점검·관리할 주체가 모호하다는 점은 지난 15년간 '280조'의 예산을 쏟고도, 흐름 반전에 실패한 원인이기도 하다.
당연직 위원장인 대통령을 필두로 나라 곳간의 키를 쥔 기획재정부 및 교육부 장관 등 양대 부총리, 각 부처들과 민간 전문가들을 모아놓은 '구색'은 좋지만,
예산에 관한 권한이 전무(全無)하다는 점은 특히나 치명적이다.
어떤 대책을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할 뿐더러, 때마다 부처들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처지다. 이 때문에
저고위의 활동이 일종의 '공익 캠페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당정의 정책을 자문해온 한 전문가는 "나오는 이야기는 많지만 포장만 화려하지, 추진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이제는 저고위의 해산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라면서
"예산과 권한을 준 다음에 무언가를 해보라 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당초 저고위는 이달 말 업무보고와 함께 4차 기본계획을 다듬은 저출산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실증적 근거 기반 분석이 부족하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적에 내달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제1차 데이터 기반 인구전략 자문회의'를 여는 등 나름의 돌파구를 찾는 중이지만, 달리 '뾰족한 수'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태다.
저고위 민간위원을 맡아 온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현 정부가) 이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며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권한 주면서 일도 시켜야"…예산 등 안정적 정책기반 필수
연합뉴스이같은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독립적 부서를 만들어 인구문제를 전담시키자는 방향성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저고위가 힘든 것은 '예산이 없는 이유'가 가장 크고
이참에 (전용)예산을 가진 정확한 부처가 생기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며 "위원회를 그대로 두면서 더 드라이브를 걸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보통합'(영유아 교육·보육 통합) 등 육아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여당안대로 "상징적으로라도 인구가족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봤다.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유재언 교수도
"이제는 정치적 판단이고 의지의 문제"라면서 "대통령과 당정이 의지를 갖고 무엇을 추진해야 될지는 지난 10여년간 이미 아주 많은 데이터들이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어도 부총리, 아니면 국무총리 선에서 부처를 만드는 등 지금보다 거버넌스가 훨씬 확대되어야 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위원회는 존속시키되 인사·예산 등의 독립적 권한을 부여한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 또는 인구특임장관을 포함한 '인구와미래위원회'로 확대 개편하자는 의견도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장인, 한양대 정책학과 이삼식 교수는 해당 위원회에서 인구와미래기본계획을 10년 단위로 수립하고 유관기관인 인구영향평가센터와 인구전략연구소를 세워 이들의 연구·평가를 정책에 반영하자고 주장한다.
이 교수의 방안 중
실행 기반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구특별회계' 신설 제안은 이번의 여당안과 일치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림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도 전담 부서보다는 위원회 방식을 지지하는 쪽이다. 이 센터장은 "독립적인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사한 모델이 낫지 않나 싶다"며 "대통령에 대한 분기별 (직속)보고를 정례화하면 각 부서·부처들이 자발적으로 (정책 고안·시행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가족정책과 인구정책은 구별한다는 전제 아래 후자를 총괄하는 역할을 기획재정부에 부여해 예산에 대한 실권을 제대로 쥐어주자는 제언도 나온다.
이렇듯 각론은 있을지언정
'일관성 있는' 인구정책을 강력하게 기획·추진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에는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예산을 비롯해 부처 또는 중앙-지자체 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실제적 권한은 필수 조건으로 꼽힌다.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총선이 불붙인 정책대결의 성과가 여야의 '공통분모'인 거버넌스 개편 논의로 즉각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명 대표도 앞서 "(저출생 공약 중)
실현 가능한 방안 가운데 여야 간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즉시 입법화하자"고 밝힌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상기 보고서에서 "사회 전반을 재조직한다는 취지 아래 인구전략에 대한 문제의식, 관련 노력은 앞으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며 "더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봐야 한다는
형식논리 측면의 문제제기 이상으로 정책 방향과 얼개, 거버넌스 체제(위원회-사무처-유관 부처) 전체를 종합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저출산 현상은 사회 전체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