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난 세대의 현관문을 닫았을 때(왼쪽)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오른쪽) 모습. 실험 결과 화재 세대의 문을 닫을 경우 불길이 외부로 거의 번지지 않았지만 문을 열 경우 불길이 외부로 치솟고 불과 1분 20초 만에 4층까지 연기가 확대됐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불이 날 경우 성급하게 대피하기 보다는 문을 닫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하는 게 최선이라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18일 오후 부산 남구의 한 철거 예정 4층 빌라에서 '아파트 화재 대피 방법' 실험을 마련했다.
실험은 빌라 1층에 실제로 불을 낸 뒤 현관문을 열어둘 때와 닫아둘 때, 화염과 연기 확산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불이 난 1층 현관문을 닫고 대피한 경우 2층을 제외한 3~4층에서는 연기가 실내로 유입되지 않았다.
문이 닫힌 1층 화재 현장에서는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10분도 되지 않아 화염이 줄어들었다.
반면 현관문을 열어두고 대피한 경우 불이 번지는 시간도 짧았고, 연기도 급속도로 외부로 퍼져나가 옥상까지 치솟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을 닫았을 때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불길은 더욱 거세져 화염이 창밖까지 솟구치거나 외벽을 타고 위층으로 번지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연기는 불과 1분 20초 만에 4층까지 번졌다. 불이 난 지 4분 50초 뒤 4층 계단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사람이 10~15분 만에 질식해 숨질 수 있을 정도인 7028ppm에 달했다.
연기가 확산한 3~4층에서 현관문과 안방 문을 닫는 등 안전조치를 할 경우 내부로는 연기가 거의 유입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이날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공동주택에서 불이 날 경우 곧바로 대피하기보다는 문을 닫은 채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0년 동안 부산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사상자 433명 가운데 40%가 넘는 174명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아파트 화재로 숨진 180명 가운데 70.6%인 127명이 연기흡입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돼 인명피해의 주요 원인은 화염이 아닌 '연기'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소방당국은 지난해 11월 공동주택 화재 대피 방법을 '무조건 대피'에서 '상황 판단 후 행동하기'로 바꿨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용기 화재 조사계장은 "무조건 대피하지 말고 상황을 판단한 후 대피하거나 집에서 대기하며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며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개정된 아파트 화재 피난 매뉴얼을 숙지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