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김유진·옥시찬 위원을 해촉했습니다. 9명 정원인 방심위원은 여권추천 4명과 야권추천 1명만 남게 됐습니다. 5인 체제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8월부터 제적 과반도 안 되는 2인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권영철 대기자에게 자세한 내용 들어보겠습니다.
지난주에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방심위원 2명에 대해 해촉을 건의했다는 내용까지 전해드렸는데요. 윤 대통령이 건의를 받아들인 거군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윤 대통령이 오늘(17일) 야권 추천 몫인 김유진·옥시찬 두 방심위원에 대한 해촉 건의안을 재가했습니다. 방심위가 지난 12일 해촉 건의안을 의결한 지 5일만입니다.
9인체제인 방심위는 5인체제로 여당 추천4:야당 추천1 구도가 됐습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황진환 기자 ◇정다운> 지난번 다뤘습니다만, 해촉사유는 그대로인가요?
◆권영철> 김유진 위원은 1월 3일 전체회의가 취소된 직후 기자들에게 회의 안건 관련 설명을 했는데 그게 '비밀유지의무 위반'이라는 겁니다. 회의에서 다루려고 했던 안건은 류희림 위원장의 이른바 '민원 사주' 의혹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옥시찬 위원은 1월 9일 방송심의소위에서 '민원신청 사주' 의혹관련 논의가 제대로 안 되자 서류를 허공에 던지면서 "니가 위원장이냐?" 그랬다는 데 이게 '폭행'이 됐고요. 문을 열고 나가면서 xx 라고 혼잣말처럼 했다는데 그게 '욕설모욕'이 됐습니다.
나무랄 일이지 해촉까지 할 사안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모욕이건, 폭행이건, 비밀유지의무 위반이건 해촉하려면 법률 검토와 절차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절차가 다 무시되고, 다수결 표결로 밀어붙였고, 대통령은 그걸 받아서 5일 만에 해촉한 겁니다.
◇정다운> 이게 해촉사유가 되는지는 따져봐야 하겠습니다만, 류희림 위원장 본인도 '민원 사주' 의혹으로 심각한 논란을 겪고 있잖아요? 류 위원장에 대한 해촉 이야기는 안나왔나요?
연합뉴스◆권영철> 류 위원장은 당연히 대통령이 해촉하지 않았으니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안으로 보자면 누가 봐도 류희림 위원장이 받는 의혹이 무겁지만 윤 대통령은 야권추천 방심위원 6명 중 5명을 해촉했을 뿐입니다.
'민원 사주' 의혹이란 뉴스타파의 신학림 김만배 녹취록 보도를 인용보도한 방송사(KBS, MBC, YTN, JTBC 4개 방송사)를 징계하라는 민원을 류 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 전 직장동료들이 방심위에 넣은걸 말하는 겁니다.
류 위원장은 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한 사실을 알고도 전체회의에서 이들 방송사에 최고 수위 징계인 수천만 원의 과징금 부과를 최종 결정했습니다.
◇정다운> 민원을 제기한 사람들이 류 위원장의 가족이라는 거죠?
◆권영철> 그렇습니다. 방심위 내부자가 국민권익위에 신고한 내용에 따르면 민원인에는 류 위원장의 아들, 동생, 제수, 처제, 동서, 조카 등 가족 6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또, 류 대표가 재직했던 전 직장(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직원 및 관계자, 직전까지 대표를 맡았던 단체(미디어연대)의 현 공동대표 (전 방심위 사무처 국장)를 비롯해 류 위원장이 임명한 방심위 특별위원회 위원이자 전 직장(KBS) 입사동기 등 지인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정다운> '민원 사주'가 사실이라면 중대한 법률위반 아닌가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중대한 법률위반이고, 방송사에 대한 징계의 정당성도 상실하게 될 겁니다.
청부 민원을 제기했다가 해고된 방심위 간부가 있습니다. A팀장인데요, A팀장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제3자 명의로 '대리 민원' 46건을 신청했습니다. 이 가운데 19건은 법정제재, 14건은 행정지도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A 팀장은 내부 감사 과정에서 "당시 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자백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돌던 '청부 민원', '셀프 심의'의 실체가 사실로 밝혀진 것입니다.
방심위는 A팀장을 해고했고, A팀장은 해고무효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했습니다.
류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의 핵심 쟁점은 류 위원장이 사적 인맥을 동원해 가짜뉴스 심의 민원을 넣도록 사주했는지? 또, 류 위원장이 이러한 사적 이해관계자의 민원 제기 사실을 알고도 관련 심의에 참여하면서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하였는지? 여부입니다.
방송계나 법조계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류 위원장은 이해충돌방지법 제5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임직원 이해충돌 방지 규칙' 제4조를 위반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A팀장의 판결문에는 "(A팀장의 징계사유는) 방심위의 핵심가치인 공정성 공공성을 크게 훼손한 행위로서 결코 용납해서는 아니 될 종류의 비위행위에 속한다", "선임 팀장인 원고가 특정 정치적 견해를 대변해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민원을 꾸며낸 것은, 거짓된 방법을 사용하여 방송심의소위의 심의를 자기 뜻대로 유도하고자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데, 이러한 원고의 행위가 언론에 보도됨에 따라 방심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저하되고 말았다." 는 내용이 적시돼 있습니다.
◇정다운> 지금 방통위와 방심위의 운영 상황 자체가 절차적으로 불법하다는 비판도 큽니다. 방통위는 5인 체제인데 2명으로 운영되고 있고, 방심위는 9인 체제인데 5명이 된 것이잖아요.
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정승일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철>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법률을 지키지 않는 거니까요.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위원회는 위원회의 위원장 1인, 부위원장 1인을 포함한 5인의 상임인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또 방심위에 대해서는 "심의위원회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이 경우 심의위원회 위원장 1인, 부위원장 1인을 포함한 3인의 위원을 상임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임명에 대해서도 "방통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을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석 중인 3인의 방통위원 임명을 위한 국회내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번에도 민주당에서 최민희 전 의원은 방통위원으로 추천했지만 임명하지 않자 7개월 만에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방심위원은 대통령 3인, 국회의장 3인 해당 국회 상임위 3인으로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9명의 위원 중 4명이 부족합니다. 야권추천 방심위원은 1명만 남았는데 2명은 이미 야당에서 추천을 했지만 윤 대통령이 위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다운> 왜 공석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걸까요?
◆권영철> 대외적인 명분은 국회에서 추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겁니다. 그렇지만 속내는 여권 주도의 방송장악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입니다.
방통위는 대통령이 지명할 방통위원장과 위원 1명은 이미 임명했습니다. 나머지 3명은 국회 추천 몫입니다. 여야간 합의를 해서 추천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연말에는 여야간 물밑 논의가 이뤄지는 걸로 들었는데 해가 바뀌면서 다시 공전상태라고 합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면 총선이후로 늦춰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의결한 중요사안이 불법이라는 주장도 있는 만큼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겁니다.
방심위원 중에서도 대통령이 추천할 1명은 류희림 위원장을 위촉했고, 여당이 추천할 3명은 야당시절 추천한 3명이 그대로 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몫 2명과 야당추천 몫 2명을 위촉하면 방심위원은 9명의 정상체제를 갖출수 있습니다. 2명의 야당위원들이 해촉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의장이 추천한 2명의 방심위원을 임명했다면 야5:여4의 구도가 되기 때문에 위촉을 일부러 늦춘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제 2명의 야권추천 위원을 해촉했으니까 대통령 추천 2명과 야당추천 2명을 위촉하면 여6:야3의 구도가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