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둔 의(醫)-정(政)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 '4명 중 3명'은 의사인력 확충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다만 현재 추진 중인 의대 증원보다 의료취약지 근무를 의무화한 지역의사제 찬성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 이용 및 의사인력 확충에 대한 의견수렴'(12.1.~12.7.) 설문조사 결과. 한국소비자연맹 제공
한국소비자연맹은 이달 1~7일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20~60대 성인 남녀 1천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20일 공개했다. 매주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정부와 의대 정원 관련 설전을 벌이고 있는 의사단체 등
이해관계자가 아닌 '의료소비자'의 실제 의견을 확인하려는 취지다.
조사 결과,
응답자 74.8%('필요하다' 41.7%+'매우 필요하다' 33.1%)는 정부가 필수·지역의료 혁신방안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보통이다'가 17.8%를 기록했고, '필요하지 않다'(2.2%)거나 '전혀 필요하지 않다'(5.2%) 등 명백한 반대 입장은 총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들이 연간 최대 약 3천 명 규모의 정원 증원을 원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18년째 동결 중인 현 정원(3058명)의 2배 수준으로 늘려달란 셈이다.
일상에서 의사 수 부족을 실감한 국민 여론은 우호적이지만, 의사단체는 이와 정반대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 제공실제로 설문 응답자들은 과반(58.8%)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며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 유형으로는
'매우 긴 대기시간'이 65.5%로 가장 많이 꼽혔다(중복응답). 다음으로 '짧은 진료시간(3분 진료)'이 44.1%로 나타났고 △성의 없는 진료 응대(33.3%) △과잉·과소 진료(29.8%) △진료예약의 어려움(26.0%) △지나친 상업화(22.1%) △불친절(19.8%) △낮은 접근성(17.3%) 등이 뒤를 이었다.
조사대상자의 70%는 의사인력 문제를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5명 중 1명(19.0%)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의사가 전혀 부족하지 않다('전혀 심각하지 않다' 0.9%+'심각하지 않다' 5.9%)고 보는 시각은 7% 수준에 그쳤다.
한국소비자연맹 제공특히 '의사 기근'을 피부로 느끼는 지역은 필수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의료취약지들이었다. 응답자의 거주지역상 의사인력 부족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호남·제주권(24.3%)과 충청권(23.9%)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소위 '빅5' 등이 포진한 서울의 경우, 같은 문항에 긍정한 비율이 13.5%로 최저치였다. 같은 맥락에서 의대정원 증원이 '매우 필요하다'고 본 응답자도 서울(24.5%)이 가장 적었다. 그 외 지역은 최고치를 보인 호남·제주권(37.8%)을 포함해 평균 35%를 기록했다.
의사 수 부족이 가장 심각한 영역으로는 '응급실 뺑뺑이'(27.0%)와 '소아과 오픈런'(22.1%)이 1·2위를 차지했다.
△의사를 못 구한 지역의료기관의 축소운영(18.0%) △구인난으로 인한 응급실 단축 운영(14.2%) △의사업무를 타 직역이 대신하는 무면허 불법의료(7.1%) △공공의료기관의 휴진(6.4%) △분만취약지 원정출산(3.9%) 등도 차례로 언급됐다.
한국소비자연맹 제공의사 수를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는 특정 지역에서 복무해야 하는 지역의사제가 의대 정원 확대보다 많은 지지를 얻었다.
지역의사제는 의대 정원 일부를 별도 전형으로 선발해 졸업 후 10년간 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하게 하는 제도다. 복무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정부는 대학 시절 지급한 장학금을 환수하며 의사 면허도 취소한다.
지역 의대를 나온 의사도 대부분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실로 인해 최근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지역의사제를 운영 중인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해당 제도의 지역정착 유도 효과가 크다는 요지의 자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의대 증원 필요성에 동의한 응답자의 40.8%는 이 '지역의사제 도입'을 첫손에 꼽았다. 공공병원 중심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근소한 차이로 2위(38.8%)였고, 의대 확대 수요를 반영해 증원하자는 답변이 4%p 정도 더 낮았다(36.6%).
설문대상자들은 정부가 시종 '반대'로 일관하고 있는 의협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주관식 답변을 유형별로 분류한 결과,
의협과 상관없이 '의대 증원을 강력 추진(강경대응)'해야 한다는 응답이 27%, '논의·토론을 통해 설득 또는 협의'가 25.9%로 각각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연맹은 "75%의 의료소비자는 의사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어 향후 고령화 등 의료수요를 감안하면 현재의 부족한 인력을 빠르게 확충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